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5일 토요일

카인은 박효종인가 노무현인가?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1-05일자 기사 '카인은 박효종인가 노무현인가?'를 퍼왔습니다.
그가 살아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저주했던 노무현은 죽었다.

아래 글은 필자가 2009년 5월 4일에 쓴 글이다. 때마침 박효종 교수가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에 참가한다고 하기에 얼핏 기억이 나서 찾아봤다. 당시 제목은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대답 안 해도 된다!  - 박효종, '참회의 눈물을 흘릴 법도 한데, 피의자의 권리만 강변' 주장"이었다.

박효종 교수는 당시 중앙일보가 연재한 기획시론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카인에 비교하면서 살아서 죽는 날까지 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조의 글을 게재했었다. 그런데 그만 노 전 대통령은 그로부터 20일이 안 되어 세상을 뜨고 말았다. 노무현 그는 카인인가 아벨인가? 아니면 카인이 되기를 거부한 인간인가...

세월이 흘러 이명박 정부 5년도 모자라 박근혜 정부를 시작하는 마당에 인수위 정무 분과 간사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은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다른 무엇보다, 지난 날 자신이 뱉은 말과 써댄 글을 먼저 되돌아보는 것으로 과연 자신이 인수위에 참가하는 것이 적합한지부터 되돌아봐야 할 듯하다.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정부가 잘 운영되기를 바랄 것이기에 이를 준비하는 일은 너무도 중요하고, 따라서 인수위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자격이 요구되어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이 후보 시절부터 주구장창 하는 말이 마침 "대통합"이지 않은가? 하니 과거에 대해 한마디 쯤은 변명하고 시작하더라도 해야 인간이지 싶다!

------------------- 아래 ---------------------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대답 안 해도 된다! 

중앙일보가 '노무현 딜레마'에 대한 각계 전문가의 슬기로운 해법을 듣겠다고 '기획 시론'을 준비했다고 한다.

웬 '딜레마'인가 살펴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며, ‘구속, 불구속, 실형이냐 아니냐’로 또 다른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 될까 걱정스러워 마련했다고 하니, '노무현 딜레마'를 만든 주역 중에 하나가 중앙일보이고 보면, 만시지탄이지만 뿌린 자가 거둬야 하는 세상 이치를 이제야 깨달은 것 같아 새삼 기특하기도 하다. "참 잘했어요!" 라고 칭찬을 해야겠다.

시리즈의 첫 번째 필자로 나선 사람이 서울대 윤리교육과 박효종 교수다.

사실 조목조목 따질 것도 없이 박 교수의 "노무현에게 ‘카인의 벌’을!"이란 글은 비윤리적이다. 이런 글을 서울대학교 교수, 그 것도 윤리를 교육한다는 사람이 썼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는 일단 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범죄자로 단정하고 있다. 피의사실 공표가 범죄인지, 무죄추정의 원칙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한 검찰과 받아쓰기에 능통한 언론이야 쓰레기로 치부한다 쳐도, 서울대 교수씩이나 되는 사람이 얼마나 비윤리적인지 상상을 초월한다. 나아가, 두말할 필요 없이 비윤리적임을 본인은 쓰면서도 몰랐을 터이니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불쌍할 뿐이다.

그는 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진실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국민과 국가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고 충고하고 있다.

또한 "참회의 눈물을 흘릴 법도 한데, 피의자의 권리만 강변"한다고 비판하면서, 그러나 불구속을 전제로 실형 또한 면하도록 사법처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개인을, 나아가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을 사법적 판단에 앞서 범죄자로 단정짓는 것도 모자라 이에 대한 처벌 수위까지 혼자 정한 듯 한데, 이름없는 교수일지언정 중앙일간지 기고문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가 경이스럽기까지 하다.

제안에 불과했었다고 변명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적인 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일은 비판과 함께 사법적인 부분까지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그는 글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국민과 국가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고 충고하면서, 이와 상반되게 피의자의 권리를 강변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실이 어떻든 무조건 인정하고 참회하라는 말이다.

사실은 무엇이든 존재했을 것이고 진실은 어디까지나 하나일 텐데, 전직 변호사처럼 품위 없이 행동한다고 나무라면서 진실은 검찰의 발표에만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야 그의 자유이겠지만, 이런 윤리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학생의 입장을 살피건대, 필자의 머리까지 아프다.

이에 더해, 설득력 없이 ‘카인과 아벨’을 들먹이면서,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배반했으니 죄가 있더라도 감옥에 가지 말고 카인처럼 일생 동안 유랑하면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부분에 이르면 말문이 막힐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 다수의 선택으로 당선되었던 바, 이는 그가 한 시대의 가치를 상징하고 있음을 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논란을 일으켜 면목이 없고, 가족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니 면목이 없을 법도 하다. 개인으로서 당연한 입장이겠지만, 그가 한 시대의 가치로서, 또한 그를 지지한 국민에 대한 도리로서 진실이 무엇인지 다투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개인으로서 명예를 잃는 수준에서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사실 관계를 더욱 정확히 해야 할 의무 또한 있다는 말이다.

이를 통하여 그가 한 시대의 가치와 국민적 신뢰를 욕되게 했다면 그 출발선에서 우리 국민은 다시 미래를 열어야 할 것이고, 그가 어떤 세력의 정치적 의지에 의해 명예가 더럽혀진 것이 분명하다면 또한 그 출발선에서 미래를 열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안은 숙제다. 이제는 역사적 문제로 발전한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법리적 다툼을 임의로 포기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과연, 오늘 이 시점에서 노 전 대통령을 피의자가 아닌 범죄자로 규정할 수 있는가?

서울대 윤리교육과 박효종 교수는 이에 대답 안 해도 된다 

기획 시론
① 노무현에게 ‘카인의 벌’을! [중앙일보] ‘노무현 딜레마’ 해법은?
2009.05.03 19:22 입력 / 2009.05.04 01:22 수정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구속과 불구속, 실형이냐 아니냐 등을 놓고 여론이 갈려 있다. 자칫 이 문제가 또 다른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노무현 딜레마’에 대한 슬기로운 해법은 무엇인가.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시리즈로 싣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겁했다. 대통령 재임 시 “반칙과 특권을 없애겠다”며 외치던 패기는 어디 가고 법망을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가. 국민 앞에선 “면목 없다”고 하면서도 검찰 앞에선 ‘모르쇠’로 일관하는 그의 모습이 국민을 식상케 하는 또 다른 형태의 위선임을 왜 모르는가. 호사가들은 검찰과 진실게임을 벌이는 그의 모습에서 야릇한 재미를 느낄는지 모르나, 진실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국가에 대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봉사다. 하나 그런 기대가 충족될 가망이 별로 없으니 참담하고 무거운 마음뿐이다.
국정을 책임졌던 대통령이라면 죄를 고백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릴 법도 한데, 피의자의 권리만 강변하는 전직 변호사처럼 품위 없이 행동하는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필자는 바로 그의 그런 태도 때문에 ‘사법처리’에 신중을 기할 것을 제안한다. 즉 그의 혐의에 대해 검찰은 불구속을 전제로 철저히 조사하고, 법원은 엄정히 심판하되 실형만은 면하도록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 문제는 검찰과 법원의 몫이긴 하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의견을 밝히는 것이다.
바이블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카인과 아벨은 형제였다. 카인은 사냥꾼이었지만 충직하지 않았고 아벨은 농사꾼이었지만 충직했다. 어느 날 자신의 제사가 아벨과 달리 신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깨달은 카인은 아벨을 죽인다. 신은 묻는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는가.” 카인의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신의 질책은 추상같았다. “아벨의 피가 하늘을 향해 부르짖고 있다. 너는 그 벌로 일생 동안 땅을 유랑하게 될 것이다.” 신은 왜 살인죄를 저지른 카인을 죽음으로 처벌하지 않고 평생을 유랑하도록 명했을까. 아마도 카인의 죄가 일순간의 죽음으로는 기워 갚을 수 없을 만큼 컸기에 일생을 두고 참회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검찰 앞에서 “물증을 대라”고 역공을 취하는 노 전 대통령의 태도에서 ‘동생을 지키는 사람’ 운운하며 시치미를 뗀 카인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느낌을 받는다면, 카인이 받았던 벌의 의미를 새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복역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그가 저지른 권력부패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도, 그의 비리가 ‘생계형 범죄’에 해당하기 때문도 아니다. 또 ‘국민적 통합’이라는 모호한 명분이나,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 때문은 더군다나 아니다.
정작 그 이유는 따로 있다. 대통령 재임 시 저지른 죄가 너무나 중대하기에 국민들로부터 쉽게 용서를 받을 수 없게 하기 위함이다. 노 전 대통령이 일정 기간 수형생활을 한다면 그것으로 죗값을 다 치렀다고 생각하지나 않을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나서 정치를 재개한다고 선언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 그렇지 않더라도 ‘산 권력’이 ‘죽은 권력’을 박해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순교자’처럼 행세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에 큰 낭패다.
분명 그의 권력부패와 위선은 얼마 동안 감옥에 간다고 해서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아니다. 깨끗한 정치를 하라고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배반했다면, 그 죄는 일생 동안 유랑하면서 죗값을 치른 카인처럼 살아야 비로소 기워 갚을 수 있다. 지금 노 전 대통령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힘이 없어 당한다는 생뚱맞은 마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국민 앞에 속죄하는 마음이다.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깨달으며 두고두고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의미다. 고백과 참회보다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하는 노 전 대통령이 일정 기간의 수형생활보다 역시 ‘모르쇠’로 일관함으로써 일생 동안 유랑하는 천형(天刑)에 처해졌던 ‘카인의 벌’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박정원 편집위원  |  pjw@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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