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9일 화요일

박근혜, 기만의 정치냐? 신뢰의 정치냐?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28일자 기사 '박근혜, 기만의 정치냐? 신뢰의 정치냐?'를 퍼왔습니다.
[시민정치시평] 흔들리는 박근혜의 복지공약을 보며

대선이 끝났는데 아직도 정치뉴스로 시끌벅적하다. 언제고 터질 것이라 생각했던 굵직한 정치 사안들이 역시나 터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놓고는 점입가경이다. MB 정부가 치적이라고 자부하는 만큼 4대강 사업이 "체계적 부실"이라는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가히 메가톤급 충격이다. 4대강 사업을 성공적인 성과로 로 역사에 남기고 싶은 MB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다 된 밥에 재가 뿌려지는 꼴이다. 감사결과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은 결과발표의 타이밍 때문인 듯하다. 정부는 총리 주관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감사원의 결과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임명권자에 대한 배신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맞대응이 감사원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것쯤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양건 감사원장이 국회에서 정부의 대응을 "심각한 사태"라고 말한 것은 이런 국면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분명 이 같은 볼썽사나운 대결국면 자체가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18대 새 정부의 상황도 녹록치 않은 듯하다.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공약을 두고 이행여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다. 이 또한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의당 후보 TV토론에서 벌어져야 할 일이 지금에야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표심 공략차원이 아닌, 진정성 있는 복지공약이라면 당연히 공약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재정 계획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을 우롱하는 거짓말이 된다. 하지만 여권 내부의 기류는 심상치 않다. 복지공약을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국채라도 발행해서 복지공약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1월 17일 "공약철회는 있을 수 없다"는 김용준 인수위 위원장의 발언은 이런 변화의 기류에서 나온 것이라 의미심장하다. 박근혜 당선자는 신뢰정치를 외쳐왔다. '한 번 한 약속은 꼭 지킨다'고 공언해왔다. 이런 형국에서 '증세'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은 또 다른 형태의 논란을 일으킬 전망이다. 그만큼 신뢰 정치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반증일 것이다.

4대강 사업과 복지공약 공방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지금 목격하고 있는 두 대형 사건들은 정치인의 말과 행동에 관련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은 항상 미래진행형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약속하고 행동으로 보이려고 한다. 정치인의 신뢰는 오로지 미래를 어떻게 만드는 지에 달렸다. 정치인은 과정보다 결과, 책임보다 확신을 중시한다. 정치인에게 결과는 성공의 척도이고, 성공적인 결과를 위해서 과정이 무시되기 십상이다. 좋은 결과를 이룩한 정치인이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처럼 후일 기억에 남은 정치인이 되기 원할 것이다. 다른 나라를 정벌하고 기념비를 세우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결과 없는 정치인은 망각되고 말 것이다. 후세 기억에 남고 싶은 건 정치인의 열망이다.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응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결과에 민감한 정치인의 속성상 자신의 업적을 부정하면 거부하고 싶을 것일 것이다. 실패는 모든 걸 수포로 만들고, 결국 치적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하지만 MB의 치적 논란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정확히 5년 전 MB는 정치인으로 우리에게 약속을 했다. 약속을 이행했음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결과가 좋으니까 할 일 다 했다고 하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홀로 갈 길을 간 MB정부의 평가는 역사가의 몫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몹시 찝찝하다. 거짓말보다 '기만(欺瞞)당했다'는 느낌이 크기 때문이다. 기만은 고의로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이다. 거짓말보다 기만이 더 기분 나쁜 이유는 상대방이 속았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기만은 단순히 거짓말이 아니다. 정치에서 기만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합작으로 나온다. 그래서 정치적 기만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이다. 그들만의 놀라운 합리성으로 국민을 무지로 몰아넣는다. 나는 다 아는데, 당신은 왜 모르냐고 묻는다. 통계자료와 학술이론을 들이대면서 국민의 무지를 탓한다. 이 구도 안에서 기만은 합리적인 행위가 되고, 그 결과로 진실을 입증하려고 한다.

5년이 지난 지금의 논란은 보의 안전 문제도, 설계상의 하자도, 환경파괴만도 아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 토론은 이제 필요하지 않다. 또 다시 국민의 무지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면 국민을 또 한 번 우롱할 뿐이다. 우리는 이제 무지하지 않다. 그래서 깨어 있는 시민의 관점에서 물어야 한다. 찝찝한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기만당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그토록 강조했던 경제적 혜택은 우리에게 돌아왔는가. 생태적 안전을 확신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진솔한 대답 안에서 시민의 성숙한 판단과 의식이 생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진짜 논란은 정치의 신뢰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감사원의 집안싸움이 아닌, 우리 자신의 신념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MB의 4대강 사업은 과거의 일에 대한 평가이다. 반면 박 당선인의 복지 공약 이행은 미래의 일로 아직 모든 게 불투명한 상황이다. ⓒ연합뉴스

이런 각도에서 보면 박근혜 당선자의 복지공약 이행 문제도 비슷하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MB의 4대강 사업은 과거의 일에 대한 평가이다. 반면 박 당선인의 복지 공약 이행은 미래의 일로 아직 모든 게 불투명한 상황이다. 4대강 사업은 소수를 위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복지는 기초적인 삶조차 누리지 못한 다수를 위한 것이다. 복지공약은 원래 야당의 정치공약을 시대적 요구에 맞춰 여당이 수용한 것인 만큼 기만의 가능성은 적다. 이번 사태의 열쇠는 오로지 박 당선인에게 있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했는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복지의 당위성에는 전문가의 의견이 일치한다.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 만큼 재원확보 방식을 두고 이견이 있을 뿐이다. 여당 내 공약 철회론자들도 지키지 못했을 경우 나올 정치적 파장을 염려할 뿐이다. 결국 복지공약 이행문제는 박 당선인의 의지에 모든 게 달린 셈이다. 박 당선인이 그토록 강조한 '신뢰정치'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신뢰의 정치는 사실 외로운 투쟁이다. 자기 자신과 약속을 지킨다고 상대방이 꼭 알아준다는 보장도 없다. 정치인의 약속 이행은 신뢰구축의 첫 걸음이다. 하지만 신뢰는 쌍방향적이다. 복지라 해도 일방적인 시혜정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소통과 공감, 공존과 참여로 이루어지는 친애의 공동체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신뢰구축은 위로부터 시혜적으로 정치인의 의지를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그 반대로 시민들의 절규, 골목 평화와 삶의 안전을 빼앗긴 서민들, 철탑 고동농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절규, 일자리를 갖지 못한 젊은 사람들의 분노를 듣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철통보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거짓을 버리려는 용기, 다양한 목소리를 열린 자세로 듣고 해결하려는 겸허함, 시대를 읽어낼 지혜가 필요하다. 신뢰는 이런 진정성에서 나온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가. 우리 국민들은 다시 묻고 있다. 서로 아픔을 공유하고, 분열과 독식을 넘어 민생을 책임지고 국민통합을 이룩할 의지가 박근혜 당선인에게 진정 있는가. 국민의 행복도 이 진정성에서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인수위에 배달된 만 건의 청원은 무엇을 뜻하는가? 아니 말 못한 사연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근혜 당선인이 신뢰의 정치, 믿음을 주고 존경을 받는 정치를 진정 원한다면, 그와 다른 길을 원했던 48%의 국민의 소리,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염원한 다수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부터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가? 이제 박근혜 정부 시대가 열리는 2013년 지금,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공약이 시작부터 흔들리는 현 상황에서 우리는 묻고 싶다.


 /이양수 한양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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