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1일 목요일

[사설]대통령 당선인에 반말해 경고받은 ‘개콘’


이글은 경향신문 2013-01-30일자 사설 '[사설]대통령 당선인에 반말해 경고받은 ‘개콘’'을 퍼왔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KBS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 코너에 대해 경고 조치를 내린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어제 경향신문 등의 보도에 따르면 방통심의위는 지난해 12월23일 방송된 (개콘)의 이 코너에서 개그맨 정태호가 박근혜 당선인을 대상으로 “잘 들어”, “절대 하지 마라” 등 반말로 발언한 것을 문제삼았다. 지난 16일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심의한 결과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 유지) 1항에 위배된다고 판단해 행정지도 조처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방송은 품위를 유지하여야 하며 시청자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방통심의위가 이 코너에 취한 것은 ‘의견제시’란 조처다. 의견제시는 방송심의 규정의 위반 정도가 경미한 사업자 등에게 내려지는 행정지도이다. 별다른 법적 구속성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징계의 정도가 아니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유념해야 할 것은 어떤 코미디 프로가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반말을 썼다는 것을 국가기관이 문제삼아 공식적으로 심의까지 벌였다는 사실이다. 방통심의위란 무엇인가.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심의·제재를 하는 민간독립기구이다. 당연히 정치적으로 독립되고 자율적인 기능이 요구된다. 

그러나 방통심의위가 (개콘) 코너에 취한 조치는 근거부터 희박하다. 심의규정상의 ‘품위 유지’나 ‘시청자에 대한 예의’는 다분히 모호한 개념으로,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맥락적 이해 없이는 자의적 견강부회로 흐를 우려가 크다. 방통심의위는 반말과 함께 “국정을 시작하지도 않은 당선인을 대상으로 훈계조로 발언한 것”을 문제삼고 있으나 이것도 이상하다. ‘용감한 녀석들’ 코너는 누구에게든 반말을 하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그렇다면 대통령 당선인에게만은 어떻게 해서든 존대를 하고 훈계조를 피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민주당 대변인이 논평한 대로 방통심의위가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불필요한 행정조치였다. 혹시 이 조치엔 쓸데없이 당선인을 코미디 소재로 올리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인가. 박 당선인 본인이 그런 것을 바라지는 않겠지만, 그런 용도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른바 ‘알아서 기기’의 심리가 작동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는 일전에 농림수산부의 ‘제2의 새마을운동’ 추진 계획에 대해 ‘코드 맞추기’ 혐의를 둔 바 있거니와, 이번 것도 구시대적 과잉충성 경쟁의 소산이라면 참으로 걱정된다. 걱정 정도가 아니라 상상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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