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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9일 화요일

외국인 ‘Bye 코리아’ 결국 환율 탓


이글은 파이낸셜뉴스 2013-01-29일자 기사 '외국인 ‘Bye 코리아’ 결국 환율 탓'을 퍼왔습니다.

"외국인투자가들은 코스피지수 1946포인트를 2562포인트로 읽는다."

외국인들이 체감하는 코스피지수는 대내외적으로 공표되는 코스피보다 훨씬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달러 기준으로 코스피지수를 평가했을 때 현재보다 500포인트가량 높아서다.

이는 국내 증시가 글로벌 주요 증시보다 '저평가'돼 있다는 기존의 주장을 뒤엎는 것으로 외국인들의 '바이(Bye) 코리아' 움직임과 관련이 있어 주목된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5일까지 외국인투자가는 1조1961억원어치 국내 주식을 팔았다. 앞서 지난해 12월 3조5795억원어치 국내 주식을 사들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외국인들이 순매도로 돌아선 것은 세계적인 상장지수펀드(ETF)운용사인 뱅가드가 모간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를 사용했던 6개 펀드의 벤치마크를 지난 10일부터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로 변경하면서 국내 주식을 내다 팔았기 때문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보다 원화가치 상승에 따른 차익실현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외국인에게 코스피는 2562

이 같은 분석은 한국 관련 해외 펀드로 자금 유입이 기록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뱅가드로부터 나오는 순매도 추정분을 넘어서고 있어서다.

금융정보업체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 등에 따르면 지난주 한국 관련 외국인 펀드(GEM)로 61억달러가 순유입되면서 20주째 자금 유입을 기록했다.

때문에 펀드 자금 유입을 감안하면 뱅가드 순매도를 일정 정도 상쇄하는 매수세가 유입되는 것이 상식적인 추론이다. 하지만 현재 외국인들의 순매도 규모가 오히려 증가하는 것은 뱅가드 외에 '다른 요인'이 매매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다른 요인'을 환율로 해석하고 있다.

원·엔 환율 하락이 삼성전자, 현대·기아차와 같은 수출기업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원화 강세로 인해 외국인의 눈높이로 본 주가의 레벨 자체가 높아졌다는 것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글로벌 위기 직후 강세장이 시작됐던 지난 2009년 3월 초의 환율인 1570.3원을 기준점으로 환산하면 지난 25일 코스피 종가 1946.79포인트는 2562.32포인트로 환산된다. 원화기준으로 코스피는 1946,79포인트지만 달러기준으로는 2562.32포인트라는 의미다.

김학균 대우증권 연구원은 "코스피는 작년 3월 기록했던 고점(2057포인트)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달러로 환산한 코스피는 이미 지난해 고점을 넘어서고 있다"며 "외국인 입장에선 충분히 차익 실현을 고려할 수 있는 레벨"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증시 PER, 주요국보다 높다

국내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이 세계 주요국 평균보다 높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내 증시가 선진국 증시 평균에 비해 낮다는 주장과 상반된다.

국내 증권가에선 현재 국내 증시의 12개월 예상 PER를 8.5배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국내 증시가 하락할 때마다 평균 12배가 넘는 선진국 증시에 비해 저평가받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됐다.

하지만 LG경제연구원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보고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사라졌다'를 보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제공한 주요 48개국 PER 분석 결과 한국 증시 PER는 16.5배로 조사됐다.

지난해 12월 28일 주가를 2011년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이는 미국과 일본(15.6배), 영국(12.6배) 등을 웃도는 수준이며 브라질(14.4배)이나 중국(8.2배)에 비해서도 높다. 다만 보고서는 PER를 계산할 때 적자를 낸 기업은 제외했기 때문에 한국거래소가 제공하는 수치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 연구위원은 "주가 상승폭이 경제 성장 속도에 비해 더 컸다"며 "실제 지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 주가는 명목 경제성장률에 비해 2.1배 상승, 분석 대상 국가 가운데 아홉 번째로 높다"고 설명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김승현 동양증권 연구원은 지난 24일 "한국 증시 PER는 8.5배로 선진국 평균인 12.8배 대비 66.0% 수준에 불과하다"며 "할인폭은 2006년 4월 이후 최대"라고 말했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원·달러 환율 19원 폭등. 금융불안 확산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1-28일자 기사 '원·달러 환율 19원 폭등. 금융불안 확산'을 퍼왔습니다.
외국인 계속 5천억대 주식 매도, 삼성전자 140만 깨져

외국인의 가공스런 주식 매도 행진이 계속되면서 28일 원·달러 환율이 19.0원이나 폭등하는 등 금융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종가보다 19.00원 폭등한 1,093.50원에 마감했다. 이날 상승폭은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불거졌던 2011년 9월 26일(29.80원 상승) 이후 최고치다. 같은 해 12월 19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졌을 때의 상승폭 16.20원보다도 큰 상승폭이다.

일본 엔화가 달러당 90엔선의 약세 행진을 계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화 환율이 이처럼 크게 폭등한 것은 증시에서 외국인들이 매도세가 날로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5천6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외국인은 전 거래일의 5천157억어치 순매도에 이어 이날도 연일 5천억원대의 가공스런 매도공세를 계속 펴고 있다. 5천억원대 매도 공세는 14개월만의 일이다. 외국인은 최근 3일 동안에만 1조1천89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특히 전기전자에서 3천487억원, 운수장비에서 1천66억원을 집중 매도, 한국의 양대 수출산업에 대한 비관적 시각을 숨기지 않았다. 그 결과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3.18% 급락하며 137만2천원에 거래를 마감하며 140만원대도 내줬다. 현대차(-1.24%), 기아차(-1.51%)도 동반하락했다. 

외국인은 이날 선물시장에서도 2817계약을 순매도, 향후 주가 추가 하락을 예고했다. 

기관이 4천301억원, 개인이 724억원의 순매수로 맞섰지만 주가 하락을 막기엔 역부족이어서,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또다시 6.98포인트, 0.36% 하락한 1,939.71로 거래를 마감했다. 코스피는 외국인 매도 공세로 나흘째 하락행진중이다.

코스닥지수 역시 2.63포인트(0.52%) 떨어진 504.20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원화 환율 급등은 원고(高) 행진때문에 증폭되는 수출 타격 우려를 희석시키는 호재로도 해석가능하나, 이날 외국인들의 주식 순매도 외에 역외시장에서의 거센 원화 매도 공세가 환율 급등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국제무대에서 한국경제의 앞날에 대한 비관론이 지배적이라는 의미이기 때문. 여기에다가 연일 계속되는 북한의 3차 핵실험 경고도 외국인들을 불안케 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일본이 엔·달러 환율을 95엔선까지 추가절하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어 한국경제에 대한 타격은 계속될 것이란 우려가 국내외적으로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박태견 기자

2012년 9월 2일 일요일

중생 아픔 무관심해야 훌륭한 스님?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기자 블로그 휴심정의 벗님글방 2012-08-31일자 기사 '중생 아픔 무관심해야 훌륭한 스님?'을 퍼왔습니다.

검정고무신 두켤레 사진 <한겨레> 자료

때로는 이웃의 시선에서 자신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평소에 자각하지 못했던 내 모습과 감추고 싶은 내 얼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의 시선과 이웃의 시선을 열린 마음으로 정직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내게는 이웃의 눈에서 우리 승가의 모습을 새삼스레 보게 된 두 가지의 기억이 있다. 한번은, 몇 년 전 내소사에서 주한 외국인 30여 명을 대상으로 2박3일 템플스테이를 진행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였다. 사중 대중스님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외국인들과 새벽예불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때론 유쾌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모두가 더없이 아름다운 산중의 정취에 취하였고 일상의 수행에서도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행복해했다.

그런데 마지막날, 좋은 소감말 가운데 단 하나의 아쉬움을 밝혔다. “스님들이 너무 럭셔리해요.” 아니! 내소사의 스님들이 사치스럽다니, 대체 외국인의 눈에 스님들이 가진 그 무엇이 그토록 눈에 거슬렸을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절의 사무실과 모든 방에 있는 컴퓨터 그리고 휴대전화와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마침 그때 고맙게도 그 절에 고급차는 없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통역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대략 난감하여 서로의 얼굴을 바라만 보았다.

지난 2005년 동남아시아 지진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탁발에 나선 조계종 총무원 승려들 사진 <한겨레> 자료

그랬다. 그때까지 그들의 눈에 비친 불교의 수행자는 세상을 떠난 고행자였다. 철저하게 현대문명과 거리를 두고 은둔하는 명상가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극단적인 무소유와 청빈 속에서 ‘명상’하는 ‘은둔’의 ‘고행자’을 보고자했던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외국인들과 같은 생각과 정서를 가진 이웃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과연 세속 사람들의 이런 생각은 옳은 것일까? 이런 수행자상은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인가? 그리고 이런 생각에 동의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의 정신에 맞는 것이고, 출가수행자의 본분의 전부이며, 이웃대중에게도 유익한 것인가?

또 하나의 기억은 1970년대 송광사 구산 방장 스님의 수행과 덕화에 감응하여 구도의 길을 걸었던 외국인 출가수행자들을 통해서이다. 그들 대부분은 서구의 문화권에서 매우 높은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었으며, 자본과 성공의 세계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에 회의를 품어 진정한 인간의 길을 묻는 청년구도자였다.

얼마 전, 몇 년간 한국의 여러 절을 편력하면서 수행한 그들의 글을 우연히 접했다. 책장을 펼치기 전 많이 궁금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불교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한국의 스님들은 무엇보다도 일상이 가난했고 소박하다. 한 톨의 밥도 함부로 버리는 일이 없다. 사소한 물건에도 공사의 구분이 엄격하다. 그리고 심성은 매우 착하고 부드럽다. 때로는 상식을 벗어나 기행을 하는 수행자도 보게 되는데, 그들 역시 알고 보면 순진하기 그지없다. 겸손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맑고 단순하게 살아간다. 검정고무신에 누더기 옷을 입고 살아가지만 무엇보다도 여유롭고 당당하다. 마치 단아한 산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거의 관심이 없는 그들의 태도이다.(보살행의 구제대비심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의 대부분의 절은 시골에 있고, 그 절 아래에는 많은 마을이 있다.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매우 가난하다. 먹고사는 일에 매우 힘들어 한다. 많은 가정이 빚에 시달리고 있고, 돈이 없어 아이들에게 높은 교육을 시키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만난 한국스님들은 이들에게 거의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화제로 삼지도 않았다. 참 많이 의아했다. 검소하고 맑은 심성을 가진 스님들이 힘겨운 마을사람들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 말이다.

지금 나는 외국인 수행자들의 정직한 시선에서 또 다른 우리들의 얼굴을 본다. 이웃에게 관심과 애정을 거두어버린 유아론적이고 소승적인 우리들의 얼굴을. 오늘 내 이웃에게 비친 ‘자족’과 ‘여유’에 갇혀 ‘방관자’로 남아 있는 한국불교의 오늘의 얼굴을.

다시, 청빈과 자족의 삶을 넘어 이웃을 향한 간절한 관심과 따뜻한 애정을 동시에 구족하고 실현해야 하는 지점에서, 문득 불교 너머 밖에 자꾸 시선이 간다. 보편의 진리가 불법이고 ‘나와 이웃’의 삶을 동시적으로 완성하는 사람이 보살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100년 전 이 땅에 온 엘리제 쉐핑(1880~1934)을 만났다.

개신교 선교사 서서평 사진 <한겨레> 자료

한국 이름이 서서평인 그녀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녀가 조선의 테레사라임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테레사 수녀(1910~97)보다 먼저 태어났고, 1930년 인도의 빈민가로 파견된 테레사보다 18년 앞선 1912년에 이 땅에 와서 사랑과 헌신으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조선의 민중을 구원했으니 차라리 ‘조선의 엘리제 쉐핑’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다.

서서평은 독일에서 태어나 9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간호사로 지내던 중 개신교에 투신하게 된다. 그리고 조선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산실인 부인조력회와 조선여성절제회, 조선간호부회, 여전도연합회 등의 창설과 함께 이 땅에 헌신하였다.

무엇보다도 서서평은 마음과 몸을 조선의 사람으로 살았다. 당시의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여기고 우월적이며 계몽적인 입장에서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살아간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그들은 몇 개의 호화 별장을 소유하고, 지리산 아래서 조선인들에게 등짐을 지워 물품을 남시루봉 정상부근에 지은 별장까지 나르게 하고, 그곳에서 호화 파티을 즐겼다. 그러나 서서평은 검정 남자 고무신을 신고, 옥양목 치마를 입고, 보리밥과 된장국을 먹으며 나환우와 걸인들과 함께 살았다.

서서평은 광주·전남 지역에서 헌신했다. 1930년 그곳은 45만 가구 220명 인구 가운데 88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렸고, 걸인은 11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1년에 100일 정도 나귀를 타고 병자와 여성을 돌보고 교육시켰다. 서서평의 일기에는 당시 조선의 참담한 삶이 역력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 달간 500명의 여성을 만났는데, 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굶주리거나 병들어 앓고 있거나 소박맞아 쫓겨나거나 다른 고통을 앓고 있었다.”

서서평은 당시 ‘큰년이’ ‘작은년이’ ‘개똥어멈’으로 불린 이름도 없는 여성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며 인간의 자존감을 세워주었다. 그는 나환우의 아들을 비롯해 14명의 고아를 양아들·딸로 삼아 키웠으며, 소박맞고 쫓겨난 38명의 미망인을 데려와 함께 살았다.
평등과 박애의 정신으로 사랑스럽지 못한 자를 사랑스런 존재로 만든 그는 1934년 자신의 주검마저 송두리째 병원에 기증하고 떠났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반쪽짜리 담요 한 장과 잡곡 한 바가지가 전부였다.

서서평, 그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했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결핍을 느끼지 않았다. 소유에서 자유로웠다. 나아가 그는 가난의 자족에도 매이지 않았다. 아픈 사람과 함께 살며 아픔을 어루만졌다. 『금강경』이 어디 장경각에만 있겠는가? “마땅히 그 무엇에 붙들리지 말고 자비심을 행하라”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가르침이 서서평의 일생에서 생생하게 보여지는 것을. 그는 성공이 아닌 섬김의 삶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비웠다. 비움 속에서 나누고 나눔 속에서 비웠다. 대승의 길이 어디 『대방광불화엄경』에만 있으랴. 세상이 환상인 줄 알지만 삶과 역사를 만들어가고, 나와 네가 본래 없는 줄 알지만 나와 이웃이 교감하고 감동하는 삶을 엮어가며, 고통이 본래 없는 줄 알지만 무지와 욕탐으로 생긴 고통을 소멸하고자 하는 보살행이 조선의 사람 서서평에게 있지 않는가?

동안거 들어가는 선승들 사진 <한겨레> 자료

『유마경』은 이렇게 말한다. “보살은, 모든 것이 덧없는 줄 알지만 선행을 쌓는 일에 싫증을 내지 않는다. 모든 것이 괴로움인 줄 알지만 기꺼이 생사 가운데 들어간다. 열반이 적정한 줄 알지만 짐짓 궁극의 적멸에 안주하지 않는다. 세상을 벗어난 한적함을 알지만 몸과 마음으로 늘 노력하고 실천한다. 사람들로 왁자지껄한 장소를 찾지만 정작 번뇌와 혼돈을 훌쩍 넘는다. 무아인 줄 잘 알지만 사람들에 대한 자비심을 잃지 않는다.”

‘우리들의 세계’에 안주하고 자족하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을 ‘당신들만의 세계’로 밀어낸다. 그리고 서로가 낯설어진다.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고 자신의 속내를 감춘다. 단절과 고독과 고립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산중 수행자의 검정고무신과 서서평의 검정고무신, 이 두 개의 검정 고무신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법인 스님

법인 스님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을 지냈으며, 현재 조계종 교육부장으로 승가 교육 진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메일 : abcd3698@hanmail.net     

2012년 6월 30일 토요일

돈 받고 싶으면 일본인이 돼라? 조국의 '모욕'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6-29일자 기사 '돈 받고 싶으면 일본인이 돼라? 조국의 '모욕''을 퍼왔습니다.
[한국의 투명인간, 재일동포①]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재일동포

 ▲ 일본 시가현 출신의 재일교포 3세 김화자(34)씨, 김귀자(35) 자매 ⓒ 곽진성

일본 시가현 출신의 재일교포 3세 김화자(34)씨, 김귀자(35)씨 자매, 두 사람은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대한민국에 터전을 잡았다. 화자씨와 귀자씨가 고향인 일본을 떠나, 한국에 정착하는 용기를 낸 데에는 국적이 있는 고국 '대한민국'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컸다. 화자씨가 말했다.

"저는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아, 20살 때 교토외국어전문학교를 찾아가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한국에서 직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2005년 한국에 입국을 했고, 2007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 한 살 위인 언니는 미국에서 8년간 유학생활을 하다 한국인 남편을 만나, 2007년 한국에서 살게 됐습니다. "

'한국국적'을 지켜온 화자씨와 귀자씨는 대한민국에 대한 호감을 바탕으로 한국 정착을 결정했다. 즐거운 한국 생활을 꿈꾼 두 사람,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은 화자씨와 귀자씨를 곤혹스럽게 했다.

국민도, 외국인도 아닌 '재일동포'

▲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복지r)화면 캡처 ⓒ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복지r)화면 캡처

화자씨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제일 먼저 부딪친 차별의 벽은 육아 지원에 관한 부분이었다. 현재 내국인과 결혼한 재일동포 가정의 상당수가 정부의 보육료 혜택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화자씨는 이런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주민등록증이 있는) 내국인에게는 0~2세, 그리고 5세 아이들에게 소득과 상관없이 기본보육료가 지원됩니다. 하지만 재일동포의 경우 (주민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이런 보육비 지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보육기획과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보육료는 국내 거주 대상이고, 자녀에게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 한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보육료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재일동포는 외국인일까?

그런데, 또 다른 쪽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한국국적을 지닌 재일동포'들이 다문화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것이다. 귀자씨의 경우가 그랬다. 귀자씨는 8년간의 미국유학생활을 한 후, 결혼을 통해 한국에 정착했다. 하지만 보육료를 신청했을 때, 한국국적을 갖고 있는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보육료를 신청하러 갔는데, 답변이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재일동포 중 한국국적자는 (다문화가정) 보육료 지원 범위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동사무소 직원은 '일본 쪽으로 귀화하면 되지 않냐!'는 말을 해서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 육아지원, 보육료 지원범위, 주민등록번호 없는 재일동포들은 이 범위에 들지 못한다 ⓒ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복지r) 화면 캡처

현재 다문화 가족인 경우, 소득 및 연령과 상관없이 기본 보육료가 전액 지원된다. 하지만 재일동포들은 이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다문화가족 정책을 짜는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 가족의 경우에는 다문화의 범위에 들지 않는다. 재일동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다문화 범위 안에 (재일동포를) 포함시키려면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답했다.  

재일동포들은 국민도, 외국인도 아닌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 한 재일동포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재일동포는 투명인간 같다"고 푸념했다. 화자씨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다. 화자씨는 재일동포들이 '국민으로 받아야 하는 권리'에서 배제당하는 상황에 씁쓸해했다.

"국민도, 외국인도 소득에 관계없이 받을 수 있는 지원들을 저희(재일동포)들은 똑같이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갑니다."

보육료 담당 부서인 보건복지부 보육사업기획과에 이런 상황에 대해 묻자, "그런 부분(재일동포 자녀의 보육료 지원)은 앞으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답변했다.

'주민등록번호'없는 차별, 재일동포들의 눈물

▲ 조경희((40)씨는 '주민등록번호 부재'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 곽진성
현재 재일동포들이 느끼는 '차별'의 중심에는 '주민등록번호'의 부재가 크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는 것은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녀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한국국적 재일동포 조경희(40)씨의 경우가 그랬다. 주민등록번호, 외국인등록번호가 없는 조경희씨는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문제로 애를 먹었다. 학교, 동사무소 어디서도, 입학에 관련한 공문을 받지 못했다.

"딸이 얼마 전 1학년에 입학을 했습니다. 입학을 앞두고, 예방접종 사항 같은 공문이 와야 하는데 주민번호 없는 딸에게는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른 한국인 어머니들한테 공문이 왔는지 확인한 후, 동사무소에 갔습니다. 가서 그 서류를 달라고 부탁했는데, '주민등록이 없으면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결국 한참을 싸운 후에야 간신히 공문을 복사할 수 있었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없기에 주민 대우도 못 받는 상황입니다."

재일동포는 '한국국적'을 가진 우리 동포이다. 그럼에도 재일동포들은 왜 주민등록증을 갖지 못할까? '재일코리안 연구자' 오가타 요시히로(37, 연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씨는 그 이유로 재일동포들의 일본 '특별영주자격'의 문제를 언급했다.

"주민등록법 제2조를 근거로 하여, 재일동포는 일본 '영주자'라는 이유로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재일동포 어머니들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 역시 한국에서 태어나도 주민등록번호 발급을 거부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법률상, 영주권을 보유하는 '해외이주자'에게는 주민등록번호가 발행되지 않고 있다. '특별영주자격'을 갖고 있는 재일동포들 역시 그런 이유로, '주민등록번호' 없는 국민으로 살고 있다.

현재 재일동포들이 주민등록번호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특별영주자격을 포기하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재일동포들은 '특별영주자격' 포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특별영주자격' 속에는 재일동포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화자씨가 말했다.

 ▲ 2008년 12월, 서울에서 기념 촬영중인 김귀자, 김화자 자매 ⓒ 곽진성

"제가 특별영주자격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저한테 고향인 일본에 들어가서 일본에서 주민으로서 살 수 있는 자격증과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일본사람이 갖고 있는 일본국적이란 것과 똑같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고향에 언제든지 들어가서 살아도 된다는 자격증이 없다면 사람이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주민등록번호' vs '특별영주자격'... 특수성 인정받지 못하는 재일동포들

1945년 해방 후,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들은 외국인으로 간주되어 체류자격이 모호해졌다.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강제추방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상황은 해결했다. 당시 한국국적을 선택한 이들에게 이른바 '협정영주권'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3세 이후의 지위에 대해 규정한 바가 없었던 점을 비롯해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91년에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 바로 '특별영주제도'이다. 당시 한국국적을 선택한 재일동포들은 '특별영주자격'을 부여받아, 일본 땅에서 살 권리를 얻었다. 재일동포들에게 '특별영주자격'은 일본의 차별과 억압을 이겨낸 증표 같은 것이었다.

 ▲ 일본의 코리아타운(지구촌동포연대 제공) ⓒ KIN(지구촌동포연대)
오늘날, 재일동포는 3, 4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 법무성 외국인통계 자료에 따르면,(2010년) '한국국적'(조선적자포함)을 유지하는 재일동포들은 56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2012년 한일교류가 활발한 만큼, 한국에 장기 정착하는 재일동포의 수도 늘고 있다.

결혼, 취직, 유학, 사업 등의 이유로 한국국내에 거소신고를 신청한 재일동포의 수는, 2012년 누적된 수가 1만여 명을 넘어섰다(거소란 재외동포법 동법 시행령 제6조에 의거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체류하는 장소'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1999년 거소신고제도 시행 이후, 한국에 '한 달 이상 체류했거나, 체류하고 있는' 재일동포의 수는 1만 명을 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재일동포의 한국행에 대해, 우리는 차별의 눈으로 그들을 맞고 있다. 이런 재일동포 차별에 대해 홍익대 김웅기 교수(국제경영 일본전공)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한국 법제도상 주민, 재외국민 그리고 외국인이라는 세 가지 범주의 사람이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권리상황이 열악한 것이 외국인이 아니라 재외국민이라는 것이 매우 기이한 현상이다. 같은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재외국민이라는 범주를 굳이 만들어 권리를 제한하는 배경에는 과거 가난했던 시절에 시작된 '자발적' 이민자에 대한 곱지 않는 감정이 있다.

재외국민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것은 이를 반영한 일종의 보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보복의 대상인 '자발적' 이민자들은 외국국적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고만 서약한다면 이중국적자로서 내국인과 동일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일제강점의 유산이자 '비자발적' 이민자인 재일동포만이 이 보복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육아지원이 유독 재일동포만을 배제하고 있는 것은 인권적 관점에서 보아도 조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또한, 일본에서 온갖 차별을 이겨온 재일동포가 일본으로 귀화해야 지원대상이 될 수 있는 현행제도는 의도적이든 아니든지 간에 모국이 이들에게 엄청난 모욕을 주는 꼴이다. 돈을 받고 싶으면 일본인이 되라고, 이 나라 행정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 일본의 우토로 마을(지구촌동포연대 제공)
재일동포를 자발적 해외이주자로 취급해 '주민등록증'이냐, '특별영주자격'이냐는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급기야 귀화를 종용하는 사회 분위기다. 하지만 역사를 망각한 이런 접근법은 옳을까? '재일코리안 연구자' 오가타씨는 재일동포와 '특별영주자격' 특수성에 대해 언급하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부분의 재일동포는 주민등록법이 생기기 훨씬 전, 해방 전에 일제강점으로 인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렇기에 재일동포를 자발적인 '해외이주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특별영주자격을 포기하지 않으면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국민이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행정 서비스들을 (재일동포들이) 못 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금 재일동포들은 선택에 내몰리고 있다. '특별영주자격'을 포기해야만, '주민등록번호'를 받는 온전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선정되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결정에 의해서 말이다. 지금 재일동포는 완전한 우리 국민일까? 오가타씨가 현 재일동포의 상황에 대해 말했다.

"일본에서 힘겹게 코리안으로서 살아온 재일동포들이 자신의 모국인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살게 될 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국민대우가 아닙니다.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회의 풀멤버(full-member)가 아닌 해외동포로만의 대우입니다."

 곽진성 (jinsung007)

2012년 6월 5일 화요일

외국인 주식매도 확대, 기관은 '주가 떠받치기'


이글은 뷰스엔뉴스(Views&News) 2012-06-05일자 기사 '외국인 주식매도 확대, 기관은 '주가 떠받치기''를 퍼왔습니다.
코스피 1800 회복, 환율은 찔끔 오르는 데 그쳐

외국인이 5일 주식 매도 규모를 확대했으나 기관이 나서 외국인 매도물량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코스피가 5일만에 반등해 1,800선을 간신히 회복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는 1.05%(18.72포인트) 오른 1,801.85로 마감했다.

외국인이 전날보다 주식 매도 규모를 늘려 3천553억원을 순매도했다. 개인도 2천145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가세했다.

그러나 기관만 3천919억원어치를 순매수, 정부가 연기금 등을 동원해 주가 방어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1.16%(5.22포인트) 오른 456.06을 기록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주가 반등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 계속 주식을 순매도하고 있다는 소식에 전날보다 겨우 1.90원 하락한 1180.1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박태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