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9일 금요일

[사설]반교육적인 일제고사, 존립 근거 잃었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6-28일자 사설 '[사설]반교육적인 일제고사, 존립 근거 잃었다'를 퍼왔습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요약하면,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시험은 교육의 정도를 평가하고 측정하는 수단일 터이다. 만약 수단이 목적에 위배된다면, 아니 목적을 부정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 수단은 폐기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사흘 전 전국 초·중·고교에서 치러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가 그런 예가 될 듯하다. 일부 학교에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수단을 위해 목적을 내팽개친 셈이니 가치전도 현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초등학교에서는 일제고사 당일 성적이 우수한 학생과 부진한 학생을 짝짓는 식으로 자리를 바꿔 부정행위를 사실상 조장했다고 한다. 또 다른 초등학교에선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의 답안지를 교감이 나서서 고쳤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모 중학교에서는 상위권 학생이 자신의 문제지에 답을 크게 쓴 뒤 옆자리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제가 된 것은 부정행위뿐이 아니다. 충남의 한 초등학교에선 일제고사에 대비한 자체평가 점수에 따라 신, 귀족, 평민, 천민, 노예로 신분을 구분한 뒤 아이들에게 자기 신분을 큰소리로 말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반교육적 행태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일제고사의 반교육·비효율성을 지적하며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이른바 ‘0교시’와 야간 자율학습을 강제 실시하고, 점수가 많이 오르면 현금이나 놀이동산 이용권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등 교육현장의 파행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조직적인 부정행위 의혹까지 보태졌으니 일제고사의 존립 근거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본다. 내년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일제고사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맞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그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교육당국은 일제고사 당일의 부정행위 의혹을 모두 규명해 사실로 드러나면 관련자를 징계하는 등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지난 5년간 치러온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기 바란다. 편법과 반칙을 가르치는 시험은 시험이 아니며, 편법과 반칙을 묵인하는 학교는 학교라 부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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