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1일 목요일

인사에 토달다간 눈밖에 나기 일쑤…박, ‘NO맨’도 키워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1-30일자 기사 '인사에 토달다간 눈밖에 나기 일쑤…박, ‘NO맨’도 키워야'를 퍼왔습니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왼쪽)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정무분과 국정과제토론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박근혜 리더십’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

공포리더십→소통리더십
 “언제든 전화하라지만 두렵다”
박뜻 반대하다 “다친다” 듣기도
주변선 “비서진 장막 거둬야”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의 차이는 밥을 먹느냐, 전화를 하거나 포럼을 하느냐의 차이다. 두 사람 모두 수첩에 의존해 인사를 했다.”박근혜 당선인과 가까운 한 인사는 이렇게 말하며 박 전 대통령과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괜찮다는 얘기를 접하면 즉시 수첩에 그 사람 이름을 적고 이리저리 탐문을 해봐. 그런 뒤에 맘에 들면 함께 밥 먹는 자리를 마련해 ‘인물 감별’을 했거든. 아주 비중 있는 인물이면 단둘이 만났고 그렇지 않으면 여럿이 섞어서 만나기도 했어. 그래서 진짜 능력 있고 좋은 사람이다 싶으면 불러다 썼어. 박 당선인도 비슷해. 수첩에 이름을 적어놓고 이리저리 묻고 전화를 걸어 대화를 해보거나 무슨 포럼에 불러서 자연스럽게 관찰을 하기도 해. 자기가 나름대로 검증을 해서 결론을 내린 사람이다 보니 어지간해서는 누가 말한다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 거지.”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사퇴로 박근혜 당선인의 리더십이 위기를 맞았다. 당선인이 애용한다는 ‘인사수첩’은 사적인 감과 직관에 의존하게 하고 공적 시스템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상징물이다. ‘밀봉, 비선, 불통, 자물쇠, 나홀로’ 등 박 당선인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나오게 된 출발점이 바로 이 ‘인사수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인수위 초기, 박 당선인이 총리 등의 인선 작업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자, 측근들은 “박 당선인이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내용을 수첩에 꼼꼼히 적어뒀기 때문에 박 당선인의 자체 ‘인사파일’이 충분하다”고 했다.박 당선인에게 수첩은 지식과 경륜이 모자라고 답답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킨 소재였다.박 당선인은 “수첩은 국민과 소통하는 수단도 되고 또 민생을 챙기는 소중한 도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꼭 갖고 다니면서 기록할 생각”(지난해 9월 [문화방송]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라며 수첩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았다.수첩에 적힌 내용이 민생이 아니라, 국정 운영의 파트너인 총리와 장관을 임명하는 ‘결정적 자료’이자 ‘유일한 근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첩 인사’는 보안제일주의와 결합하면서 객관적인 검증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고 공적인 인사 시스템을 무력화한다. 김용준 후보자가 사퇴를 발표하기 직전까지 여당 대표조차 이를 알지 못했다.30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선 박 당선인이 ‘수첩 인사’에서 ‘시스템 인사’로 인선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졌다. 정우택 최고위원은 “향후 인사 과정을 수정해, 추천 기능과 검증 기능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검증팀을 구성해 1차 사전 검증을 거친 뒤, 국회에서 정책 비전과 능력을 다루는 인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계인 유기준 최고위원도 “총리와 국무위원 후보자 인선 때 청와대 등의 기존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하며, 청와대 등의 인력을 인수위에 파견받아 그 사람들로 하여금 검증 업무를 담당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민주통합당에서도 “소수의 비선라인으로 후보자를 선정하면서 정부의 인사검증 시스템을 전혀 활용하지 않은 것도 이번 사태의 원인”(김현 대변인)이라고 진단하면서, “수첩에 등재된 자기 사람 리스트에서만 후보를 찾을 게 아니라, 인재 풀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검증받는 인사로 바뀌어야 한다”(박기춘 원내대표)고 요구했다.“당선인은 나한테 ‘언제든 전화하세요’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전화를 하겠나. 인수위 간사는 물론, 새누리당 의원들조차 박근혜 당선인을 두려워해 전화를 직접 못하더라.” 인수위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들에게 이렇게 털어놨다.박 당선인에게 ‘나홀로’ ‘불통’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은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측근들에게만 둘러싸인 채 바른말과 쓴소리를 하는 인사들을 멀리하면서 형성된 이른바 ‘공포형 리더십’ 탓도 크다. 인수위 안팎에선 ‘촉새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박 당선인의 원칙이 공포형 리더십을 강화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인수위 다른 한 인사는 “강골인 김장수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가 한 언론사에 청와대 안보실 설치 사실을 확인해준 뒤 당선인에게 경고를 받았다고 들었다. 그 뒤에 감히 누구도 입을 열 생각을 못한다.”친박계 한 전직 의원은 ‘극우 논객’인 윤창중 대변인 발탁을 사석에서 비판했다가 당선인 쪽 핵심 인사에게서 내밀한 충고를 받은 사례를 언급했다. “내가 윤 대변인을 계속 비판하자, 당선인과 가까운 인사가 ‘당선인이 윤창중을 인수위 대변인에 임명한 건 그를 아직 신뢰하기 때문이다. 너무 비판하다 당신만 다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 한번 눈 밖에 나면 쉽게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박 당선인을 잘 안다면 인선에 대해 더 비판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더욱 큰 문제는 박 당선인 주변에도 쓴소리를 하는 인사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박 당선인은 이재만 보좌관과 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등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인물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여론을 전달하는 역할보다 당선인을 보좌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당선인의 비서실장 출신인 유정복·이학재 의원 등도 제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 아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친박계 의원들조차 박 당선인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측근 비서들과 통화한다. 명색이 의원인데 이들을 통해 당선인의 뜻을 파악해야 한다면 어떻게 자유롭게 여론을 전달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 당선인에게 ‘아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일각에선 박 당선인 주변에서 비서진이라는 장막을 걷을 경우 소통이 원활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박 당선인을 잘 아는 인사들의 평가다. 한 친박계 인사는 “김무성 전 의원이 실세 비서진 문제를 제기하는 등 당선인이 듣기 싫어하는 얘기를 하면서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김무성 선배도 못하는 걸 우리가 어떻게 하겠냐”고 말했다.박 당선인이 집권 여당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소통을 막는 한계로 지적된다. 새누리당 한 핵심 당직자는 “황우여 대표가 지난 24일 총리 지명 발표 소문이 돌자 ‘누가 총리가 되느냐’고 묻고 다녔다. 그런데 이날 오후 2시에 박 당선인이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후보로 내정하자 황 대표도 입을 다물지 못하더라. 당 대표도 몰랐던 게 틀림없다”고 얘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집권 여당이 박 당선인에게 여론과 민의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신승근 석진환 조혜정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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