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9일 금요일

이명박의 길과 박근혜의 길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6-29일자 기사 '이명박의 길과 박근혜의 길'을 퍼왔습니다.
한-일 군사정보협정 '침묵 공조'

국무회의가 지난 26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기로 의결한 사실이 밝혀진 뒤 야권은 물론이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반대와 비판이 폭죽처럼 터졌다.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지형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면서 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민감한 대응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큰 이 협정은 한국의 역대 국회에서 일어난 그 어떤 ‘날치기’보다도 충격적인 ‘비밀군사작전’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국무회의가 규정에 따라 사흘 전에 온라인 ‘국정관리시스템’에 일반안건으로 올리지 않은 채 즉석안건으로 상정해서 벼락치기로 의결한 데 대해 ‘밀실의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그날 국무회의를 주재한 사람이 김황식 총리라는 이유로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무회의가 그 협정안을 의결하던 즈음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강한 힘을 유지하고 국민이 단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외국에 머물고 있어서 국무회의가 국가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큰 협정을 의결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면 그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국가원수직을 물러나야 마땅하다. 4개국 순방에 동행한 고위 관료들 가운데, 최첨단 통신망을 통해 중요한 국내 상황, 특히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외국과의 협정에 관한 정보를 받아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의 기능이 마비되었다는 뜻이다.

▲ 레임덕(lame duck, 절름발이 오리)
이명박 대통령이 ‘레임덕(lame duck, 절름발이 오리)’ 소리를 듣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이다. 그런데 최근 그의 행보를 보면 단순한 레임덕이 아니라 제동장치가 고장 난 채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자전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세계 최우수’라는 평가를 받는 인천국제공항 주식의 정부 지분을 기어코 매각하려고 하는가 하면, 임기 말에 외국 무기를 14조 원어치나 사들이겠다고 서두르기도 했다. 가뭄을 해소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이미 22조 원을 쏟아부었는데, 지류·지천 정비에 앞으로 4년 동안 15조여 원을 더 들여야 한다고 발표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5월 24일 의원총회에서 ‘돈 되는 것은 다 팔아먹고 정권을 넘기려 한다’고 이 대통령을 비난했다.
폭주기관차처럼 멈출 줄 모르는 ‘이명박 식 국정 운영’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지금 불안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야당이나 진보언론의 비판에는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그에게 제동을 걸 세력은 집권당인 새누리당밖에 없다. 그 당 안에서도 가장 유력한 대통령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말에 가장 큰 무게가 실릴 것이다. 그러나 박 의원은 ‘침묵공주’의 철옹성에서 좀처럼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이튿날인 28일 친박계의 핵심 중 핵심인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독도를 찾아가서 시설물을 ‘순시’한 것이 박근혜 의원을 대변한 행동이라고 보아야 할까? 그는 예정된 최고위원회의까지 취소하고 ‘호국보훈의 달’에 한·일 간의 정치적 분쟁 지역인 독도를 방문한 것이었다. 일본의 극우파 사내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글을 써 붙인 뒤 몰지각한 행동을 나무라는 국민의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그는 ‘새누리당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한다’는 뜻으로 거기에 간 것일까?

 ▲ 이명박 대통령

새누리당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박근혜 의원이 현재 가장 집착하고 있는 것은 ‘당헌과 당규에 따른 대통령후보 경선’이다. ‘비박계’로 불리는 후보들이 흥행 효과를 위해서라도 ‘국민경선(오픈프라이머리)’을 하자고 끈질기게 주장하는데도 그는 오불관언이다. 한 비박계 후보의 대리인이라는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그렇게 무시하는 비박 주자들의 지지율 5% 때문에 피눈물을 흘릴 날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근혜 의원이 최근 정치 현안에 대해 발언한 것은 MBC 노조 파업이 유일하다. 그는 지난 22일 ‘파업이 징계 사태까지 간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데 노사가 서로 대화로 슬기롭게 잘 풀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하루 빨리 정상화되길 바라는 것이 국민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여당 추천 이사들이 지배하는 방송문화진흥회가 뽑는 MBC 사장은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임명’하는 자리라는 사실을 박 의원은 모르고 있는가? 그리고 그는 (주)문화방송 주식 30%를 보유하고 있는 정수장학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6월 28일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현재 계획으로는 29일 오후쯤에는 한·일 정보보호협정에 대한 서명이 도쿄에서 겐바 일본 외무상과 신각수 주일대사 사이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 협정이 발효되면 한반도의 앞날에 어떤 태풍이 몰아쳐 올지는 명백하다. 그것은 두 나라가 서로 ‘정보를 보호하려고 맺는’ 단순한 협정이 아니다. 1960년대 초반에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권에 맞서기 위해 ‘굴욕적 한·일회담을 통한 국교 재개’를 박정희 정권에 강하게 권하는 한편, ‘용병’이라는 비판을 받던 베트남 파병의 대가로 거액의 달러를 몰아주던 시기의 ‘한·미·일 삼각동맹’이 21세기에 재현되는 것이다. 새로운 삼각동맹의 주된 표적은 세계의 두 번째 군사대국으로 떠오른 중국, 한·미·일이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고 보는 북한, 그리고 두 나라와 보조를 함께할 가능성이 짙은 러시아임이 분명하다.
2012년 6월 현재의 일본은 1960년대의 일본과는 판이하다. ‘평화헌법’에 발이 묶여 군비 확장이나 해외 병력 파견에 제한을 받던 그 나라가 아니다. 지난 21일 일본 국회는 원자력규제위원회 설치법의 목적 1조에 ‘우리나라의 안전 보장에 이바지한다’는 조항을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핵무장의 길을 활짝 열었다. 2011년 9월 일본 내각부의 보고에 따르면 일본은 국내의 6.7t, 외국에 맡긴 23.3t 등 모두 30t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은 1만~1만5000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양이다. 그리고 일본은 핵실험 절차를 생략하고 컴퓨터 모의실험을 통해 핵무기 개발과 검증 실험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 묵인하기만 하면 일본이 중국을 넘어서는 핵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

전문가들은 한·일정보보호협정에 이어 상호군수지원협정이 체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일본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의존하는 ‘약소국’의 처지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상대로 ‘흡수통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한·미·일 삼각동맹이 어떤 계기에 북한에 대해 무장 공격이나 침공을 가한다면 1961년 7월 11일 북한과 중국 사이에 체결된 ‘조·중 동맹조약’에 따라 중국군이 자동적으로 북한에 진주해서 전쟁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는 ‘토목사업’에 거액의 국가예산을 쏟아 부으면서 의혹에 싸인 수의계약을 거듭했는가 하면 생산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대북정책으로 일관하면서 미국에 대한 군사적 종속을 더욱 강화하고 일본에 대한 의존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 ‘이명박의 길’이라는 사실은 확연히 드러났다. 그렇다면 ‘박근혜의 길’은 무엇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야당과 국민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저지른 일들을 침묵으로 인정하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바로잡겠다’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바르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수구보수세력의 지원으로 대통령이 된 다음에 어떻게 파격적인 ‘국정 쇄신’을 이룰 수 있겠는가? 박근혜 의원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이명박의 길’을 정당하게 비판하면서 수렁에 빠진 나라를 건져낼 정책과 이념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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