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9일 화요일

[최장집칼럼]민주적 권위의 기초


이글은 경향신문 2013-01-28일자 기사 '[최장집칼럼]민주적 권위의 기초'를 퍼왔습니다.

권력을 향한 치열한 대선 경쟁이 끝난 지금은 좀 더 원론적인 문제들을 되짚어보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지적 자원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한다. 어떤 주제가 적합할지 생각하면서,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고전이라 할 라는 책이 떠올랐다. 애초 이 책은 로버트 달이 1970년 출판했는데, 책 제목에서 말하는 혁명이란 1960년대 미국의 반체제 운동을 지칭한다. 이 시기를 통해 급진파들이 이상화했던 민주주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이 책은 급진파 정치론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서로 평가되기도 한다. ‘좋은 사회에서의 권위’라는 책의 부제가 말하듯, 이 책의 중심 주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왜 권위가 중요한지,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리에 부응하는 권위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책의 첫머리에서 달은 당내 민주주의와 정당 개혁에 대해 말문을 연다. 민주주의를 위한 정당의 기여는 다른 정당과의 경쟁을 통해 시민 다수의 의사와 이익을 더 잘 대변할 수 있는가에 있지 당내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하느냐에 있지 않다. 당내 민주주의는 전체 민주주의 발전에 비해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로베르트 미헬스의 ‘과두화의 철칙’에 대한 달의 비판은 통렬하다. 민주주의의 핵심을 정당 간 경쟁의 차원이 아니라, 정당 내의 민주주의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헬스의 말대로 정당 조직들이 필연적으로 과두화된다면 정당을 그렇게 만든 요소는 정부도 과두화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자체는 실현할 수 없는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의 생각과 달리, 오히려 과두적이거나 강한 리더십을 갖는 정당이 당내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정당보다 더 좋은 정책대안을 만들고 이를 더 유능하게 실현할 수 있다. 와 함께 1960년대 미국 운동권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판서로 평가되는 J. Q. 윌슨의 역시 개방형 경선제가 확대되기 이전의 구정당체제가 현실적으로 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음을 경험적 연구로 보여준다. 정치인을 권력을 추구하는 ‘전문 직업 정치인’과 원칙을 고수하는 ‘아마추어 정치인’의 두 유형으로 분류했을 때, 이른바 구정치인들이 개혁파들보다 더 좋은 결과를 냈다는 것이다. 개혁파들이 권위 해체와 민주적 원칙을 강조하면서 당 조직과 리더십을 약화시킨 결과, 정당 간 경쟁에서 당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전체 민주주의 발전에 해악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적 권위는 어떤 원리 내지 기준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가. 로버트 달은 세 가지 이론적 기초를 제시한다. 첫째는 개인적 선택(personal choice)의 기준이다. 각자 개개인이 권리와 자유를 주창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공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현대 정치철학의 출발점이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 폭력을 통해 질서를 잡든가, ‘고귀한 거짓말’로 공동체 구성원들을 세뇌해 개인적 선택과 공공의 진리가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해결책은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어렵다. 루소는 공동체 내의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일반의지’라는 개념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일정 규모 이상의 사회에서는 정치적으로 평등한 개개인이 모든 사람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민주적 결정 원리로서 다수결은 이로부터 도출된다. 문제는 다수결의 원리가 어떻게 개인적 선택의 기준과 사회적 존재로서 그 자신의 운명을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데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자주 소수자에 속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개인적 선택의 기준에서는 다수결의 원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수의 의사와 전체의 의사가 합치되는 범위가 줄어들면서 만들어지는 소수자의 문제는 크기만이 아니라 강도의 문제도 있다. 평등한 개인들의 다수는 이해관계에 있어 질적으로 강도가 다른 사회집단 모두를 포괄할 수는 없다. 종교나 언어의 측면에서 항상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나, 사회경제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이익과 요구는 다수 지배의 정책과 강력하게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수지배의 원리는 소수자를 대표하는 여러 형태의 제도들, 예컨대 비토권의 부여, 상호보장, 협의주의, 코포라티즘과 적절하게 균형되고 조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는 능력(competence)의 기준이다. 민주화 이후에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특히 정당과 지도자의 능력은 결정적이다. 개혁파들은 엘리트들이 능력에서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기에 능력이 권위의 기준이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달의 예리한 사고는 이런 논법을 수용하지 않는다. 만약 실제로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플라톤이 말하는 ‘철학자 통치자’가 지배하는 이성적 절대주의 내지 귀족주의적 엘리트 지배체제에 비해 본래적으로 열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달의 해답은 이렇다. 능력의 기준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다. 국가를 포함해 어떤 결사체에서든 개인 구성원의 능력은 큰 차이가 없다. 개개인은 자신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최선의 심판관이다. 따라서 특정의 결사체 안에서 그들 스스로의 민주적 방식으로 능력의 기준을 결정할 수 있다. 또한 특정의 결사체가 민주적으로 결정할 능력의 기준이 있다고 해서 다른 결사체도 그 주장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이성적인 개인적 선택의 기준과 능력의 기준은 어느 것이 우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판단의 문제로 각자의 결사체에서 자율적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경제성 내지 절약(economy)의 기준이다. 경제성이 민주적 권위를 창출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는 까닭은 시간의 가치와 희소성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에서처럼 모든 시민들이 공직을 순번제로 담당하기 위해서는 생업에 종사하지 않아도 되고,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유한계층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리스의 민회나, 미국의 타운홀미팅처럼 수백 명 또는 수천 명이 함께 모여 결정에 필요한 사안을 논의하는 것은, 참여의 직접성을 담보할지 모르지만 그 자체로 매우 비효율적이다. 이 때문에 500인평의회를 두어 민회를 보좌하게 했고, 그 안에 상설기구인 50인 운영위원회와 한 명의 의장을 선출했다. 작은 공동체에서나 가능했던 민주주의가 근대의 대규모 사회에서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귀족주의적인 대표 선출 방식인 선거제도를 수용하면서부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민주주의는 귀족주의와 직접 민주주의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개혁파들은 효율성 내지 경제성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는다. 그러나 이를 무시할 때 많은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 안된다. 민주적 가치와 시간의 경제성 사이에서 최적점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가치만을 추구하는 과업보다 훨씬 덜 드라마틱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사에는 민주적 가치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중요 가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사적 생활과 공적 정치참여의 균형을 생각해야지,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에만 전념할 수는 없다.

한때 한국의 개혁파들은 위계적 힘의 작용을 특징으로 하는 권위가 마치 권위주의의 속성인 듯이 오해하면서, 권위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이해했다. 권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개혁파들의 의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민주주의와 관련 제도에 대한 크고 작은 오해를 불러왔다. 국민참여경선제 등 당내 민주화를 목표로 했던 정당개혁이나, 지난 대선에서 중요 이슈가 되었던 ‘정치쇄신’의 모토는 편협한 민주주의관의 산물로 정치발전에 역행적 결과를 가져올 여지를 넓혔다. 우리가 로버트 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를 통해 현실에서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은, 정치적 평등이 완벽하게 구현된 사회와 같은 이상주의적인 목표가 아니라, 개별 인간과 공동체로서의 사회 간의 상충하는 요소들을 최대한 잘 결합해서 좋은 민주적 권위와 제도를 발견해내고, 이를 통해 최적의 민주적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라고 하겠다.

최장집 | 고려대 명예교수·경향시민대학장 jjchoi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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