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1일 목요일

박근혜 취임 맞춰 '5.16 찬양' 공연 대관 논란


이글은 미디어스 2013-01-30일자 기사 '박근혜 취임 맞춰 '5.16 찬양' 공연 대관 논란'을 퍼왔습니다.
석연치 않은 대관 절차…정부 바뀌면 공연도 바뀌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가 운영하는 한국공연예술센터(이하 한팩,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 일정에 맞추어 5.16 군사정변 기념 연극을 아르코예술극장에 올릴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연극은 민중극단의 ‘한강의 기적’이란 작품으로 5.16 군사정변 50주년을 기념한 작품으로 부제가 ‘박정희와 이병철과 정주영’이다. 이에 대해 국가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공공기관인 한팩이 ‘군사 반란’을 기념하는 내용의 연극을 대통령 당선인 취임 일정에 맞춰 공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단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예술센터는 문화부 산하 공공기관…공신력 필수적”

▲ 이경성 연출가가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

연극 연출가 이경성 씨는 지난 27일 한팩에서 발간하는 정기간행물 ‘한팩뷰’ 2월호에서 ‘한강의 기적’ 공연 소식을 접했다. 해당 간행물에 실린 작품 시놉시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박근혜 새 정부가 오는 2월 25일 출범하기에 앞서 당선인은 인수위 개최 첫날 전체 인수위원 회의에서 당부의 말씀을 통해서 ‘한강의 기적’을 언급하였다. 새 정부의 주요 국정 목표로 복지와 더불어 현재 세계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새로운 경제성장 패러다임의 구축을 다짐했으며 '잘 살아보세'의 꿈을 재현할 것을 호소했다. (중략) 이는 자원도,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인프라도 없었던 1960년대 우리나라에, 선두에 있었던 이들의 이야기이다.”
또한 ‘한강의 기적’을 쓴 정진수 연출가는 “‘한강의 기적’은 2011년 5.16 50주년을 기념하여 초연된 바 있는, 2010년 6.25 60주년을 기념한 ‘6.25전쟁과 이승만’에 이은 작품”이라며 “2013년 박근혜 새 정부의 출범에 맞추어 창단 50주년 기념 공연의 첫 작품으로 재공연을 기획하였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한강의 기적’이 이미 ‘반란’으로 결론이 난 5.16 군사정변을 ‘기념’할만한 일로 규정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 정권 시절의 공적을 긍정적으로 그려내고 있음을 명백히 하는 대목이다.
이 씨는 한팩이 해당 공연 대관을 허용했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는 글을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다. 한팩은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으로,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단체이다. 국민의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공신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공공기관에서 ‘상식’에 어긋나는 내용의 작품을 공연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다.
이 씨는 “이 ‘연극’이 대학로의 사립 극장에 올라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돈을 들여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자유의지”라며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극장에 기초적인 ‘사회적 합의’에 어긋나는 연극이 올라가는 것은 극장의 공신력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한강의 기적’ 대관 과정에 문제점은 없었나?

‘한강의 기적’의 대관 과정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한팩의 규정을 보면 대관을 하기 위해서는 사전 공모 후 기관의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대관 시 어떤 작품을 공연할 것인지 밝혀야 하고, 만약 대관 당시와 작품이 바뀌게 될 경우 공연 개시 30일 전까지 대관변경신청서를 제출에 다시 승인을 얻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작품의 제목, 배우, 작업 일정 등을 변경할 수 있다.

▲ 한국공연예술센터 2013년 정기대관공모 대관공연 선정 결과 안내문 중 일부.

민중극단의 경우 당초 ‘얼음상인 돌아오다’라는 다른 작품으로 아르코예술극장을 대관하였으나, 12월 말 경 ‘식민지에서 온 아나키스트’라는 작품으로 변경 신청했다. 이 때는 한팩 의 내부 심의를 거쳐 변경이 정상적으로 승인되었다. 하지만 민중극단은 작품의 제목을 ‘한강의 기적’으로 바꿀 것을 요청했다. 최초 대관 승인 후 2번이나 작품이 바뀌었는데, 이 단계에서 한팩은 ‘한강의 기적’이 어떤 성향의 작품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팩 대관 담당자는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대관 규정에 의하면 단체 사정에 의해 작품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한국공연예술센터는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 비해 문턱이 낮기 때문에 공연 취소와 변경이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관 규정은 단체와의 신뢰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일과 관련한 큰 규정이라 세부적 내용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공연 내용에 대해서는) 단체의 도덕성에 기대는 부분이 크다”고 덧붙였다. 관행상 ‘한강의 기적’이 어떤 내용인지 세세하게 확인하기보다는 이미 대관을 진행한 바 있는 민중극단과의 관계 속에서 대관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팩은 공연이 결정된 이후 이 씨의 페이스북 게시물 등을 통해 ‘한강의 기적’ 대관이 문제가 되는 상황을 뒤늦게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관 담당자는 “작품 변경에 대한 규정을 보완하고 성향을 판단해야 하는지 내부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가급적 단체 상황을 감안하고 있지만 운영 측면에 있어서는 규정을 까다롭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의식 가진 연극인 모여 선정 과정에 대해 물을 것”

한팩의 해명에 대해 최초의 문제제기를 한 이 씨는 하지만 조금 다른 견해를 보였다. 이 씨는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민중극단이 신생극단도 아닌데 (한팩에서) 어떤 공연을 하는 팀인지 모를 수가 없다”며 “한팩이 발간하는 정기간행물에 (‘한강의 기적’의) 시놉시스와 줄거리, 연출 의도가 실렸는데도 상황 판단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궁색한 변명이며 업무 유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 씨는 또한 문제를 사후에 인지했단 한팩의 설명에 대해 “상식적으로 봤을 때 국공립 극장에 문제 소지가 있는 내용의 공연이 올라갔음을 알게 되면 추후에라도 조치에 들어가야 한다”며 “아무런 대처 없이 포스터와 공연 일정 등이 공공에 노출되면 상황을 모르는 시민들은 ‘정권이 바뀌어서 저런 공연이 올라갔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 씨는 “문제의식을 가진 연극인이 모여 대관 심사 과정과 대선 이후 변경 신청이 받아들여진 경위에 대해 물을 것”이라며 “이후 ‘한강의 기적’을 관람하고 ‘한강의 기적이 말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비판적 리뷰를 내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칫 해당 작품을 올리는 것이 ‘용비어천가’로 오해받을 수 있는 시점에서 공공기관이 공공성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전문성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원재 처장은 “시설을 관리하는 한팩은 자신들이 대관을 승인한 공연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것이 예측되는데도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다”며 “아르코는 그동안 정치적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해 왔는데, 이번 사건 역시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다정 기자  |  songbird@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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