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8일 목요일

[사설]구럼비가 운다, 제주도가 운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307일자 사설 '[사설]구럼비가 운다, 제주도가 운다'를 퍼왔습니다.
역사를 들먹이는 것이 때로는 비겁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어제 구럼비 바위 지역에서 발파를 강행한 것은 부끄러운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바닷가에 펼쳐진 구럼비 바위는 국내 유일의 바위 습지이자 세계적 희귀지형이다. 강정마을 일대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며 정부와 제주도가 지정한 해양보호구역·문화재보호구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곳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며 폭약을 퍼붓는 행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다.

우리는 ‘평화의 섬’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명분 면에서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절차적으로도 심각한 하자가 있음을 계속 지적해왔다. 최근 민간단체도 아닌 국무총리실 산하 기술검증위원회가 기지 설계에 오류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정부는 공사를 밀어붙였다. 여기에 4·3사건과 같은 아픈 과거사를 지닌 제주도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무차별 연행을 일삼는 등 공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이명박 정부는 왜 이처럼 무모한 일을 자초하는가. 언급하기도 민망하지만 ‘오기’가 작용했을 법하다. 한반도 대운하에서 물러서고, 세종시 문제에서 분루를 삼켰으며, ‘속도전’으로 강행한 4대강 사업의 폐해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또다시 밀려서는 안된다는 생각 말이다. 한 달여 남은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할 경우 기지 건설이 완전히 물건너갈 것이라는 우려도 보태졌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 지점에 있다. 민주국가의 정부는 시민의 뜻에 따라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여론을 거스르며 오기를 부려서는 안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참여정부 당시 결정됐다고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비겁하다. 지금 구럼비 발파를 강행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이고, 공사를 멈출 수 있는 것도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이다. 

제주도는 해군기지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명령을 사전예고하면서, 청문기간 동안 공사를 일시 중지해줄 것을 해군에 요청했다. 국방부는 그러나 “계획대로 공사를 실시할 것”이라며 구럼비 발파를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기지를 건설한다면서 그 과정에 ‘반평화적’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국가폭력’에 불과하다. 국가안보의 기본적 토대는 시민의 자발적 동의다. 시민들이 쇠사슬에 몸을 묶어가며 저항하는 군사기지를 수백개 건설한다 한들 안보가 보장되겠는가. 한 나라 안에 ‘전쟁터’를 만들고 신부와 수녀들이 목숨 걸게 하는 정권은 ‘나쁜 정권’이다. 구럼비의 눈물, 제주도의 눈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망각하는 순간, 역사는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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