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5일 월요일

광주ㆍ대구는 지금 달걀로 바위 깨는 소리


이글은 시사인 2012-03-05일자 기사 '광주ㆍ대구는 지금 달걀로 바위 깨는 소리'를 퍼왔습니다.
광주와 대구는 그 누구도 선거 결과에 이변을 기대하지 않는 뻔한 지역구였다. 그러나 이들이 나선 순간, ‘펀(fun)’한 격전지가 됐다. 전국의 이목이 집중된 이정현·김부겸의 정치 실험장에 갔다.

광주에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대구에 김부겸 민주통합당(민주당) 의원이 깃발을 꽂았다. 공천 신청자가 거의 없었던 덕분에 예선은 무혈입성. 문제는 본선이다. 두 사람이 나선 지역은 특정 정당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뿌리 깊은 일당 독점 지역으로 유명하다. 차라리 무소속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조언은 그래서 꽤 현실적이다. 겁 없이 제 소속 정당 간판을 앞세워 나온 두 사람에게 ‘정치적 자살’이라는 안타까움 섞인 관전평도 뒤따른다. 그래서 전략은? 별수 없다. 정공법이다. 1박2일 동안 두 후보의 뒤를 쫓았다. ‘사즉생 생즉사’라는 말은 달걀로 바위를 치려는 두 사람에게 종교나 다름없었다.

민주당의 오랜텃밭인 광주서구을에서 출마를 선언한 새누리당 예비후보 이정현 의원이 개소식을 갖기 전 지역구를 돌며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20120220 시사IN 조우혜

■ 광주 서구을:파란 싹, 틔울까? 

이정현 의원실 이현진 보좌관은 미안함으로 연방 고개를 숙였다. 2월20일은 광주 서구 상무동에 위치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의 선거사무실 개소식이 있는 날이었다. 개소식 몇 시간 전부터 몰려드는 화환 100여 개를 거절하느라 이 보좌관은 진땀을 빼고 있었다. “선거사무실이 작아 화환 놓을 자리가 없다. 예상치 못한 환대다.” 화환만 도착한 건 아니었다. 선거사무실 안에는 개소식 몇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진을 치고 있었다.

개소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인사들 또한 이례적이었다. 시민단체·전교조 등의 지지를 받아 당선돼 진보 교육감으로 분류되는 장만채 전남교육감은 “개소식 방문과 축사가 파장을 부를 수도 있겠지만, 이 의원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감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어머니 모임인 오월어머니집의 이명자 원장 또한 축사에 나섰다.

민주당 광주시당의 김홍관 노동분과위원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김홍관 위원장은 “오기 전에 한 최고위원과 통화를 했다. 이 의원 개소식에 가서 축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말리더라. 그렇지만 총선은 지역 대표를 뽑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정현 의원은 이들에게 거듭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여기가 어딘가. 호남의 중심, 광주 서구다. 새누리당에게는 동토의 땅이었던 이곳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전남 곡성 출신으로 스물여섯 살에 정치를 시작한 이 의원은 1995년에는 시의원으로, 2004년에는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광주 서구을에 출사표를 낸 전력이 있다. 한나라당 로고가 찍힌 명함을 건넬 때면 눈앞에서 곧장 찢어버리는 유권자를 심심찮게 만나던 시절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그가 받은 성적표는 참담했다. 11만명 서구을 유권자들에게 그가 얻은 표는 720표, 0.65%였다. “내가 2004년에도 여기 출마했다고 하면 유권자들이 놀란다. 내가 출마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웃음).” 광주의 31개 지역구 중 단 한 석도 새누리당이 얻지 못했다. 그렇게 된 역사가 벌써 30년 가깝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과의 인연도 그때 시작됐다. 2004년, 불모지에 뛰어든 ‘용감한’ 이 의원에게 박 위원장이 먼저 전화를 건 것. 이 의원은 박 위원장과의 식사 자리에서 ‘다시 보지 않아도 좋다’라는 절박함으로 새누리당의 ‘호남 홀대’에 대해 성토했다. 묵묵히 이 의원의 말을 수첩에 옮겨 적던 박 위원장은 그를 2007년 자신의 대선 캠프 대변인으로 앉혔다.

이후 비례대표 말번(末番)으로 국회에 첫 입성한 게 2008년, 그는 캠프가 해산되고 박 위원장의 대변인 자리를 떠나서도 ‘대변인 격’으로 늘 그의 입이 되어왔다. 그러나 박 위원장의 입으로만 보낸 4년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호남 지역 언론이 붙여준 ‘호남 예산 지킴이’라는 별명이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 일주일에 7번, 한 달에 30번씩 서울과 호남을 오가며 지역 밭을 갈았다. 남들은 한 번 하기도 어렵다는 국회 상임위 예산결산위원회 위원으로 4년 내내 버틴 힘도 자신이 새누리당의 호남 지역 ‘대표 선수’라는 사명감에서 나왔다.

“국회에서 대정부질문 등 발언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누가 비웃든 말든 ‘호남 출신 새누리당 비례대표 이정현입니다’라고 인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질문의 절반은 가급적 호남 현안으로 했다. 당에 호남을 대표할 만한 선수가 한 명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4년을 지켰다. 이번에는 광주가 이정현을 한 번만 지켜달라고 호소하고 다닌다.” 그가 맨 노란 넥타이에는 새누리당 상징 색인 파란색 새싹이 자수로 놓여 있었다. 

그러나 2월21일 여론조사 결과는 이 의원의 당선이 녹록지 않음을 숫자로 보여준다. 이 의원의 지지율은 19.5%로 김영진 현 민주당 의원의 30.9%에 비해 11.4% 포인트 뒤졌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이 4.6%인 것에 비하면 이 의원 개인의 지지율은 4배 이상 높다. 

이 의원의 ‘맞수’가 될 가능성이 큰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6선을 노리지만 ‘물갈이’ 압박이 고비다. 김 의원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72.5%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된 바 있다. 이 밖에도 서대석 전 참여정부 비서관과 김이강 노무현재단 광주운영위원, 김성숙 전 광주시의회 행정자치위원장과 이상갑 전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장이 민주당 안에서 치열한 예선전을 벌이고 있다.

야권 연대도 변수다. 통합진보당이 야권 연대 대상 중 한 곳으로 서구을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야권 연대가 성사되지 않아 오병윤 전 민주노동당 사무처장이 후보로 나간다면 캐스팅보트 구실을 할 가능성이 크다. 오 후보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17.7%의 득표율을 얻어 김영진 의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 의원은 요즘 하루에 30개 가까운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한다. 지역 주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시간은 늘 지체되곤 한다. 속이 타는 건 수행비서뿐이다. 2월20일 잡힌 이 의원의 저녁 식사 인사 일정만 해도 7군데였다. 그러나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이 약속은 12군데로 늘어났다. 오라는 곳은 어디든 거절하지 않는다. 이동하는 중간중간에 쪽잠을 청하곤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벨은 그를 쉬게 놓아두지 않았다. 여전히 018 번호를 고집하는 이 의원의 휴대전화 통화연결음은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다.


ⓒ시사IN 백승기 2월21일 김부겸 민주통합당 의원(맨 오른쪽)이 대구 수성갑 지역의 대학생들을 만났다.

■ 대구 수성갑:민주당의 폐허를 수성하라!

“악수 한번 하입시더.” 엘리베이터 안에서 명함을 건네니 뚱하며 돌아서는 유권자를 향해 김부겸 의원이 넉살좋게 웃었다. 민주당 최고위원이고 경기 군포에서 3선이나 한 중진 현역 의원이 받는 대접치고는 박하다 싶었다. “여기서야 내가 그저 ‘후보’ 중 한 사람에 불과하지 뭐. 모르고 온 것도 아니고, 당연하다. 내가 그래서 요새 ‘미모’에 신경을 좀 쓴다(웃음).” 김 의원은 양복 양쪽 주머니에는 명함을 한 뭉텅이씩, 안쪽 주머니에는 늘 빗을 꽂고 다닌다.

그나마 민주당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명함을 선선히 받아주면 다행이다. “명함 돌리는 게, 마치 ‘접선’하는 느낌이다. 명함을 받으면서 ‘받아도 되나’ 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두리번두리번하는 사람도 있다(웃음).” 김부겸 의원실 이진수 보좌관의 말이다.

이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는 확실히 낯선 존재다. 1985년 이후 대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사례가 전무하다. 정당 색이 차라리 확실한 진보 정당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게 대구 지역에서의 민주당이다. 중앙에서야 제1야당이지만, 이 지역에서 민주당은 ‘호남당’ ‘군소정당’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난 18대 총선에서는 아예 후보도 내지 못했다. 수성갑뿐만이 아니었다. 대구의 12개 지역구 중 고작 2개 지역구에서만 후보를 냈다. 그런 대구에도 조금씩 변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간판을 내걸고 후보가 나선 지역구가 10군데. 민주당 후보 중 ‘중량감’이 가장 큰 김부겸 의원의 캠프가 중심축이다.

서울로 따지면 강남역사거리라 할 수 있는, 대구 범어네거리에 구한 선거사무실도 처음에는 ‘폐허’ 그 자체였다. 공사 중이었던 건물 3층에 사무실을 구하고 처음 들어섰을 때 폐자재가 꽉꽉 들어차 있었다. 천장을 새로 만들 수 없어 급한 대로 현수막으로 가림막을 쳤다.

발등의 불은 전무하다시피 한 바닥 조직이었다. 김 의원은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를 비롯해 대구 광복회, 6·25 참전 전우회 등 지역의 안보 및 직능 단체도 찾아다녔다. 이 지역에서는 보수 단체 기관장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대한 까닭이다. “그분들 말씀이 ‘현역 의원이 우리를 찾아오는 건 처음 봤다’고 한다. 선수(選數) 한 번 더 쌓으려고 내려온 게 아니라는 점도 마음을 움직인 듯하다. 선거운동에 관해 이런저런 코치도 해주고, 우호적이다”라고 캠프 관계자가 말했다.

그렇지만 벽에 부딪히는 날이 더 많다. 최근 민주당이 ‘1989년 방북 사건’의 당사자인 임수경씨에 대해 영입 의사를 밝혔다는 기사가 나오자 그간 우호적이던 몇몇 단체는 격한 항의를 표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후보 개인에 대한 거부감보다 당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크다. 벌써 선거에 이긴 듯 취해 있는 당 분위기도 김 의원은 못마땅하다. 얼마 전 최고위원 회의에서 쓴소리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캠프 관계자는 김 의원이 두 가지 큰 산을 넘어야 한다고 본다. 첫 번째는 ‘지역주의 타파’ 구도로만 가면 안 된다는 것. “새누리당 일색의 지역주의 어쩌고 말하면 여기선 안 먹힌다. 그건 중앙의 시각이다. 이쪽 사람들은 민주당이 언제 찍을 만한 후보를 내놓은 적 있느냐고 되레 묻는다. 새누리당에 대한 짝사랑을 끝내고 싶어하지만, 욕해도 내가 한다는 그런 정서가 크다.” 

두 번째는 ‘친박’ 정서다. 16대 비례대표를 지내고, 이 지역에서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이 김 의원의 ‘맞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의원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제 가정교사’로 꼽히는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 중 한 사람이다. 이 의원 역시 당에서는 물갈이해야 할 중진 의원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김 의원이 상대로 나서면서 공천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78.4%를 득표했다. 

이 밖에도 새누리당에서는 김성현 전 대구시외국어교육협의회장, 김영우 당 중앙위원회 대구시연합회 부회장, 김대현 전 대구시의원, 서성교 새누리당 중앙연수원 교수, 신창규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정재웅 변호사, 박기현 한국공인노무사회 감사 등이 예비후보로 뛰고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는 김 의원이 부딪힌 대구의 벽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2월20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 의원 지지율은 25.5%로, 이 의원 49.6%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 투표할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는 부동층도 11.6%밖에 되지 않아, 남은 선거 기간 김 의원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일이 고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짐짓 여유를 보였다. 가 2월13일 수성갑 유권자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전 인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 의원이 46.8%로, 꽤 높은 인지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한구 의원에 대한 지역 교체 여론이 높다. 과 대구KBS의 2월 초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역 유권자 56.8%가 현역 의원을 교체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유권자와의 접촉이 많아질수록 지지도도 함께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 캠프에서도 가장 큰 숙제는 역시 야권 연대다. 수성갑은 진보신당이 대구에서 유일하게 후보를 내는 곳이다. 이연재 진보신당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16%의 득표율을 보이는 등, 오랫동안 지역을 닦아온 사람이다. 캠프 관계자는 “한 개인 이전에 한 정치세력의 운명과도 연결된 문제라 조심스럽게 대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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