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2일 금요일

학회 “시조새, 교과서 삭제 안된다”… 기독교계·과학계 충돌


이글은 경향신문 2012-06-21일자 기사 '학회 “시조새, 교과서 삭제 안된다”… 기독교계·과학계 충돌'을 퍼왔습니다.

ㆍ창조론 단체 ‘교진추’ 청원, 일부 출판사들 삭제·수정ㆍ학회 “터무니없다” 반박… 손놓은 교과부 뒷북 대응

시조새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붙었다. 종교계의 지원을 받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교진추)가 “교과서에서 시조새를 삭제해야 한다”고 요구한 데 대해 과학계가 정면 대응에 나서면서 양측의 논쟁이 본격화됐다.

한국고생물학회를 비롯한 6개 학회 과학자 모임인 한국진화학회추진위원회는 20일 교진추의 시조새 삭제 요구에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학계가 공동으로 시조새 논쟁에 대응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논쟁은 창조론을 앞세운 종교계와 진화론을 신봉하는 과학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보인다.

국제 과학저널인 ‘네이처’와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도 한국의 시조새 논란을 다뤘다. 네이처는 ‘한국, 창조론자들 요구에 항복하다’라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 이 논쟁을 전했다. 

독일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시조새의 화석. | 경향신문 자료사진

■ 교과서 논쟁 불 지핀 종교계

이 논쟁은 교진추가 지난해 12월 교육과학기술부에 “교과서에서 시조새에 관한 기술 내용을 삭제해달라”고 청원하면서 시작됐다. 현행 고등학교 과학교과서에는 ‘시조새는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해가는 중간 단계의 생물(중간종)’로 적혀 있다. 

교진추 회원은 대부분 개신교(기독교) 신자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 출신인 이 단체의 이광원 대표는 한때 창조론을 교과서에 넣을 것을 요구한 창조과학회 사무처장을 지냈다.

교진추는 “1984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시조새학술회의에서 ‘시조새가 반(半) 조류가 아니라 완전히 비행할 수 있는 멸종된 조류’라고 공식 선언했다”며 삭제의 근거를 제시했다. 최근 중국 고생물학자들이 시조새를 ‘깃털이 달린 공룡’이라고 주장한 것도 내세웠다.


■ 반발하는 과학계

과학계는 그동안 시조새 논쟁에 소극적이었다. 자칫 창조론자들의 의도대로 과학적 사실이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과학교과서 출판사들이 시조새를 삭제할 움직임을 보이자 공식 대응에 나섰다.

진화학회추진위는 공식 반론문을 통해 “시조새가 수각류 공룡과 현생조류의 중간적인 특징을 갖는다는 화석이 현재도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고생물학회 회장인 허민 전남대 교수는 “지난 200년간 과학계가 검증해온 이론을 이렇게 폄훼하는 건 말이 안된다. 교진추의 주장은 과학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교과부도 (교진추의) 청원 내용을 학회에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출판사에 이야기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생명과학도들의 모임인 브릭(BRIC)도 생물학 전공자 14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6%가 교진추의 청원과 그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시조새를 교과서에서 삭제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은 73%로 나타났다.

■ 혼란 자초한 교과부

교과부의 허술한 대응도 혼란을 키웠다. 교과부는 지난해 말 청원이 접수된 뒤 단순 민원이라며 출판사에 떠넘겼다. 7개 출판사 중 3곳이 삭제 방침, 2곳은 단정적 표현 완화, 1곳은 고치기 어렵다는 답변을 했다.

교과부는 논란이 확산되자 시·도 교육감의 교과서 수정·보완 시한인 9월 말 이전에 학계·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이를 반영키로 했다. 교과부의 방침이 알려지자 출판사들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당초 수정키로 한 방침을 바꿔 공청회 이후 학계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과부의 연락을 받았을 당시 종교 관련 단체가 아니라 학계의 의견인 줄 알았다”며 “교과부가 출판사에 떠넘길 게 아니라 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구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정부는 시조새와 말을 제외하고도 진화론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 부분은 진화론의 상징이기 때문에 피해 갈 수 없다”면서 “교과부의 문제 인식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 시조새(학명 Archaeopteryx)

쥐라기 말기인 1억5000만년 전 번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몸길이가 30~50㎝ 정도로 뼈대는 파충류와 닮았고 날카로운 이빨도 가졌다. 새처럼 깃털이 발달했으며 길고 튼튼한 앞다리(앞날개)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1861년 독일의 바이에른 지역에서 화석이 발견된 이후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하는 과정의 생물로 여겨져왔다.

목정민·송현숙 기자 mok@kyunghyang.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