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9일 화요일

'특별'사면보다 위험한 박근혜의 '특별'인사


이글은 미디어스 2013-01-28일자 기사 ''특별'사면보다 위험한 박근혜의 '특별'인사'를 퍼왔습니다.
[분석]헌재 '원리' 모르는 법치주의자를 보는 불안감

▲ 박근혜 당선인과 김용준 총리 후보자 ⓒ 연합뉴스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은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함께 종종 게임을 완결짓는 ‘마법’같은 무엇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헌재의 결정을 사회의 심급으로 삼게 된 것은 이른바 ‘87년 체제’가 만들어낸 결과적 결과물이다. 사회를 삼권분립의 민주적 명분으로 통제하는 이 방식은 그 자체로 체제에 권위를 부여하며, 권력의 권능을 만든다. 이것은 권력의 입장이 아니라 헌법의 결정이라는 체계는 헌재 결정 이후엔 갈등할 수 없단 일종의 불문율로 작동한다.
반대로 사면권은 여전히 남아있는 독재적 통치 구조의 산물처럼 보인다. 사면권 자체가 원래 그런 의미는 아니겠으나, 한국 사회에선 그렇게 작동한다. 체계적으론 권력을 견제의 원리로 분권하고, 헌법에 따른 지배 체제를 확립했지만 여전히 대통령에게 정치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한 수’를 남겨준 셈이다. 사면권은 종종 아니 대체로 그렇게 작동해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말 사면권 행사는 사실 아무런 의미도, 특별한 당위도 없다. 그 흔한 ‘국민화합’ 차원이란 설명을 붙이기에도 겸연쩍고 그 외엔 다른 수사를 갖다 붙이기조차 남우세스럽다. 그저 ‘특정’한 측근들을 ‘특별’한 시기에 ‘특수’하게 내보내주는 것의 다름 아니다. 정권을 재창출하긴 했지만 임기 내 도덕성 시비에 휩싸였던 정부가 특히, 정권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핵심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4대강 공사’가 통째로 ‘부실’과 ‘부정’의 늪에 빠져버린 지금 대통령이 그나마 알량한 ‘권리’로서 사면권을 행사하려 든다는 것이 그저 꼴 사나울 뿐이다.
대통령과 청와대를 제외하곤, 지금 이 사면에 우호적인 집단과 조직은 적어도 표면적으론 없어 보인다. 지금, 정부가 사면하려는 이들은 굵직한 기업인들도 아니고 이 정부에 반하는 입장으로 표적이 됐던 이들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를 가졌던 ‘친구’들을 내보내주려는 것이다. 이게 여론의 눈치가 보이니 엄하게 친박계 몇몇을 끌어들이고 친노계 이광재까지 폭을 넓힌 것뿐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사회 운영 원리, 통치 체계의 근간이 많이 훼손됐단 지적이 높았는데 임기 말 특별사면은 이 훼손의 정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단 것을 가장 노골적으로 웅변하는 풍경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물론 특별사면에 반대한다. 본인 입으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에 뭐라 하는 것은 도의가 아니다”고 말했을 뿐이지만, 대변인들에 따르면 그렇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박 당선인의 의중은 언제나 이렇게 ‘대리’해 전해질 뿐이고, 그렇다는 ‘추정’이 건네질 뿐이다. 언론이 이 ‘대리’된 의중과 ‘추정’되는 입장들을 부지런히 옮기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박근혜=사면반대’의 기억이 남는데 정작 실질적으로 당선인은 특별사면을 막지도, 막으려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향후 박근혜 시대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특별사면’이 없을까? ‘원칙’과 ‘신뢰’의 정치를 약속하는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특별사면에 반대했던 당선인 시절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해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을 공산이 커 보인다. 단서는 박 대변인인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했단 사실에서 찾아진다.
앞서 말했듯, 헌법재판소와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통치 체계와 방식을 단적으로 설명해내는 2가지 핵심적 장치다. 헌재는 대통령의 통치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것을 헌법적으로 해석해내는 권한을 갖는다. 그래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마저 헌재에서 결정된다. 법에 의한, 헌법의 권위에 의한 사회 운영 체계이다. 반대로 사면권은 법치 바깥에 대통령이 존재하는 권력임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법의 결정도 대통령이 ‘의지’로 종료시킬 수 있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헌재소장을 했던 이를 총리로 불러들였다.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심각한 체계의 훼손인데, 더 심란한 것은 이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이 별로 작동하지 않고 있단 점이다. 이에 대해 헌법학자인 이상돈 교수 같은 이는 “대통령이 준수해야 할 헌법을 최종적으로 해석하는 권한을 갖고 있던 헌재소장을 지낸 사람이 총리를 하는 것이 순리에 맞느냐”고 물으며 “이 부분이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의혹보다 더 큰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김용준 지명자의 비리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지만 헌재소장을 했던 이를 행정부 수장으로 ‘강등’시키는 것은 사회적 체계를 훼손하단 비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 당선인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오른지 이제 4개월 밖에 안 된 안창호 헌법재판관을 두고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 검증에 필요한 신상조회에 돌입했다. 물론, 안 재판관도 동의했다. 만약, 현직 헌재 재판관이 검찰총장이 된다면 이 역시 초유의 상황이다.
결국, 박 당선인의 인식론 속에 헌재의 기능이 별로 중요하게 각인되어 있지 않단 것 밖에 다른 설명이 안 된다. 대통령을 견제하는 사회 운영 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현격하게 부족하단 것 밖에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헌재소장을 지낸 이를 국무총리로 쓰고, 헌재 재판관을 검찰총장 후보에 올려놓는 것이다. 이 권력의 작동에 당사자들 역시 법관으로서의 존재의식보다는 ‘출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언론 역시 박 당선인의 이런 역행적 행보에 가타부타 말을 보태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 말 특별사면은 욕하면 된다. 이렇게 비윤리적이고 몰염치한 정부가 있을 수 있냐고 말해버리면 그 뿐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권력이고, 어쩌면 심판받을지도 모를 상황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문제는 다르다. 박 당선인은 헌법 체계를 무시하는 듯 한 일방주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87년 체제를 넘어서자’는 담론적 요구가 거셌는데, 박 당선인은 ‘87년 체제’의 정치적 지형을 무력화시키고 있지만 이에 대한 지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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