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0일 수요일

사람 잡는 1인 승무제…공황장애 15배, 트라우마 8배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29일자 기사 '사람 잡는 1인 승무제…공황장애 15배, 트라우마 8배'를 퍼왔습니다.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②] 벼랑 끝 기관사…노동 환경 개선 시급

1월 19일, 서울 지하철 6호선 기관사 황아무개 씨가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에게 출근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 황 씨는 회사에 가는 대신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황 씨는 삶을 마감하기 얼마 전 가족에게는 "회사 가는 것이 힘들다"고, 동료들에게는 "차에 타는 것이 힘겹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가족과 동료들은 '기관사를 천직으로 알고 15년간 성실히 일한 사람'으로 황 씨를 기억한다. 그런 황 씨가 변한 건 지난해 10월 사고를 겪으면서다. 한 승객의 가방이 황 씨가 운행하는 열차의출입문에 낀 사고였다. 다행히 승객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황 씨는 이 일로 회사에서 심하게 질책을 당했다. 이를 계기로 황 씨는 이전과 달리 강박증과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공황장애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족과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은 이번 비극이 황 씨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관사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운행해야 하는 구조, 그리고 "기관사에게 모든 책임을 몰아 매도하는 조직 문화"가 비극의 배후에 있다는 주장이다.  수많은 기관사가 생전의 황 기관사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들은 경고한다. 황 씨처럼 공황장애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기관사가 2012년 한 해에만 3명이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는 지하철 기관사의 노동 조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민의 발'을 안전 운행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기관사들의 고충에 눈감는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언제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은 지하 터널을 누비는 지하철 기관사들의 현실을 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① "동료들 연이어 자살…이젠 나도 날 못 믿겠다" 지난해 3월 12일 공황장애를 앓던 서울도시철도공사 이아무개 기관사가 지하철 5호선 왕십리역에서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분향소를 방문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지하철 최적근무위원회'를 설치해 근무 환경이 서울도시철도공사 직원들의 심리 상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근무 환경을 합리적으로 개선해나갈 것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 한림대학교 산학협력단 주용수 교수팀은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정신 건강 실태 조사 및 개선 방안 연구'를 발표했다.

그러나 위원회가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공식 권고안을 내기 전인 지난 19일, 황아무개 기관사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 단독 입수한 '서울시 도시철도 안전 운행을 위한 승무 방식 선택 시 고려해야 할 가이드라인 권고안' 초안은 주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를 담고 있다. 이 안은 아직 정식 권고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안에는 1994년 개통할 때부터 기관사만 승차하는 1인 승무 체계를 고수해 온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업무 행태의 문제점이 지적돼 있다. 이 안은 "특히 도시철도공사처럼 개통 당시 1인 승무 체계로 시작되었던 대구도시철도에서는 2003년 대규모 참사가 발생하였으며 이 원인 중 하나로 1인 승무 체계가 문제로 지적되었다. 최근에 와서 도시철도공사 기관사의 정신 건강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고 이 역시 같은 문제가 원인인 것으로 적시되고 있다"고 권고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 안은 "수천 명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기관사의 정신 건강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 점을 고려할 때 1인 승무 체계가 노동자와 이용자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형태로 운영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적정 가이드라인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 안은 "물리적 조건 8가지와 인적 조건 2가지가 모두 만족되지 않으면 서울시 도시철도에서는 1인 승무 체계 운영을 재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물리적 조건 8가지는 △ATO(자동열차운전장치) 시스템 이상의 기술 지원 △혼잡률 150% 이하(전동차 1량에 승객 140명 이하) △1인 이상의 역무원 상시 배치 △8량 이하의 전동차 운영 △자동 운전 및 자동 방송 △지상 구간이 10% 이하일 경우 △사고 시 기관사 외에 관제에서 방송·안내 책임 분담 △스크린도어 전체 설치이고, 인적 조건 2가지는 △승무 및 휴식 시간 보장 △건강 장애 호소자 승무 배제다.

정식으로 제안된 권고안은 아니지만, 현재 서울도시철도 운행 상황은 이 안이 제시하는 조건에 대부분 미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2008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 5주기를 맞아 중앙로역에 마련된 분향소에 시민들의 헌화가 이어지고 있다. 대구지하철에서는 2003년 대규모 참사가 발생했는데, 피해 규모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1인 승무 체계가 지적되기도 했다. ⓒ뉴시스

트라우마 유병률 일반인의 8배, 공황장애는 무려 15배


이 권고안의 배경이 된 주 교수팀의 연구는 2012년 6월 29일부터 7월 8일까지 서울도시철도공사 전 직원 중 4075명(64.01%)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운전 직군은 보상 문제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직무 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나 '스트레스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특히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운전 직군의 9조 5교대 방식에 따른 스트레스 강도는 다른 직군보다 매우 높게 나타났다.

특히 이 조사에서 "자신이나 타인의 죽음, 심각한 상해, 또는 신체적 안녕에 위협을 가져다주는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경우의 충격적 경험 이후 발생한 스트레스"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일명 트라우마)'와 관련해 외상 경험이 있는 사람은 338명(8.3%)으로 나타났고 이 중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은 209명(5.1%)으로 나타났다. 외상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PTSD 증상자는 164명(48.5%)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본 연구는 단면적인 평가라는 제한점이 있기 때문에 사고 직후 발생할 수 있는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나 장기적인 추적 조사가 이루어지기 힘들므로 사고 후 발생할 수 있는 PTSD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 시기별로 적절히 개입할 수 있는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설문을 통해 나타난 사람보다 훨씬 많은 이가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 지하철 기관사가 어둠 속에서 운전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지하에서 나쁜 공기 마시며 사고까지 책임져야 하는 기관사는 슈퍼맨?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 이강숙 교수팀이 2007년 9월 발표한 '도시철도공사 기관사 정신 보건 임시 건강진단 최종 보고서'를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업 4급 이하 전체 기관사 961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우울증의 경우 평생 유병률(일정한 지역 혹은 집단 구성원 중에서 환자가 발생하는 비율)이 3.0%로 나타났다. 국민 평균(2.6%)보다 높은 수치다. 황 기관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는 공황장애의 경우 기관사들의 평생 유병률은 1.5%다. 일반 인구 집단에서 보고되는 0.1%의 15배에 달한다. 공황장애 관련 1년 유병률은 0.7%로 전 국민 유병률의 7배에 이르렀다. 강박장애의 경우 평생 유병률이 1.8%, 1년 유병률이 1.5%로 전 국민 유병률과 비교했을 때 3배가량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사고 경험에 관한 설문 응답자 827명 중 사고 경험자는 265명(32%), 사고 무경험자는 562명(68%)이었다. 전체 기관사의 40.3%가 승객과 갈등 상황을 경험했고, 62.2%가 중압감으로 인해 운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었다. 비상벨로 인해 심리적 부담을 느낀 경험이 있는 사람은 75.2%였다.

자신의 실수나 기계 문제로 인해 사고가 날 뻔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31.2%였으며, 이 중 7%는 이로 인해 징계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동료의 사상 사고 경험 소식에도 47.8%의 기관사가 불안이나 '가슴 떨림'을 경험했다. 중압감 때문에 운전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을 항상 한다는 기관사 28명(3.4%) 중 사고 경험이 있는 기관사는 12명, 사고 경험이 없는 기관사는 16명이었다. 모든 사고 경험이 곧바로 PTSD로 이어진다고 가정할 수는 없지만,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PTSD로 인한 지하철 기관사의 '1년 유병률'은 일반 인구 집단의 8배에 달한다.

이 보고서는 "기관사들이 운전을 하는 공간은 주로 지하 공간으로, 심리적 폐쇄감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좋지 않은 공기질의 영향은 간접적으로 심리적 폐쇄감을 유발할 수 있다. 지하 공간 자체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공황장애 등이 유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한 "기관사들은 운전뿐 아니라 출입문 개폐 등의 작업을 주로 하게 되는데, 특히 출퇴근 시간 때는 이를 둘러싼 승객과의 마찰이 있을 수 있다. (…) 운행 중 운전 외에 관여해야 하는 '운전처와 송수신' 등 복잡한 운전 상황, 승객들이 누르는 비상벨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 등, 실제 운전 외에 기관사가 처리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상당히 많이 주어진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작업 조건들이라도 어떤 이례적 상황에 놓이게 되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지하철 기관사가 각종 정신 질환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이처럼 여러 연구 결과가 뒷받침해 준다. 직업과 관련해 발생한 정신 질환의 경우 직업병으로 승인 받기도 어렵고, 막상 승인을 받아도 효과적인 치료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도 문제다. 치료 후에도 체계적인 작업 복귀 프로그램은 전무하다. 결국 모든 사고에 대해 책임지고 그 후유증을 감당하는 것은 기관사 자신의 몫으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한 달 동안 악몽"…"운전 중에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2007년 9월 가톨릭대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와 2012년 9월 한림대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에는 익명의 기관사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 면접 내용이 실려 있다.

이 중 가톨릭대 연구팀 보고서에는 기관사들의 다음과 같은 호소가 담겨 있다.

"어떤 때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해요. 꽉 막힌 공간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상태를 경험한 적도 있어요. 그럴 땐 나름대로 방법을 만들죠. 사진이지만 파란 하늘을 본다거나,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매일 그러는 건 아니에요. 몸 상태가 나쁘거나 하면 이런 느낌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서울메트로는 지상 공간이 있잖아요. 근데 우리는 100% 지하 공간이에요. 3시간 넘게 지하에서 운전해 봐요. 집중을 하면 오히려 미쳐 버립니다. 승객에 대한 부담감이요? 있죠. 그런데 대구지하철 (참사) 있고 나서 더 심해졌어요."

"운전 중에 누군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운전 중에 어떤 때는 동료 기관사가 아는 체를 하거든요. 그러면 앞으로 태우죠.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막 편안해져요."

"OO역에서 사상 사고가 났어요. 부딪히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릴지 몰랐어요. 그 순간 머릿속이 까매져요. 뭘 해야 될지 아무 생각도 안 나요. 그날 운전도 다 끝내고 집에 있는데 자꾸 그 장면이 떠오르고, 두렵고 무섭더라고요.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악몽에 시달렸어요."

"병원엔 안 가봤어요. 그냥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처음엔 몰랐는데, 일주일쯤 있다가 그 역을 지나는데, 머리가 삐쭉 서는 느낌이 들어요.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하는데, 미치겠더라고요. 몇 번 그런 적이 있어, 병원에 가볼까 생각도 했는데, 항상 그런 게 아니라… 피곤할 때 더 느낀다고."

"병원에 가봤죠. 의사한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약물 치료도 받았고요. 치료 받으면서도 다 잊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신경이 날카로워졌어요. 집에서 부부 싸움도 자주 하고, 애도 귀찮고, 내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땐 무섭더라고요."

이 보고서는 "사상 사고 후의 심리 상태는 그 순간의 상태도 문제가 되고, 이후 지속적인 운전을 계속한다면 2차 안전사고의 문제도 우려되었다. 또한 2차 사고에 대한 파악, 그리고 이를 경험한 기관사들에게도 일정한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한림대 연구팀의 보고서에도 다음과 같은 기관사 심층 면접 내용이 실려 있다.

"저희 도시철도에 설치된 스크린도어만 10000개예요. 하루에 1%만 고장이 나도 100개니까 계속 그것과 관련된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러다 보니 5시에서 7시 사이에 있는 휴식 시간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초과근무를 합니다. 회사 측에서는 그러면 다른 시간에 대신 쉬라고는 하는데, 문서상으로나 쉬는 시간이지 사실상 쉬지 못한다고 보면 됩니다."

"제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봉사 활동 같은 것은 이제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희처럼 교대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봉사 활동을 가려면 야간 근무가 끝나고 가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 2시간 일하고 8시간 봉사 활동을 한 것처럼 받아오는 일도 많습니다."

"하도 시민들에게 욕을 많이 듣다보니 이제는 대인 기피증이 생길 지경입니다. 거기에 시민들이 제기하는 민원 중에는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도 많은데 본사 측에서는 알아서 해결하란 식입니다."

"계속 참아야 돼요. 생리적인 것도 참고, 힘들어도 참아야 되고. 업무 중 힘든 것은 시민과 만나는 것, 불량도 있고요, 출퇴근 시간을 맞추는 것, 생리적인 것을 참는 것, 환경도, 어두운 곳에서 계속 불빛이 왔다 갔다 하는 것, 소음도 있고요. 졸립고요, 그래도 참아야 돼요. 첫차를 타게 되면, '6시 15분에 출근하려면 몇 시에 일어나야 하겠다' 하고 잠을 자면 중간에 몇 번 깨는 거죠. 시계 보고, 시계 보고. 차 타러 갈 때도, 타러 갈 때가 되었나? 되었나? 급할 때,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야근할 때 저는 저녁을 안 먹거든요. 약간 가스가 차서, 한번 고생을 하게 되면…."

"환경 자체가 터널 근무이므로 안 좋습니다. 터널에서 근무하면서 환경이 나쁘다고 느낀 게 먼지가 기름기에 찌든 먼지입니다. 그런 먼지인 줄은 몰랐어요.환경 측정은 역사만 해요."


 /박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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