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30일 토요일

동아방송의 ‘자유언론실행총회’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6-30일자 기사 '동아방송의 ‘자유언론실행총회’'를 퍼왔습니다'
언론과 권력 (39)

 ▲ "우리는 탄압 받고 있는 동아일보사에 뜨거운 성원을 보내고 있는 국내외 민주국민의 열의에 보답하기 위해 자유언론 실천에 더 한층 분투 노력한다"

1975년 1월 10일, 동아일보사 기자들은 홍수처럼 밀려드는 격려광고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편집국에서 총회를 열고 ‘자유언론실천강령’을 채택했다.
“1.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모든 영역에서 반민족적, 반민주적, 반문화적 잘못을 색출, 이를 고발, 보도한다. 1.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싸우다가 고난을 겪고 있는 모든 민주인사와 그 가족들의 안위를 성실하게 보도한다.1.우리는 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불의와 부정부패를 과감히 파헤쳐 그 실상을 보도한다.1.우리는 관 일변도의 기사보다는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많은 불우한 국민의 편에 서서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자세로 충실하게 취재, 보도한다. 1.우리는 광고 탄압으로 빚어진 난국을 다 같이 힘을 모아 이겨내고 자유언론을 굳게 지키며 그것을 성공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특히 불순한 책동과 패배적인 타협을 경계하면서 거사적인 단결을 공고히 한다. 1.우리는 탄압 받고 있는 동아일보사에 뜨거운 성원을 보내고 있는 국내외 민주국민의 열의에 보답하기 위해 자유언론 실천에 더 한층 분투 노력한다.”((자유언론), 170~171쪽)
1975년 1월 7일 동아방송에 대한 광고 탄압이 시작되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엔지니어, 업무사원 등 115 명은 이튿날 모임을 열고 ‘동아방송자유언론실행총회’를 결성했다. 실행총회는 위원장으로 프로듀서 이규만을 선출한 뒤 SB(스테이션 브레이크)에 이런 내용을 넣기로 했다.
“동아방송의 광고주들이 오늘 무더기 해약을 통고해 왔습니다. 이와 같은 사태에도 불구하고 동아방송은 자유와 정의의 편에서 계속 방송할 것을 청취자 여러분께 굳게 다짐합니다. 청취자 여러분의 애청을 계속 바랍니다.”
동아일보사의 편집국에서 요직에 있던 간부들이 그랬듯이 동아방송의 편성·제작 간부들도 위와 같은 ‘알림 광고’를 보류하자고 실행총회 구성원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실행총회는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된다는 결의에 따라 1월 8일 정오부터 위의 문안을 방송했다.
실행총회가 창립 모임에서 채택한 ‘결의문’은 아래와 같다.
“동아방송자유언론실행총회는 동아방송의 광고 무더기 해약 사태에 즈음해서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첫째, 우리는 지금까지 지켜온 동아방송의 주지를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동아방송은 언론의 자유와 편성의 자주성을 견지하고 방송의 권위와 공신력을 높이며 문화 발전과 경제 번영, 사회 순화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방송의 품격을 높인다. 그리고 자유와 정의 편에 서서 어떠한 독재에도 반대한다. 앞으로도 계속 이와 같은 동아방송의 주지에 따라서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한다.
둘째, 우리는 앞으로 동아방송과 동아일보에 대한 외부 세력의 어떠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이 사실을 국민에게 알린다.
셋째, 우리는 언론의 자유가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투쟁할 것을 다짐한다.”(박지동, ‘1970년대 유신독재와 민주언론의 말살’, (한국언론 바로보기 100년), 409~410쪽)
동아방송 사원들이 실행총회를 결성한 지 20여 일 만인 1월 29일 중대한 사태가 벌어졌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정계야화) 재방송을 폐지하기로 간부회의가 결정한 것이다. 그 프로는 일요일 밤 9시에 본방송이 나가고 다음 주 월요일 아침 8시 30분에 재방송되고 있었다. 간부회의는 청취율이 훨씬 더 높은 재방송을 폐지하고 본방송만 존속시키겠다고 사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정계야화)는 4월 혁명 전후 정치권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일화를 드라마 형식으로 구성한 프로그램으로서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인권 유린을 연상시키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 실행총회는 방송국 간부들이 외부의 압력을 받고 재방송을 없애기로 결정했다면 편성의 자주성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인기 절정에 있던 프로그램을 스스로 폐지할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다.

▲ <정계야화>는 4월 혁명 전후 정치권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일화를 드라마 형식으로 구성한 프로그램으로서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인권 유린을 연상시키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

실행총회 집행부는 (정계야화) 재방송 폐지가 시사성이 짙은 다른 프로그램들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간부회의 결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실행총회가 최종시한으로 통보한 2월 1일 오후 4시가 지나도 간부들은 응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실행총회 회원들은 (정계야화) 재방송을 요구하면서 밤샘 농성에 들어갔다.
그 무렵 동아일보사에서는 전문 분야가 서로 다른 기자들과 방송국 사원들이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이래 일체감을 가지고 협력하고 있었다. 편집국과 방송뉴스부의 기자들은 동아일보사 건물 4층의 방송국으로 올라가서 농성에 합류했다. 농성장에는 방송 편성의 자주권을 지키겠다는 결의가 넘쳤다.
결국 2월 2일 아침 8시 30분에 방송국 사원들과 편집국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방송이 나가기 시작했다. 동아일보사 경영진과 방송국 간부들이 실행총회의 투쟁에 굴복한 것이었다. 방송국의 일부 간부들은 “실행총회가 강압적, 폭력적인 방법으로 재방송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농성하던 사원들은 재개된 재방송을 들으면서 한국 방송의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편성권 독립 투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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