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1일 목요일

나로호 만큼 주목해야 할 한 인수위 교육과학위원의 경력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1-30일자 기사 '나로호 만큼 주목해야 할 한 인수위 교육과학위원의 경력'을 퍼왔습니다.
[권재원의 교육창고] 교육과학위원 A씨의 창조과학회 경력과 과학교육에 대한 걱정

대통령직 인수위 교육과학위원에 창조과학회 활동을 한 A교수가 임명되었다. A교수가 재직 중인 대학의 한 학생은 이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하기도 했지만, 정작 과학교사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다. 심지어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교육단체에서조차 침묵하거나 아예 이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다. 이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과학교육은 단지 국가의 생산력, 경쟁력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합리적 사회의 근간이기도 하며, 창조과학은 그런 과학의 근본정신을 위협하는 유사과학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프랑스 같았으면 당장 큰 논란거리가 되었을 이런 상황이 이렇게 조용하게 지나가고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 일반 국민들이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인식이나 무관심의 반영일수도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 심지어 과학교사들까지 인수위 과학분야 전문위원에 대해 관심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과학이라고 하는 것 자체에 대해 관심이 없다. 대다수 국민들에게 과학은 스티븐 호킹이나 루돌프 파인만 같은 괴짜들의 영역이거나 아니면 나로호 쏘아 올리는 일이다.
게다가 “과학”이라는 정확하고도 훌륭한 명칭 대신 “이공계”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말이 더 널리 사용되고 있다. 각종 “공대생 조크” 혹은 “이공계 조크”들이 널리 회자되는 것 역시 과학이 매우 특수한 사람들의 제한된 영역으로 자리매김 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인수위가 창조과학회 경력자를 교육과학 전문위원으로 임명한데 대해 과학교사 단체, 심지어 전교조조차도 별 반응이 없는 것은 미국과 비교해 보면 한심하기까지 한 일이다. 흔히 민족주의 계열 진보활동가들은 미국을 진화생물학을 가르친 교사가 해직되고, 창조과학이란 것이 교과서에 들어가는 나라라며 폄하하지만 실상은 이와 전혀 다르다.
1981년 미국 루지애나 주에서 교육의 다양성이라는 미명하에 과학 교과서에 진화생물학과 동등한 분량의 창조과학을 다루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과학자와 과학교사들은 즉각 위헌 심판을 청구했고, 1985년 루지애나 법원은 ‘창조과학은 실질적으로 종교이지 과학은 아니란 이유’로 해당 법을 폐기하였다. 여기에 일부 기독교 단체들이 반발하여 연방 최고재판소까지 상고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72명의 노벨상 수상자들, 17개 주 과학협회, 그 외 7개 과학관련 단체 대표들이 최고재판소에 탄원서를 보낸 것이다.
이들은 “창조과학이란 소수의 이상한 종교관, 즉 근본주의의 또 다른 얼굴”(굴드)이며, “그런 것을 학교에서 과학으로 가르친다면 미국 교육을 크게 훼손하여, 국가 안전 보장과 건전한 생활, 경제적 풍족함을 과학의 진보에 의존하는 미국에 큰 손상을 줄 것”(아야라)이며, “이를 허용한다면 생물학과 인류학의 중핵부분만이 아니라 물리학, 화학, 천문학, 지질학의 중요한 부분들에까지....무수히 많은 확고한 자연과학 결론과 가장 기본적인 곳에서 충돌하게 될 것이다”(겔만)라고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그 결과 최고재판소에서도 루지애나 법은 위헌으로 확정되었다. 이후에도 창조 과학론자들은 그 이름을 '지적설계론'으로 슬쩍 바꾸어서 다시 교육과정에 이를 밀어 넣으려고 시도하였지만, 이 역시 2005년에 '제대로 된 과학'이 못 된다‘는 판결과 함께 위헌으로 거부되었다.
미국의 과학자들과 과학교사들은 창조론, 창조과학이 과학이라는 영역에 슬그머니 이름을 밀어 넣으면서 특히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에 또아리를 틀려는 시도를 좌시하지 않고 강력하게 대응했다. 이는 그들이 무신론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 중에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렇게 단결하여 창조론의 과학교육 진입을 결사적으로 막은 까닭은 간단하다. 그것이 과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이 아닌 것을 과학으로 가르치는 것이 허용될 경우 인류가 그 동안 쌓아온 과학의 근본정신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과학의 근본정신이란 경험적으로 확인된 증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그 어떤 믿음과 주장이라도 잠정적인 가설로 간주하거나 의심의 대상으로 보는 회의주의적 태도다. 과학적 정신의 소유자는 어떤 신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옳다고 믿어왔던 학설에 반대되는 증거가 관측되면 언제든지 그것을 기각시킬 회의적 용기를 갖추어야 한다. 이런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정신은 어떤 주장들을 미리 교리로 규정해 두고서 믿음을 요구하는 종교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창조과학이 과학이 될 수 없는 이유도, 처음부터 특정 종교의 교리를 참으로 가정하고 그것을 긍정하는 증거들만 차별적으로 채택하거나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법정들은 이 점을 명확히 인정했다. 그들의 판결은 간단하다. 창조과학은 해롭거나 문제가 있어서 등의 이유가 아니라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교육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적이며, 기독교 신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그리고 대통령이 성경위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는 나라인 미국이지만, 그들의 과학관은 이처럼 확고하다. 종교가 과학의 영역에 침범하고, 과학이 아닌 것을 과학으로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미국의 근본 정신에 어긋난다. 설사 교육이 부족한 대중들의 정서가 여기에 미치지 못하여, 종교적 열광이 위협으로까지 발전한다 할지라도 미국의 과학자, 과학교육자, 그리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결정권자들은 용기있게 이 원칙을 고수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그 동안 과학자와 과학교육자들이 수많은 몰이해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소명을 늘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제퍼슨, 프랭클린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 이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미국 시민들은 과학적 사고방식이 민주시민의 필수적인 소양이자, 미국 정신의 근간임을 항상 강조해 왔다.
과학적 사고방식이 시민의 필수적인 교양인 까닭은 이런 사고를 하는 시민은 허황되고 근거 없는 선동에 넘어가거나, 그 말을 하는 사람의 권위나 후광에 휩쓸리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런 주장이나 언설을 회의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만약 미학을 전공한 교수가 미학이 아니라 정치·경제·과학·기술 영역을 넘나들며 발언한다면, 과학적 사고를 하지 않는 사람은 그 교수의 명성과 인기에 휩쓸려 그 주장을 믿겠으나 ,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그런 주장들을 의심의 대상으로 볼 것이다. 그래서 과학적 사고의 세계는 평등하며, 민주적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경험적 증거가 있는 쪽이 이기며, 없는 쪽은 기각된다. 그러니 명확한 근거가 없는 어떤 언설도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시민을 속여 넘기거나 선동할 수 없다. 그래서 과학적 사고는 일체의 권위주의의 적이다. 독재자는 항상 과학자를 소수 엘리트화하며, 과학의 정신이 보편화 되는 것을 막았다.
그런데 일국의 과학과 교육정책을 디자인 하는 인수위 과학교육위원에 과학과 비과학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창조과학회 경력자가 임명되었다는 것은 작게는 과학계의 위협이 되는 일이며, 크게는 민주시민성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과학자, 과학교사들, 심지어 전교조까지 여기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이는 그 동안 진보교육을 주장했던 집단의 진보성과 전문성을 의심받게 만드는 일이다.
물론 A교수가 창조과학 활동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창조과학을 교육과정에 집어넣는다거나 과학교육을 왜곡할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그것이 기우일수도 있고, 기우라면 오히려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과거 창조과학회 활동을 한 전력이 있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니 만큼 과학교육계에서는 당연히 그것에 대한 우려를 밝힐 자격과 의무가 있다. 또한 A교수로부터 비록 과거에 창조과학회 활동을 한 적이 있으나, 그것은 단지 종교적 신념이며, 이를 과학교육에 끌어들이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실한 약속을 받아 내어야 한다. 과학, 과학적 사고는 우리나라의 번영, 진보, 그리고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매우 중요한 교육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과학자다운 과학자, 과학교사다운 과학교사, 그리고 진보교육단체다운 진보교육단체가 있음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권재원 풍성중 교사 | hagi8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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