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8일 월요일

언론문제 말하지 않는 언론은 언론일까


이글은 미디어스 2013-01-27일자 기사 '언론문제 말하지 않는 언론은 언론일까'를 퍼왔습니다.
[한줌의 미디어렌즈] 인수위 불통과 기자들의 또 다른 침묵

검색하다 (박근혜 “어휴! 저도 잘 아는데요…”)라는 기사 제목이 나와 뭔가 싶었다. 1월 23일자 문화일보 기사였다. 이렇게 시작한다.
“어휴! 저도 잘 아는데요….”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2일 당선인 측의 주요 관계자로부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오후 4시 발표’ 관행과 관련한 언론의 불만과 일각의 문제제기를 보고하자 이 같이 말한 것으로 23일 전해졌다. 박 당선인 본인도 언론의 사정을 잘 알지만,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만의 ‘프로세스’를 계속할 수밖에 없음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어휴! 저도 잘 아는데요” 했다더라?

나름 제목으로 뽑은 발언인데도 그나마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는 것이고, 여기에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며 해석을 더했다. 참, 애쓴다 싶다. ‘밀봉 브리핑’, ‘불통 인수위’라는 지적도 하루 이틀이고 대변인을 안주 삼는 것도 매일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다. 기사는 만들어야겠고. 그런 와중에 인수위에서 주말인 26일 200자 원고지 74쪽 분량의 당선인 ‘비공개 발언’을 공개했다. 기자들, 한동안 받아 적는 것만도 감지덕지할 것 같다. 앞선 사례 하나 더하자.
당선인이 인수위에 나와 2분간 총리 내정 브리핑을 하던 24일에는 기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검색’이 벌어졌단다. 뉴스토마토 기사에 따르면, 검색대에서는 기자들이 먹던 생수병은 물론이고 호주머니에 있던 껌까지 반입금지품목으로 구분됐다. 이런 인수위 발(發) 기사를 보며 기자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할 맘은 없다. 다른 쪽으로 궁금함이 돋는다. 인수위의 이 같은 언론관계가 새 정부의 언론정책으로는 어떻게 이어질까 말이다. 기자들은 마감 앞둔 ‘오후 4시 발표’에 대비하느라 그런 생각을 할 여력이 없는 건가. 아니면 인수위 대변인의 철통 브리핑 앞에선 어차피 취재가 안 되니 젖혀둔 걸까. 허나 자신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민 혹은 공공의 문제이기도 하지 않은가. 이를 테면 이런 사안들이다.

▲ 9일 오후 1시,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인수위가 위치한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앞에서 언론인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디어스

선거가 끝나고 언론노조, 기자협회 등 언론단체에서 나온 요구가 이명박정권의 언론장악에 맞서 싸우다 해직된 언론인의 복직이었다. 이명박 집권 5년간 부당 징계를 받은 언론인은 해직자 19명을 포함해 455명에 달한다고 한다. 새 정부는 해직 언론인 복직을 위해 힘써줄 생각이 있는가. 공영방송이든 뭐든 노사 문제이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 처리할 문제라고 보는가.

언론공약과 현안, 왜 질문이 없는가

‘언론 파동’의 주요 축인 MBC 사장의 임기는 ‘존중’해줄 건가. 논문 표절 확정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또 어쩔 건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알아서 판단할 일인가. 그렇다면 그 방통위는 인수위가 발표한 정부 부처 개편안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능이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되고 방송 규제 기능만 남는다던데, 이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건가. 그런 방통위가 종합편성채널 선정 관련자료를 공개하라는 고법 판결에 불복하고 상고심까지 끌고 가는데 이는 새 정부 방침에 부합하는 건가.
공약은 어떤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정책 공약 등을 통해 방송 공공성 강화하겠다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과 이사진 구성·사장선출 방식 개선을 거론했었다. 인수위가 다른 건 몰라도 공약 검토 작업은 수행할 텐데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건가. 앞서 MBC의 ‘문제적 사장’이 민영화를 추진하면 이 또한 지배구조 개편에 부합하는 일인가.
미디어산업 육성 방안으로 제시했던 ‘미디어 융합 촉진을 위한 진입 및 영업규제 완화’는 뭘 하겠다는 말인가. 정책 공약집에 박힌 ‘다양한 공공정보를 개방하고 국민과 공유하는 창조정부를 구현하여 국민소통의 강화와 더불어 미래 성장동력으로도 활용함’이란 대목은 구현방안이 만들어지고 있는 건가. 다양한 공공정보를 개방하는 매개로 언론이 껴들어가는 건가. 그리고 여론 다양성을 위한 신문·인터넷매체, 지역언론에 대한 지원방안은 혹시 생각하고 있나. 아니면 여론 다양성 보장은 종편 출범으로 완결했다고 보는 건가.
인수위 취재기자가 1천명에 달한다고 한다. 거기서 정보에 목말라가며 “당선인이 ‘어휴! 저도 잘 아는데요’라고 했다더라”는 기사를 쓰고 있고 당선인의 2분 브리핑 ’보기 위해‘ 생수통도, 주머니에 껌도 반납한다. 청와대 경호실이 장관급으로 격상된다니 기자들에 대한 검색이 더 심해질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당선인과 오찬‘이라도 한 자리 만들어주면 기자들은 또 복장과 헤어스타일부터 조목조목 묘사하며 ”농담을 섞어가며 시종 여유 있게“ ”예의 단호한 표정으로“ ”결연한 어조로“ 해가며 기사를 쏟아낼까. 벌써 원고지 74쪽짜리 당선인 발언에 반색하고 있잖은가.

공공의 문제, 그리고 자신들의 문제

지금도 적지 않은 언론인들이 해직상태에 있거나 현장에서 떠밀려 강제로 브런치를 만들고 요가를 배우고 있다. 문제가 있고,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실효성과 타당성 여부를 떠나 국민방송에 대한 논의와 여론 또한 쉬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언론을 향한 시민들의 포기 못할 애증이다. 언론의 문제는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언론문제를 언론단체나 언론비평매체에서만 다룰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다. 앞서 열거한 그 많은 질문을 던지거나, 대답이 없으면 쟁점 정리라도 하겠다는 생각 혹은 여력도 없어 보인다. 공공의 이해가 걸린, 자신들의 문제인데도 그렇다.
언론이 언론문제를 다루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 언론문제를 거론할 언론의 입이 안 보인다. 인수위의 불통과 언론의 침묵이 만나면 그 여파가 어디로 튈지 굳이 겪어봐야 아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당선인이 ‘어휴! 저도 잘 아는데요’라고 했다더라”는 류의 기사보다, 당선인의 2분 브리핑 보러 검색대 앞에 늘어선 기자들보다 그게 더 답답하다. 

김상철 ‘야만의 언론, 노무현의 선택’ 공저자  |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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