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6일 토요일

[사설]장준하 선생 무죄, 타살 의혹 규명으로 이어져야


이글은 경향신문 2013-01-24일자 기사 '[사설]장준하 선생 무죄, 타살 의혹 규명으로 이어져야'를 퍼왔습니다.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에 저항하다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이듬해 의문사한 장준하 선생이 누명을 벗었다. 1974년 유죄가 확정된 지 39년 만의 일이다. 어제 서울중앙지법은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장 선생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만시지탄이지만 법원이 과거 잘못을 바로잡고 고인과 유족의 명예회복 조치를 취한 것을 환영한다.

재판장인 유상재 부장판사는 선고에 앞서 상당한 시간을 들여 소회를 밝혔다. 유 판사는 고인에 대해 “격변과 혼돈으로 얼룩진 현대사에서 조국광복과 반독재민주화 투쟁 등을 통해 나라의 근본과 민주적 가치를 바로세우고자 일생을 헌신한 민족의 큰어른이자 스승”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이어 “장 선생에게 유죄를 선고한 뼈아픈 과거사를 바탕으로 국민 권익을 보호하는 사법부가 될 것을 다짐한다”며 고인과 유족에게 정중히 사죄했다. 그가 무죄를 선고하자 법정 안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대법원이 2010년 12월 긴급조치 1호를 위헌으로 판결한 뒤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이들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장준하 선생에 대한 무죄 선고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선생의 죽음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순간이자, 폭압과 야만의 시대를 증거하는 상징적 장면이기 때문이다. 1975년 경기 포천 약사봉에 올랐다가 하산하던 중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 그는 타살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서둘러 매장됐다. 검찰은 단순 실족사로 결론을 내렸고, 이후 몇 차례 재조사에서도 증거 부족으로 진상 규명 작업이 진전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유력한 증거가 새로 발견됐다. 고인의 유해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타살 가능성을 시사하는 두개골의 함몰 흔적이 드러난 것이다.

이제 살아남은 자들의 과제는 분명해졌다. 사법부의 무죄 선고는 고인의 안식을 위한 시발점일 뿐이다. 선생과 유족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나아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길은 뻥 뚫린 두개골이 웅변하는 진실을 찾아내는 데 있다. 조사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민관합동기구를 하루빨리 구성해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의 과오를 공식 사과한 바 있다. 당선 이후에도 국민대통합을 정부 운영의 핵심 가치로 삼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왔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규명 작업은 박 당선인의 이 같은 의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박 당선인과 차기 정부의 적극적 자세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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