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09일자 사설 '[사설] 경찰청장 사퇴로 억울한 죽음 방관 책임 끝낼 수 없다'를 퍼왔습니다.
수원 20대 여성 납치살해사건 피해자의 안타까운 죽음의 전말과 경찰의 어처구니없는 대응 과정이 속속 드러나면서 유가족은 물론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급기야 어제 조현오 경찰청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경찰의 어설픈 대응으로 무고한 시민이 무참하게 생명을 빼앗겼다면 경찰은 무한책임을 져야 하고 최고책임자인 청장의 사퇴는 당연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기본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경찰 조직은 존재 의미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담당 경찰의 실수 차원이 아니라 경찰 조직의 고질적인 병폐가 누적돼 나타난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조 청장은 어제 회견에서 “112신고센터의 무능함으로 인한 상황 오판과 허술한 대처, 부실 수색 등”을 심각한 문제로 짚고 우수한 인력을 지령실과 상황실에 배치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대책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인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현장의 경찰뿐 아니라 집에서 잠을 잔 수원중부서 형사과장이나 다음날에야 보고받은 경찰서장, 1주일이 지나서야 통화 내용을 알았다는 경기경찰청장까지 누구 하나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건 이후에도, 현장으로 달려가도 모자랄 신임 서장에게 한가하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동정 여론을 조성하려 각 언론사 누리집에 댓글을 달라고 경찰들에게 지시했다니 기가 찰 일이다. 이들의 안이한 인식은 “13시간 만에 잡았으면 빨리 잡은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형사과장의 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현 정권 들어 경찰은 ‘민생’보다는 ‘시국’에 민감하게 반응해왔고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정권의 몽둥이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용산참사로 6명이나 목숨을 잃은 것도, 고무탄 등 테러진압용 무기를 앞세운 쌍용자동차 강제진압도 모두 정권 지킴이로 나선 경찰이 앞장서 벌인 일이다. 경찰관들의 설문조사에서 쌍용차 강제진압 사건을 ‘우수 수사’ 사례로 꼽은 것은 이들이 얼마나 국민과 동떨어진 의식세계에서 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조 청장의 후임에 이강덕 현 서울경찰청장을 검토한다는 소문은 황당 시리즈의 결정판이다. 이 청장이야말로 이른바 ‘영포라인’으로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공직기강팀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경찰에 대해 민생치안은 포기하고 정권 보위에 나서라는 노골적인 주문이 아니고서야 그런 인사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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