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30일 토요일

돈 받고 싶으면 일본인이 돼라? 조국의 '모욕'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6-29일자 기사 '돈 받고 싶으면 일본인이 돼라? 조국의 '모욕''을 퍼왔습니다.
[한국의 투명인간, 재일동포①]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재일동포

 ▲ 일본 시가현 출신의 재일교포 3세 김화자(34)씨, 김귀자(35) 자매 ⓒ 곽진성

일본 시가현 출신의 재일교포 3세 김화자(34)씨, 김귀자(35)씨 자매, 두 사람은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대한민국에 터전을 잡았다. 화자씨와 귀자씨가 고향인 일본을 떠나, 한국에 정착하는 용기를 낸 데에는 국적이 있는 고국 '대한민국'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컸다. 화자씨가 말했다.

"저는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아, 20살 때 교토외국어전문학교를 찾아가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한국에서 직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2005년 한국에 입국을 했고, 2007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 한 살 위인 언니는 미국에서 8년간 유학생활을 하다 한국인 남편을 만나, 2007년 한국에서 살게 됐습니다. "

'한국국적'을 지켜온 화자씨와 귀자씨는 대한민국에 대한 호감을 바탕으로 한국 정착을 결정했다. 즐거운 한국 생활을 꿈꾼 두 사람,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은 화자씨와 귀자씨를 곤혹스럽게 했다.

국민도, 외국인도 아닌 '재일동포'

▲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복지r)화면 캡처 ⓒ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복지r)화면 캡처

화자씨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제일 먼저 부딪친 차별의 벽은 육아 지원에 관한 부분이었다. 현재 내국인과 결혼한 재일동포 가정의 상당수가 정부의 보육료 혜택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화자씨는 이런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주민등록증이 있는) 내국인에게는 0~2세, 그리고 5세 아이들에게 소득과 상관없이 기본보육료가 지원됩니다. 하지만 재일동포의 경우 (주민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이런 보육비 지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보육기획과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보육료는 국내 거주 대상이고, 자녀에게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 한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보육료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재일동포는 외국인일까?

그런데, 또 다른 쪽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한국국적을 지닌 재일동포'들이 다문화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것이다. 귀자씨의 경우가 그랬다. 귀자씨는 8년간의 미국유학생활을 한 후, 결혼을 통해 한국에 정착했다. 하지만 보육료를 신청했을 때, 한국국적을 갖고 있는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보육료를 신청하러 갔는데, 답변이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재일동포 중 한국국적자는 (다문화가정) 보육료 지원 범위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동사무소 직원은 '일본 쪽으로 귀화하면 되지 않냐!'는 말을 해서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 육아지원, 보육료 지원범위, 주민등록번호 없는 재일동포들은 이 범위에 들지 못한다 ⓒ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복지r) 화면 캡처

현재 다문화 가족인 경우, 소득 및 연령과 상관없이 기본 보육료가 전액 지원된다. 하지만 재일동포들은 이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다문화가족 정책을 짜는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 가족의 경우에는 다문화의 범위에 들지 않는다. 재일동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다문화 범위 안에 (재일동포를) 포함시키려면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답했다.  

재일동포들은 국민도, 외국인도 아닌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 한 재일동포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재일동포는 투명인간 같다"고 푸념했다. 화자씨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다. 화자씨는 재일동포들이 '국민으로 받아야 하는 권리'에서 배제당하는 상황에 씁쓸해했다.

"국민도, 외국인도 소득에 관계없이 받을 수 있는 지원들을 저희(재일동포)들은 똑같이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갑니다."

보육료 담당 부서인 보건복지부 보육사업기획과에 이런 상황에 대해 묻자, "그런 부분(재일동포 자녀의 보육료 지원)은 앞으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답변했다.

'주민등록번호'없는 차별, 재일동포들의 눈물

▲ 조경희((40)씨는 '주민등록번호 부재'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 곽진성
현재 재일동포들이 느끼는 '차별'의 중심에는 '주민등록번호'의 부재가 크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는 것은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녀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한국국적 재일동포 조경희(40)씨의 경우가 그랬다. 주민등록번호, 외국인등록번호가 없는 조경희씨는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문제로 애를 먹었다. 학교, 동사무소 어디서도, 입학에 관련한 공문을 받지 못했다.

"딸이 얼마 전 1학년에 입학을 했습니다. 입학을 앞두고, 예방접종 사항 같은 공문이 와야 하는데 주민번호 없는 딸에게는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른 한국인 어머니들한테 공문이 왔는지 확인한 후, 동사무소에 갔습니다. 가서 그 서류를 달라고 부탁했는데, '주민등록이 없으면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결국 한참을 싸운 후에야 간신히 공문을 복사할 수 있었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없기에 주민 대우도 못 받는 상황입니다."

재일동포는 '한국국적'을 가진 우리 동포이다. 그럼에도 재일동포들은 왜 주민등록증을 갖지 못할까? '재일코리안 연구자' 오가타 요시히로(37, 연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씨는 그 이유로 재일동포들의 일본 '특별영주자격'의 문제를 언급했다.

"주민등록법 제2조를 근거로 하여, 재일동포는 일본 '영주자'라는 이유로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재일동포 어머니들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 역시 한국에서 태어나도 주민등록번호 발급을 거부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법률상, 영주권을 보유하는 '해외이주자'에게는 주민등록번호가 발행되지 않고 있다. '특별영주자격'을 갖고 있는 재일동포들 역시 그런 이유로, '주민등록번호' 없는 국민으로 살고 있다.

현재 재일동포들이 주민등록번호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특별영주자격을 포기하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재일동포들은 '특별영주자격' 포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특별영주자격' 속에는 재일동포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화자씨가 말했다.

 ▲ 2008년 12월, 서울에서 기념 촬영중인 김귀자, 김화자 자매 ⓒ 곽진성

"제가 특별영주자격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저한테 고향인 일본에 들어가서 일본에서 주민으로서 살 수 있는 자격증과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일본사람이 갖고 있는 일본국적이란 것과 똑같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고향에 언제든지 들어가서 살아도 된다는 자격증이 없다면 사람이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주민등록번호' vs '특별영주자격'... 특수성 인정받지 못하는 재일동포들

1945년 해방 후,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들은 외국인으로 간주되어 체류자격이 모호해졌다.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강제추방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상황은 해결했다. 당시 한국국적을 선택한 이들에게 이른바 '협정영주권'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3세 이후의 지위에 대해 규정한 바가 없었던 점을 비롯해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91년에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 바로 '특별영주제도'이다. 당시 한국국적을 선택한 재일동포들은 '특별영주자격'을 부여받아, 일본 땅에서 살 권리를 얻었다. 재일동포들에게 '특별영주자격'은 일본의 차별과 억압을 이겨낸 증표 같은 것이었다.

 ▲ 일본의 코리아타운(지구촌동포연대 제공) ⓒ KIN(지구촌동포연대)
오늘날, 재일동포는 3, 4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 법무성 외국인통계 자료에 따르면,(2010년) '한국국적'(조선적자포함)을 유지하는 재일동포들은 56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2012년 한일교류가 활발한 만큼, 한국에 장기 정착하는 재일동포의 수도 늘고 있다.

결혼, 취직, 유학, 사업 등의 이유로 한국국내에 거소신고를 신청한 재일동포의 수는, 2012년 누적된 수가 1만여 명을 넘어섰다(거소란 재외동포법 동법 시행령 제6조에 의거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체류하는 장소'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1999년 거소신고제도 시행 이후, 한국에 '한 달 이상 체류했거나, 체류하고 있는' 재일동포의 수는 1만 명을 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재일동포의 한국행에 대해, 우리는 차별의 눈으로 그들을 맞고 있다. 이런 재일동포 차별에 대해 홍익대 김웅기 교수(국제경영 일본전공)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한국 법제도상 주민, 재외국민 그리고 외국인이라는 세 가지 범주의 사람이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권리상황이 열악한 것이 외국인이 아니라 재외국민이라는 것이 매우 기이한 현상이다. 같은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재외국민이라는 범주를 굳이 만들어 권리를 제한하는 배경에는 과거 가난했던 시절에 시작된 '자발적' 이민자에 대한 곱지 않는 감정이 있다.

재외국민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것은 이를 반영한 일종의 보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보복의 대상인 '자발적' 이민자들은 외국국적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고만 서약한다면 이중국적자로서 내국인과 동일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일제강점의 유산이자 '비자발적' 이민자인 재일동포만이 이 보복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육아지원이 유독 재일동포만을 배제하고 있는 것은 인권적 관점에서 보아도 조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또한, 일본에서 온갖 차별을 이겨온 재일동포가 일본으로 귀화해야 지원대상이 될 수 있는 현행제도는 의도적이든 아니든지 간에 모국이 이들에게 엄청난 모욕을 주는 꼴이다. 돈을 받고 싶으면 일본인이 되라고, 이 나라 행정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 일본의 우토로 마을(지구촌동포연대 제공)
재일동포를 자발적 해외이주자로 취급해 '주민등록증'이냐, '특별영주자격'이냐는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급기야 귀화를 종용하는 사회 분위기다. 하지만 역사를 망각한 이런 접근법은 옳을까? '재일코리안 연구자' 오가타씨는 재일동포와 '특별영주자격' 특수성에 대해 언급하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부분의 재일동포는 주민등록법이 생기기 훨씬 전, 해방 전에 일제강점으로 인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렇기에 재일동포를 자발적인 '해외이주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특별영주자격을 포기하지 않으면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국민이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행정 서비스들을 (재일동포들이) 못 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금 재일동포들은 선택에 내몰리고 있다. '특별영주자격'을 포기해야만, '주민등록번호'를 받는 온전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선정되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결정에 의해서 말이다. 지금 재일동포는 완전한 우리 국민일까? 오가타씨가 현 재일동포의 상황에 대해 말했다.

"일본에서 힘겹게 코리안으로서 살아온 재일동포들이 자신의 모국인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살게 될 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국민대우가 아닙니다.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회의 풀멤버(full-member)가 아닌 해외동포로만의 대우입니다."

 곽진성 (ji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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