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30일 토요일

지젝 “나는 당신들의 좋은 벗… 언제든지 활용해달라”


이글은 미디어스 2012-06-29일자 기사 '지젝 “나는 당신들의 좋은 벗… 언제든지 활용해달라”'를 퍼왔습니다.
기자들을 이끌고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를 찾은 슬라보예 지젝

 ▲ 슬라보예 지젝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 분향소 앞에 마련된 방명록에 글을 적고 있다.ⓒ미디어스
“기자들이 많이 왔다가 싹 빠져나가니까 허전하네.”
한산해진 분향소를 바라보는 한 쌍용차 해고자의 눈에 쓸쓸함이 묻어났다. 슬라보예 지젝이 분향소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다음 일정을 챙기러 떠난 직후였다. “그래도 지젝이 이렇게 와 줘서 (쌍용자동차 해고사태가) 많이 알려지니까 좋지 뭐.” 그의 허허로운 뒷모습에 지젝이 남긴 방명록 문구가 겹쳐졌다.
‘투쟁을 멈추지 마세요. 그대들이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Continue with your struggle. You are the hope for us all).’
슬라보예 지젝이 29일 오전 11시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분향소를 찾았다. 슬라보예 지젝은 슬로베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지젝은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철학으로 서유럽학자들에게는 ‘동유럽의 기적’이라 불린다. 지젝은 지난 2011년 10월 8일에는 월가 점령 시위대를 찾아 연설하기도 했다.
지젝이 도착하기 전부터 그를 기다리는 한 무리의 기자들이 분향소 앞에 모여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이창근 와락 기획팀장은 “지젝이 대세인가 보다”라며 동료를 향해 웃었다. 이윽고 지젝이 분향소에 당도하자마자 그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좁은 분향소 안쪽은 이내 기자들의 뜨거운 취재 열기로 가득 들어찼다. 이를 지켜본 이창근 기획팀장은 트위터를 통해 “기자들이 지금껏 최고로 많이 왔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우리가 언론의 조명을 받는 데 당신(지젝)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라며 걱정했지만 지젝은 개의치 않았다. 지젝은 오히려 “나를 활용하라. 당신들이 나를 활용하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좋은 벗이 되고 싶다”는 말로 쌍용차 해고자들의 염려를 붙들었다.

 ▲ 슬라보예 지젝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 분향소에서 향을 올리고 있다.ⓒ미디어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에게 “정리해고는 경영위기 때문이 아닌 착취를 위해 일어난다”며 “신자유주의의 표본이 되고 있는 한국의 모습을 바깥에 알려달라”고 청했다. 지젝은 김정우 지부장의 말에 동의하며 “정부와 대자본은 국제 사회에서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쌍용차 해고자들의 목소리에) 반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왼쪽)이 슬라보예 지젝(오른쪽)에게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스카프를 매어 주고 있다.ⓒ미디어스
지젝은 “이 사회에 문제가 있음을 사람들이 끊임없이 인식할 수 있도록 ‘작지만 꾸준히 아픈 상처’가 되어라”라며 해고자들의 투쟁 의지에 힘을 실었다. 또한 지젝은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작은 눈덩이가 산을 내려가며 커지듯 투쟁의 성과는 사회에 남을 것”이라고 격려하였다.
기자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든 모습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행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쌍용차 분향소를 기웃거렸다. 더러는 잠시 멈추어서 지젝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지젝이 김정우 지부장과의 대화를 끝마치자 기자들도 저마다 짐을 챙겨 들고 분향소를 떠났다. ‘지젝이 찾은 쌍용차 분향소’가 아닌 ‘쌍용차 분향소를 찾은 지젝’을 담으러 온 기자들이 떠나자, 분향소는 다시금 지젝이 방문하기 전의 한산함 속으로 잠겨들었다. 쌍용차 해고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만이 바람에 나부꼈다. 점심시간을 맞은 행인들도 바삐 걸음을 옮겼다. 대한문 앞에 쌍용차 분향소가 설치된 지 86일 째 되는 날의 점심 풍경이었다.

윤다정 수습기자  |  lindalmemo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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