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9일 수요일

2014년 지방선거 2030의 힐링 포인트


이글은 시사IN 2013-01-08일자 기사 '2014년 지방선거 2030의 힐링 포인트'를 퍼왔습니다.
기록적인 투표율을 보이며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가 공황상태에 빠진 2030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2014년 지방선거가 좋은 시점이다. 무지개 연대’와 ‘직접 참여’로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2011년, 반값 등록금을 위해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던 20대가 2012년 12월 대선에서는 투표용지를 들었다. 방송 3사 출구조사를 바탕으로 한 20대의 추정 투표율은 무려 65.2%. 지난 4월 19대 총선의 20대 투표율(20대 전반 45.4%, 20대 후반 37.9%)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높아진 수치다. 

투표한 20대의 3분의 2는 야권 지지 성향이었다.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투표한 20대의 65.8%가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하고 33.7%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선 전까지 트위터에는 갖가지 공약이 난무했다. ‘투표율이 얼마를 넘으면 무엇을 해주겠다’ 식의 공약이 올라왔다. 그 공약들은 대부분 20대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만큼 20대 투표율이 관건이었다. 뜨거운 관심에 20대는 높은 투표율로 화답했다. 그러나 높은 투표율의 20대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은 문재인 후보는 선거에서 100만 표 이상의 차이로 졌다. 20대는 깊은 ‘멘붕(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시사IN 이명익 지난 12월5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아래 연단에 선 이)가 서울시립대 학생회관에서 학생들을 만나 일자리 창출 등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 참관인으로, 투표를 마친 이명박 대통령의 악수를 거부한 국민대 경영학과 3학년 최 아무개씨는 “지난 5년간 불만이 많았다는 것을 눈앞에서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반응은 양 갈래였다. 잘했다고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에 비난 글이 쏟아졌고 무차별 비난 전화도 쇄도했다. 그도 멘붕에 빠졌다.  

이제 막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20대가 맛본 이런 멘붕을 힐링해주는 곳은 정치권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처음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해준 SNS였다. 20대의 정치 참여를 독려했던 오피니언 리더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SNS 계정을 폐쇄하며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는 20대도 많았지만 ‘무엇이라도 해보자’며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20대가 다시 희망을 가질 만한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일단 박근혜 당선자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특별기구로 ‘청년특별위원회’를 설치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박 당선자는 국민대통합위원회와 함께 양대 특별기구로 20대를 위한 위원회를 설치했다. 김상민 청년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특별위원회 설치 자체가 청년 정책을 직접 챙기고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당선자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반값등록금 정책, 일자리 정책, 주거 정책 등에 주안점을 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19대 총선 전에 20대인 이준석씨를 비대위원으로 임명하고, 역시 20대인 손수조씨를 총선에 공천한 박 당선자는 비록 20대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얻지는 못했지만 ‘청년특별위원회’를 통해 20대에 대한 지속적인 정책을 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의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문재인 후보 정책 중에서도 좋은 정책이 있으면 받아들이고 그쪽 전문가들도 초빙하겠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것으로 힐링이 되지는 않는다. 감정을 깊이 이입해 극심한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는 20대에게 이 정도는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디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을까? 가깝게는 4월 재·보궐 선거가 있다. 그러나 재·보궐 선거에 집착했다가는 열패감을 또 맛볼 수 있다. 일단 선거 관련 소송이 대부분 아직 진행 중이라 선거 규모를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4월 재·보궐 선거와 비슷한 상황에서 치른 선거가 2008년 18대 총선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일종의 ‘정치적 허니문 기간’에 치러진 이 선거에서 야당은 참패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야당 후보가 무기력했기 때문에 총선에서도 무기력했지만, 18대 대선은 팽팽한 양강 구도로 치렀기 때문에 야권의 결집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민주통합당의 환골탈태를 전제로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이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확실한 것은 지금은 무엇을 반성할지 들여다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정치적 동력을 상실한 상황인데 억지로 이끌어낸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이루는 것도 한순간이고 까먹는 것도 한순간이다. 개별 선거에 대한 고민보다는 2030세대의 관심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방안을 숙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2012년 11월27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운데)가 2030세대와 유세하고 있다.

사실 진보·개혁 진영의 ‘무능하고 나태하고 부도덕한 맏형’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민주당은 고비마다 ‘외부 세력’ 영입을 통해 쇄신 화살을 피해갈 수 있었다. 18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당명과 로고를 바꾸며 쇄신하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할 때 민주당은 ‘야권 연대’라는 정치공학을 선택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내부 개혁보다 외부 연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 한 민주당은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선거공학에 너무 크게 의지했다. ‘후보는 좋지만 당이 싫어서 못 찍겠다’는 유권자를 설득할 알리바이를 만들지 못했다.

게다가 민주당에는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이어지는 유구한 전통이 하나 있다. 외부 투쟁에는 ‘등신’인 정치인도 내부 투쟁에는 ‘귀신’이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대선이 끝나자 대선 때는 전혀 존재감 없던 정치인들이 ‘친노 대 비노’ 생존 투쟁을 이끌었다. 한 가지 나아진 것이 있다면 그나마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뽑으며 짧고 굵게 싸움판을 치르고 지나갔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희망은 있을까? 야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끝없이 실망만 하게 되는 일일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안철수식 역산 방식을 따라가보자는 제안이 나온다. 대선 출마를 결심한 후 안철수 교수는 단일화 시점, 단일화 논의 시점, 출마 시점, 출판과 방송 출연 시점 등을 정확히 역산해서 예정대로 움직였다. 막판에 단일화 협상 과정의 문제점 때문에 결국 사퇴하기는 했지만 이런 계획된 정치 행보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주는 데 기여했다. 

이 역산법에서 야권 지지자들이 힐링 포인트로 삼을 수 있는 시점은 2014년 지방선거다. 야권 정치인 중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선에 도전하고 무상급식·혁신학교·학생인권 등 다양한 진보 의제를 만들어낸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3선에 도전한다. 미국에 가 있는 안철수 전 후보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선거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표가 더 나온 충남·충북·강원도의 단체장도 민주당 소속이다. 지방선거는 특성상 현역 단체장이 유리하다. 따라서 2014년을 1차 힐링 포인트로 보고 지금부터 준비를 하자는 의견이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장벽도 있다. 야권은 단일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 후보와 맞서야 한다. 다시 지난한 ‘야권 연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축이 너무나 많다. 민주당 안에도 친노와 비노가 대립하는데 밖에는 안철수라는 강력한 축이 또 있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은 예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때보다 심하게 대립한다. 이 복잡 함수를 풀어낼 묘수가 있을까? 

전범으로 제시할 수 있는 모형은 바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고양시에서 구현된 ‘무지개 연대’ 모형이다. 전국 단위 야권 연대에 불참한 진보신당까지 가세한 이 ‘무지개 연대’를 통해 고양시장을 비롯해 지방의회와 광역의회를 석권했다. 여세가 이어져서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이 4석을 싹쓸이했던 이 지역에서 19대 총선에서는 3명(심상정·김현미·유은혜)의 야권 당선자가 나왔다. 문재인 전 후보가 경기도 전체에서는 박근혜 당선자에게 졌지만 이곳에서는 우위를 차지했다.  이준석·손수조·김광진·정은혜…

고양시의 야권 정치인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무지개 연대’를 만들어낼 때 한 가지 정한 원칙이 있었다. 정책 연대를 먼저 하되, 중앙 의제는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이념 논쟁까지 촉발하는 중앙 의제를 통일시키기는 어렵지만 지방 의제는 의외로 이견이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쉽게 정책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 SNS를 통해 지역 단위의 유권자 연대가 만들어지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2030세대의 직접 참여다. 총선과 대선에서 새누리당에서는 이준석 비대위원, 손수조 전 후보, 김상민 의원 등의 2030세대 정치인들이 맹활약했고 민주당에서도 장하나, 김광진 의원, 김영경 공동선대위원장, 정은혜 부대변인 등이 활발하게 역할을 수행했다. 386세대 이후 정치권 참여가 가장 많은 세대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손수조 전 후보와 정은혜 부대변인을 비교하는 등 관심이 쏠리는 현상도 있다. 

20대의 정치적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이다. 그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근혜 당선자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다물 때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발언을 쏟아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총선 뒤에는 김형태 의원과 문대성 의원을 연일 비판해 탈당을 이끌어냈고 인수위 구성 때도 윤창중 수석대변인 등 논란이 된 인물에 대한 견제구를 던지기도 했다. 

총선과 대선, 두 번의 큰 정치 이벤트를 거치면서 2030세대의 정치 참여는 구색 맞추기 수준을 벗어났다. 문재인 시민캠프 김영경 전 공동선대위원장(전 청년유니온 대표)은 “밖에서 보는 것과 달랐다.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정치를 할 수 없다. 정치인은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했다. 갈등 조정자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시야를 키워야 했다. 기회가 있으면 (2030이) 꼭 정치를 해보길 권한다”라고 말했다.  

2014년 지방선거와 관련해 중요한 부분은 박근혜 당선자가 기초자치단체 선거에 대한 정당 공천제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부분이다. 문재인 전 후보도 같은 공약을 했다. 실현된다면 지방선거의 큰 장벽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 주류 정당 프레임 밖에서 활동했던 청년당, 녹색당 소속 20대의 활동 반경이 넓어질 수 있다. 정치권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현된다면 풀뿌리민주주의 발전의 큰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살펴보면 희망의 근거는 여기저기 숨어 있다. 누구의 말대로 미래는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른다.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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