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4일 월요일

여당, 하도급법안이 차별 없앤다지만… 비정규직만 늘린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6-03일자 기사 '여당, 하도급법안이 차별 없앤다지만… 비정규직만 늘린다'를 퍼왔습니다.

ㆍ노동계·야당 “불법파견 합법화… 반민생법” 반발

새누리당이 지난달 30일 19대 국회 첫 법안으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사내하도급법) 제정안을 내놓았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사내하청 근로자들에게 ‘보호망’을 쳐주자는 취지에서 발의됐다. 정규직 대비 50~60% 수준에 불과한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80% 수준으로 끌어올려 차별을 해소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차별행위에 대한 보상, 사내 하도급계약 해지 시 고용 승계 등도 법안에 명시했다.

조해진 새누리당 정책위부의장은 3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노동조합에서는 불법파견을 합법화하는 것이라고 반대하겠지만 이 법으로 인해 지금까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던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임금이나 복지가 올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근로자들이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을 찬성하면 입법이 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 판결에 부풀었던 희망 현대차의 구체적인 업무 지시 및 감독을 받은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지난 2월23일 전국금속노동조합 소속 노조원들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풍선을 날리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러나 노동계는 일제히 성명서를 내고 반발했다. 이들은 “새누리당이 내놓은 법안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은커녕 오히려 원청업체가 법의 틀 안에서 불법파견을 양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놓았다”고 밝혔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새누리당 법안의 본질은 제조업 등 분야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 근로자를 마음껏 쓰려는 데 있다”며 “사내하청 근로자를 보호하는 법이 아니라 확대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또 “사내하청 노동이 합법화될 경우 사업장 내 핵심부서만 남기고 나머지 업무들은 사내하청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닝 차를 생산하고 있는 동희오토사처럼 사내하청업체들이 생산을 담당하는 ‘사내하청 공장’ ‘비정규직 공장’이 확산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고 덧붙였다.

■ 대법 ‘현대자동차 판결’과 배치

새누리당이 제출한 사내하도급법안은 지난 2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지위를 명시한 대법원 판결과 배치된다.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현대자동차로부터 구체적인 업무 지시 및 감독을 받았기 때문에 파견근무자로 인정했다. 고용은 하청업체가 했지만 그 이후의 모든 업무관계로 봤을 때 현대자동차가 고용해 파견한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로 정규직과 섞여 일하는 사내하청 근로자를 파견근로자로 인정함으로써 정규직 전환의 길을 열어줬다. 

최초의 고용자가 하청업체라도 원청업체의 지휘·감독에 따라 일을 했다면 파견근로자로 보고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파견은 소속 근로자에 대한 지휘·감독권이 원청업체에 있다. 근로자에 대한 지휘·감독권이 하청업체에 있는 도급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제출한 법안은 대법원이 ‘파견근로자’로 인정한 근로자들을 ‘사내하도급 근로자’로 분류했다.

파견근로자의 개념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버린 셈이다. 또 비정규직 파견근로자의 지휘·관리·감독 권한을 하청업체가 가진다고 못박았다. ‘파견’과 ‘도급’을 구분하는 핵심적인 차이인 ‘노무 지휘·감독 권한’을 모두 하청업체에 부여한 것이다.

법안 제2조 4항은 ‘사내하도급 근로자란 수급사업주가 고용한 근로자로서 원사업주의 사업장에서 수급사업주의 지휘·명령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원청업체를 상대로 정규직 전환 요구나 부당해고 구제소송을 청구할 방법을 막아버렸다”고 말했다.

법안 제4조는 원청업체가 사내하도급 계약을 체결할 때 하청업체와 서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또 계약서상에 하청업체가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모든 지휘·감독권을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홍순광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국장은 “이 정의대로라면 홍익재단 산하의 홍익대에서 일하는 청소·경비노동자들이 또다시 집단해고를 당해도 ‘당신들이 직접 고용한 것이 맞지 않느냐’고 말할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 비정규직 파견근로자 2년 지나도 정규직 구제방법 사라져

비정규직인 파견근로자들이 원청업체에서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정규직으로 자동전환이 될 수 있도록 한 ‘파견법’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르면 원청업체에서 2년 이상 파견근무를 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자동으로 원청업체의 정규직 직원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사내하도급법안에는 이 같은 조항이 없다. 대신 원청업체에 파견된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하청업체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비정규직 파견근로자는 원청업체를 상대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할 권한이 없는 것이다.

원청업체가 이를 악용해 처음부터 하청업체로부터 파견근로자를 받은 뒤 하청업체의 관리·감독을 받는 사내하도급 근로자로 돌리면 정규직 전환의 부담을 피할 수 있다.

노동계는 “애초 근무형태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법으로 파견근로자와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나누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현재 노동 현실에서는 사내하도급보다 파견법을 적용받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밝혔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이 법안은 대법원 판결 이후 파견으로 인정받은 사람들까지 도급근로자로 만들어버린다”고 밝혔다. 그는 “사내하도급법이 시행될 경우 불법파견 논란을 교묘히 피해 원청업체가 책임을 지지 않는 수단을 만들어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내하도급

원청업체에서 일을 도급받은 하청업체 근로자가 원청업체에서 일을 하는 경우를 사내하도급이라고 한다. 누가 실질적으로 업무 지시를 하느냐에 따라 불법파견과 통상적인 사내하도급으로 나뉠 수 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도급의 경우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났다. 파견근로자는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의 사내하도급은 도급 계약에 따라 하도급업체가 업무 지시를 하기 때문에 차별 대우와 함께 정규직 전환이 불가능하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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