이글은 경향신문 201203-02일자 사설 '[사설]사표 낼 사람은 박은정 검사가 아니라 김재호 판사다'를 퍼왔습니다.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 남편인 김재호 판사에게서 ‘기소 청탁’을 받았다고 밝힌 박은정 검사가 어제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검찰청은 이를 반려키로 했다는데 당연한 일이다. 박 검사는 지난해 제정된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른 공직자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이 법 제7조는 ‘공직자는 그 직무를 하면서 공익침해행위를 알게 된 때에는 이를 조사기관, 수사기관 또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 검사가 판사의 청탁을 받고도 검찰에서 진술하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위법이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은 사표를 쓰는데, 정작 사표 내야 할 이는 침묵하고 있다. 김재호 판사는 2006년 1월 박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나 전 의원 비판 글을 블로그에 올린 김모씨에 대한 고발사건 기록을 조속히 검토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법연수원 8년 선배인 판사가 본인의 아내와 관련된 사건 처리를 재촉한다면 청탁을 넘어 압력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김 판사의 행동은 ‘법관은 타인의 법적 분쟁에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 법관윤리강령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 법학자이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인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기소 청탁이 사실이라면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의혹보다 더 심각한 사태”라고 말했다. 김 판사는 법조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진실을 고백하고 법원을 떠나야 한다. 의혹을 받는 사람은 본인인데 비겁하게 아내 뒤에 숨어 자리를 보전할 속셈인가. 만약 아내의 정치적 재기가 물건너갈까 걱정돼 입을 닫고 있는 것이라면 더 우습다. 부부 사이에선 감동적 순애보일지 모르겠으나, 지켜보는 국민들에겐 민망한 풍경일 뿐이다.
대법원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판사들이 대통령 비판 패러디물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을 때는 야단법석이더니 훨씬 더 심각한 이번 사건에는 왜 오불관언인가. 새누리당 공천과 총선이 끝날 때까지 진상 규명을 미룰 생각인가. 아니면 신영철 대법관 파동 때처럼 시간이 흐르면 결국 유야무야될 테니 버티고 보자는 것인가. 양승태 대법원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국민은 법관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지혜롭고 공정한 사람으로서 충분한 품위와 자질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런 국민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거나 기대를 저버린다면 법원과 재판에 대한 신뢰가 싹틀 수 없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김재호 판사가 이러한 법관의 자격에 부합하는 인물인지 대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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