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0일 수요일

현대차·이마트도 노조원 사생활 감시


이글은 시사IN 2013-01-30일자 기사 '현대차·이마트도 노조원 사생활 감시'를 퍼왔습니다.
국가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정보기관이 여론에 개입한다. 삼성·현대차·이마트가 노조원 개인의 사생활까지 감시한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가 대수롭지 않게 벌어진다.

내가 후원하는 단체에 도둑이 들었다. 어느 집에나 도둑이 들 수 있지만 이 도둑은 좀 특이했다. 서랍 속의 통장과 카드는 건드리지 않고, 책상이나 책꽂이를 뒤지지도 않고, 외장하드나 노트북, 빔프로젝트, 심지어 현금도 건드리지 않았다. 도둑은 단체 사무실 컴퓨터 세 대의 본체를 모두 열고 CPU와 메모리카드만을 가져갔다. 심지어 이 단체가 다른 단체와 사무실을 함께 쓰는데 이 단체에서만 CPU와 메모리카드를 가져갔다. 누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 단순히 컴퓨터 부품을 훔쳐 팔아먹으려는 것이었다면 왜 바로 옆에 있던 다른 단체의 컴퓨터에는 손을 대지 않았을까? 어떤 경고의 메시지였을까?

도둑이 들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말 송년모임을 하러 사무실에 갔다. 사무실에 긴장감이 흘렀다. 사무실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농담처럼 나왔고, 그런 긴장감은 술이 돌고 배가 부르고서야 누그러졌다. 아직도 그 도둑 사건은 의혹으로 남아 있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숱한 의혹이 있었고 그와 연관된 정부기관이나 기업들이 있었다. 2009년 국군 기무사령부 수사관들이 민간인의 일상과 정당 활동을 기록하다 들통이 났다(이때 사찰을 당했던 피해자 한 분은 작년 8월 투신자살을 했다). 2010년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들을 불법 사찰해온 사실이 폭로되었다. 지난 대선 때는 국정원 직원이 법으로 금지된 정치활동에 개입했다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기관이 자신의 업무와 무관한 민간인을 사찰하고 정보기관이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여론에 개입하는 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아주 큰 사건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은 흐지부지 처리되고 곧 언론에서 사라졌다.

ⓒ이우일

비단 정부만이 아니다. 삼성이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노동자들을 감시해왔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2005년 삼성SDI의 전·현직 노동자들이 이건희 등 삼성 관계자들을 불법 위치추적 혐의로 고발했는데, 검찰이 “‘누군가’ 고소인들의 휴대전화를 복제한 사실은 밝혀졌으나, 그 ‘누군가’를 찾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누군가’를 기소 중지”한 코미디 같은 사건은 대표적인 예이다. 삼성만이 아니다. 지난해 연말에는 울산 현대차가 비정규직 노조의 집회와 조합원의 개인동향을 감시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며칠 전 신세계 이마트도 노조를 사찰하고 개인의 사생활까지 기록해서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의 노동자 사찰에 관대한 검찰

이 정도면 사찰 공화국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시민 기본권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이런 범죄들이 대수롭지 않게 벌어진다.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 매체인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계정을 리트윗하고 “김정일 장군님 빼빼로 주세요” 따위 농담을 썼다고 국가보안법으로 유죄판결을 받는 나라이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곳이 바로 이곳 한국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거대한 범죄들을 묵인할 수는 없다. 더구나 정부는 시민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반면 응당 자신이 밝혀야 할 공적인 업무에서는 한 발을 뺀다. 선관위 디도스 공격에서부터 봉인 없는 투표함, 버려진 투표용지, 이런 사실들이 버무려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을 낳는다. 사람의 일이니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건 개인 간의 관계에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관행이지만 공적인 업무에서는 부당한 요구이다.

이런 현실을 보노라면 나는 한국 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 단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상식을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가 진정 민주적인 사회일까? 최소한의 절차가 지켜지고 있나? 내가 답할 문제는 아니다. 답할 이는 정부이다.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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