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7일 수요일

115명 죽인 김현희, 왜 그렇게 당당한가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6-26일자 기사 '115명 죽인 김현희, 왜 그렇게 당당한가'를 퍼왔습니다.
[게릴라칼럼] (조선일보)와 KAL기 폭파범의 후안무치한 '종북몰이'

 ▲ TV조선에 출연한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씨 ⓒ TV조선

지난 18일과 19일, (TV조선)이 KAL기 폭파 사건의 주범인 김현희와 인터뷰를 했다. 이를 받아 가 대대적으로 기사를 내보내는 것을 보고 글을 쓰려다가 그만뒀다. KAL기 사건 유족들에게는 미안한 표현이지만 이미 오래전에 흘러간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이 있듯이 KAL858기 폭파 사건은 화석화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현재의 일이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여전한 유가족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대선을 앞둔 보수 세력에게도 KAL기 폭파 사건은 여전히 활용 가치가 높은 현재진행형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연이은 (조선일보)의 후속 보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과거의 역사이건 현재 진행형의 사실이건 간에 KAL858기 사건을 둘러싼 김현희와 (조선일보)의 행태는 필자의 분노 게이지를 차츰차츰 높여놓더니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KAL858기 폭파사건을 정리해보자. 이 사건은 대선직전인 1987년 11월 발생했다. 탑승자 115명 전원이 사망했지만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시사프로그램 등에서 이 사건에 대한 재조명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2005년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잇따라 재조사를 벌였고 결국 "김현희가 진범"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KAL858기의 폭파범 김현희는 본인이 무슨 의인이라도 되는 양 (TV조선)에 나와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펼치고 있다. 김현희는 유가족 등 진상규명 활동을 해온 사람들을 종복주의자로 매도하는가 하면 과거에 자신이 작성한 서약서까지 공개하면서 유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어 (조선일보)는 당시에 조작설을 제기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마냥 연일 대서특필 하고 있다. 요즘 진보세력 일부의 잘못된 행태를 두고 종북몰이를 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KAL기 폭파 사건은 진보 세력이 아니라 보수세력이 창피해야 할 사안임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KAL기 사건을 대하는 (조선일보)의 자세

일단 입장부터 명확히 하자. 나 역시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김현희가 KAL858기 사건의 폭파범이자 그가 천인공노할 북한의 공작에 의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조선일보)는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당당한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이다. 내가 이 같은 사실을 믿는 것은 1987년에 있었던 전두환 정부의 조사 결과 때문이 아니라, 참여정부 하에서 진행되었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로 김현희가 범인임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도 거짓말을 상투적으로 하는 사람의 말은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법이다. 광주에서 양민을 학살한 정권이 들이미는 자료를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전두환 정권의 주장은 걷어치웠으면 좋겠다.

또한 의구심 가득한 기록들에 대해서는 더 말하기 구차하니 그만두어야겠지만, KAL기 사건에 대한 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아래에 그 증거 사진이 있다.

▲ <조선일보> 1987년 12월 16일 지면 ⓒ 조선일보

위 사진은 야당 당직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고백하는 1987년 12월 16일자 1면이다.  선거 당일 이러한 기사 배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선일보)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 선거운동본부보다 더 훌륭한 선거 홍보물을 만들었다.

다음은 오늘(6월 26일)자 (조선일보)가 1면 톱기사와 5면을 통해 올린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관 김지영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의 일부이다. (조선일보) 인터넷판에는 이 인터뷰를 단독기사로 표시했다.

- 심재환 변호사(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 남편)는 아직도 김현희씨를 가짜로 본다
"이 사건 조사기록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그런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중략)
- 전두환 정권이 운이 좋았다는 건가?
"전두환 정권이 운이 좋았다. 이것처럼 안보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가 흔하겠나."

▲ <조선닷컴>에 톱 기사. ⓒ 조선닷컴

북한이 때맞춰 KAL기 폭파를 일으켜서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조선일보)는 이러한 정부의 중요한 조력자 내지 주범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기들이 이것을 대선에 마음껏 활용해 놓고서 이제 와서 인터뷰를 통해 "전두환 정권이 운이 좋았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KAL기 사건은 전두환 정권에게 우연이었지만, 그것이 대선에 끼친 영향은 우연이 아닌 보수 세력의 치밀한 공작으로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현희를 살려준 이유

다른 사람 혹은 사실에 대한 의심에는 허무맹랑한 의심도 있고 합리적 의심도 있고 정당한 의심도 있다. 개인적으로 1987년에 제기되었던 김현희에 대한 의심이 합리적 의심을 넘어 정당한 의심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의 행태가 배경에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학살만으로 전두환 정권은 이런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거늘, 수지킴 사건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문 조작 사건은 이런 의심이 절대로 무리가 아니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정보의 제약 속에 제기한 합리적 의심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공격을 가하는 것은 바로 독재정권의 패악을 옹호하는 것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현희가 과거 '유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살고싶다'며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의 조사요구에 응하지 않았으면서 이렇게 나서는 것은 의심받아 마땅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김현희의 행태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야겠다. 도대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도 뻣뻣이 들고 있는 고개는 어떤 힘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일까? 김현희는  "이미 사법부가 3심한 것을 (국정원)발전위가 4심을 하고, (진실)화해위가 5심을 하는 행위는 인민재판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김현희는 뭔가를 한참 잘못 알고 있는것 같은데, 독재 정권의 필요에 의해 사면을 받았다고 해도 수많은 인명을 죽인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4번이 되었든 5번이 되었든 유족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실히 조사에 응하는 것이 김현희가 죽을 때까지 수행해야 할 의무이다.

김현희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가 사면할 때 가장 중요한 논거 중에 하나가 그녀가 KAL기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라는 점이었다. 참여정부 하에서 조사가 자신을 가짜로 만들려는 조작 시도였다면 (TV조선)에 나와서 떠들지 말고 국정원을 통해 조사해서 밝히라고 하면 될 일이다.

KAL기 사건 때문에 민주정부 수립 절호의 기회를 놓친 민주화 세력의 통한의 마음은 이후의 민주화 과정에서 보상받았다고 치자. 가족을 잃은 유족의 슬픔은 어찌할 것인가? TV에 나와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김현희의 모습을 볼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는가? 그 유족들이 김현희를 가짜로 보고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 가슴에 못을 박을 권리가 김현희에게는 없다.

학살범 왜 저렇게 당당할까

아무리 학살자가 대통령이 되고 그의 후예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나라라고 해도, 명백한 학살의 범인이 저렇게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게 하는 나라가 어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조선일보)를 통해 갑자기 김현희가 TV에 나오고 KAL858기 사건이 언급되는 것은 일부 진보 세력의 잘못된 행태와 대선 시기가 맞물린 고도의 전략적인 행위라고 생각된다. 물론 모든 사건은 정치적이고 이것을 활용하려는 것은 진보와 보수 세력을 막론하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껏이고 그래도 되는 일이 있고,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김현희는 스스로를 돌아보아 자숙해야 마땅하고, (조선일보)는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돌아봐야 한다. 적어도 KAL기 폭파사건과 관련하여 김현희와 (조선일보)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전대원 (amhar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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