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8일 목요일

경제정책의 기본은 ‘고정관념의 탈피’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3-07일자 기사 '경제정책의 기본은 ‘고정관념의 탈피’'를 퍼왔습니다.

한국경제가 갖고 있는 문제는 너무 많고 고질적이다. 경제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괜찮은 일자리 부족, 직업 또는 직장간 보수와 안정성의 과도한 격차, 물가상승과 서민가계의 생활고, 전세 폭등과 집값 불안, 가계부채와 정부부채의 급증, 임대소득자와 고소득 자영업자 등의 세금 탈루, 금융 산업의 낙후성, 금융과 실물 면에서의 과도한 개방, 중소·중견기업의 취약과 재벌의 경제력 집중 등 큰 덩어리만 보아도 이 정도로 많다.  여기에다 과다한 사교육과 죽기 살기 식 입시경쟁으로 대표되는 교육문제도 직업 간 과도한 격차 즉 국민경제의 과실을 승자가 독식하는 경제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 문제가 다른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문제들이 대부분 구조적이어서 한두 가지 정책으로 단기간에 해결되기도 어려워 보인다.
2013년에 대비한 한국경제의 새로운 발전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그간 언론이나 많은 학자·전문가들이 만든 한국경제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나 생각을 떨쳐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금리인하나 환율인상을 주장하는 사람을 성장론자로 부르는 것, 일자리 부족은 투자부진 때문이라는 것, 우리나라 은행은 규모가 작아 경쟁력이 없다는 것 세 가지이다. 이 세 가지 고정관념이 여러 경제정책의 실패에 근저에 자리하고 있다.
저금리, 고환율, 재정지출 확대의 실상은?
첫째가 금리인하나 환율인상, 재정지출 확대가 성장정책이며 이러한 정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성장론자라고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은 장기적으로 생산요소인 자본, 노동, 기술과 이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것이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원칙의 하나이다. 이른바 성장론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 금리인하, 환율인상, 재정지출 확대로 자본축적이 빨라지고 노동인구가 늘어나고 근로자의 숙련도가 개선되고 기술향상이 촉진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보아도 쉽지 않다.  만약 이러한 정책으로 자본·노동·기술 수준을 바꾸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면 세계에서 저개발국가로 남아 있을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수단은 약간의 거시경제학 지식만 있으면 큰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인하, 환율인상 등은 일시적으로 성장을 촉진할 수 있으나 공짜 점심이 없듯이 반드시 부작용이 있고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의 효과마저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욱이 시장의 흐름이나 경제여건에 맞지 않는 금리인하나 환율인상은 단기적인 경기부양 효과마저 내지 못한 채 시장을 왜곡하는 반시장적 정책이 되거나 물가상승, 부동산 거품 등의 부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 시장과 경제여건에 맞지 않는 정책이 여러 번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2008년 초 환율의 급격한 상승을 유도한 정책이다.
금리, 환율, 재정 등의 거시경제정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을 위한 정책수단이 아니고 경기변동의 진폭을 축소하고 가격변수의 급격한 변동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수단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성장론자는 금리, 환율, 재정 등의 거시정책에만 매달리지 않고 성장의 결정요인인 자본총량과 가용노동량 확대, 기술혁신 등을 위한 법과 제도, 관행 개선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진정한 성장정책은 가계저축 확대와 생산적 투자 혁신을 위한 정책, 여성인력 활용도 제고와 노동시장의 불균형 해소 등을 통한 가용인력 확대정책, 과학기술 육성을 위한 교육개혁정책, 농업과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 등이다. 이렇게 본다면 여성의 경제활동을 확대시키는 공공 보육시설 설치나 노동시장 불균형 해소를 위한 실업급여 확대정책은 복지정책이기 이전에 훌륭한 성장정책이고 경제발전정책이다.
일자리 부족이 투자부진 때문인가?
두 번째 벗어나야 할 고정관념은 한국의 일자리 부족문제가 투자부진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중요 일자리 대책은 공공근로나 인턴 확대 등을 제외하고는 주택건설과 토목공사 등 건설투자 확대, 금리인하 등을 통한 투자 활성화, 재계 인사와의 회합 등을 통한 기업의 투자 요청 등 거의 모두가 투자 확대와 관계되는 것이었다. 즉 역대정부는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일자리 창출을 위해 투기조장에 가까운 주택경기 부양책을 쓰거나 환경파괴를 무릅쓰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했으며 기업의 불법과 탈법을 용인하면서까지 투자확대를 요청했다. 그런데도 고용상황은 국민 모두가 느끼듯 모두 나빠지고 있다. 장기간 지속된 투자확대정책에도 실업문제가 악화되고 있는 것은 일자리 부족이 투자부진 때문이라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독일, 일본, 대만 등에 비해 높은 상태를 1980년대 이후 장기간 지속하고 있어 경제구조상 투자가 부족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다 기업은 많은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신규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그나마 기업의 투자도 공장을 새로 짓거나 시설을 늘리는 것 보다는 고용효과가 마이너스인 다른 기업의 인수나 합병, 해외투자에 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투자가 어느 정도 포화상태에 이르러 기업이 기대하는 수익을 낼만한 신규 투자기회를 찾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다 건설투자는 이용객이 거의 없는 지방공항, 세금만 축내는 민자 고속도로와 교량, 중복 건설되어 다니는 차가 거의 없는 지방도로, 수도권의 미분양주택 등 심각한 과잉 징후가 곳곳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일자리 부족은 투자부진 때문이 아니고 투자와 수출 등이 늘어나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정책실패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전처럼 투자가 늘어나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가 저절로 늘어나는 호시절은 지나갔다. 이는 10억 원 직접생산에 필요한 취업자 수인 취업계수의 변화추이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2005년 가격기준 전 산업 평균 취업계수는 1995년 15.9명, 2000년 10.9명, 2009년 7.2명으로 낮아졌다. 특히 제조업 취업계수는 1995년 8.5명에서 2009년 2.5명으로 크게 하락했다. 즉 같은 상품을 만드는데 드는 인력이 14년 만에 1/3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와 같은 일자리 창출능력 약화는 경제발전과 산업구조 고도화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취약한 경제구조와 정책실패 등이 결합되어 더 심화된 것이다. 한국의 수출산업은 자본집약적 산업의 비중이 크고 부품·소재산업의 경쟁력이 취약해 수출액이나 생산금액 대비 전후방연관효과가 작다. 한국은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계수가 2008년 0.533으로 일본 0.834(2005년), 독일 0.686(2007년)보다 낮아 1,000원 상품을 수출하면 533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467원은 원자재 수입 등으로 국외로 유출된다. 이와 함께 수출은 취업유발계수가 9.4명으로 소비 17.1명, 투자 13.1명보다 크게 작아 수출이 늘어나도 내수가 위축된다면 고용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는 구조이다.
그리고 노동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실질적인 대책이 거의 없었다는 것과 노동시장 경직성에 대한 잘못된 대응도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큰 요인이다. 한국은 직업과 직장별로 보수와 안정성 등에서 차이가 너무 커서 구직자들은 당장 일자리가 있어도 전문직이나 공무원 등과 같은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게 된다. 반면 중소기업과 지방기업 등에서는 인력 확보와 수시로 교체되는 직원의 교육에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이와 같은 구직자와 구인자 양측의 불균형이 실업자를 늘리는 한 요인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파견직이나 계약직이 광범위하게 도입됨에 따라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중 구조화되었다.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의 정규직처럼 좋은 일자리는 경직성이 개선되지 않고 경기가 좋아져도 채용이 크게 늘지 않는다. 반면에 비정규직은 노동유연성이 과도하게 높을 뿐 아니라 보수도 낮은 탓에 비정규직 취업자 대부분은 스스로를 취업상태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비정규직 확산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등 노사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어 그 자체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종합해 보면 투자와 수출 확대 등과 같은 외형적 성장으로는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고 경제 체질을 일자리 창출이 큰 경제구조로 바꾸는 정책,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제도나 관행의 개선, 노동시장의 불균형 완화정책 등이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정책이라는 것이다.
대형은행이 경쟁력이 높다?
세 번째 잘못된 생각은 은행의 규모가 커져야 경쟁력이 있고 은행이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 것이 은행경영을 잘해서라는 것이다. 은행을 대형화해야 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은행은 대형화될 수 있지만 대형은행이 경쟁력을 갖는다는 보장은 없다. 세계적인 대형은행은 경쟁력 있는 은행이 영업의 다변화, 국제화 등 제대로 된 경영을 통해 장기간 성장한 결과물이다. 은행이 대형화된다고 저절로 경쟁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합병 등으로 대형화된 은행이 경영실패로 도산할 경우 한국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될 수 있다. 우리금융지주, KB금융지주 등의 자산 규모는 한국의 1년 예산 규모인 300조 원을 상회한다. 은행은 매우 위험한 산업으로 세계 금융위기 사례에서 보듯이 세계적 은행도 잘못하면 쉽게 망한다. 우리도 예외일 수 없어 언젠가는 한국의 대형은행도 도산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대형은행의 도산이 국내에 주는 피해는 UBS, HSBC 등과 같이 국제화된 대형은행의 도산이 해당 국가에 주는 피해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한국의 대형은행은 영업이 거의 대부분 국내에 집중되어 있어 도산의 피해가 모두 국내에 남기 때문이다. 경쟁력없는 대형은행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일본의 은행산업이다. 당시 자본이나 자산 규모 등을 기준으로 세계 10대 은행의 절반 정도가 일본계 은행이었다. 당시 일본계 은행은 큰 덩치를 기반으로 국제화를 적극 추진했으나 1990년대 말에 위험관리능력과 국제금융능력 부족 등으로 대부분 부실화되어 일본 경제에 큰 짐만 남긴 채 합병 등을 거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한국의 대형은행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몇 조원씩 순이익을 내고 감독당국이 수수료율 인하와 사회공헌 확대를 종용할 정도로 은행산업의 수익성이 매우 좋다. 이와 같은 은행산업의 고수익은 뛰어난 경영능력 덕분이 아니고 은행의 신설금지 등 정책당국의 과보호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 은행이 독과점적 이익을 향유할 수 없는 외국에서는 제대로 영업을 못하고 국제경쟁력이 없다는 점, 경쟁과 업무규제가 심한 서민금융기관의 경우 경영상태가 나쁜 기관이 많다는 점, 시장이 보다 경쟁적인 보험과 증권 부문의 경우 경영상황이 안 좋은 기관이 꽤 있다는 점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한국의 은행산업은 신규 진입이 없는상황에서 합병 등을 통해 손쉽게 대형화하여 고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칼럼은 계간 ‘광장’(2012 봄)호에 게재된 필자의 글 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