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10-26일자 사설 '[사설]마구잡이 동물 폐기 이제는 재고해야'를 퍼왔습니다.
정부가 구미 불산 누출 사고 지역 내 동물에 대한 일괄 폐기 계획을 발표하자 동물보호단체와 환경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녹색당+, 녹색연합,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동물보호연대, 환경운동연합 등은 그제 성명을 내고 “동물의 오염도나 유해성에 대한 명백한 증거도 없이 단지 불산 가스 누출 지역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지역 내 모든 동물을 폐기 처분한다는 방침은 불합리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피해 동물에 대한 인도적인 처우를 보장하고 대응 시스템 구축 등 재난 발생 시 동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구미 불산 사고는 발생부터 초동 대처, 수습에 이르기까지 국가 재난 관리의 허점과 난맥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엽기적 사건이다. 이런 사태가 일어난 원인은 행정·정보의 폐쇄성, 당국의 안일한 대응, 사회 전반적인 위험 불감증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근저에는 환경을 소홀히 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정부의 자세도 자리잡고 있다. 사고가 일어난 지 거의 한 달 만에 정부가 내놓은 ‘4000마리에 이르는 동물의 일괄 폐기’ 방침은 이 점에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가축을 재산 피해 보상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인식도 문제거니와 350만마리를 생매장하다시피 한 구제역 사태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주)휴브글로벌 불산 누출 사고 피해 정부합동종합대책반이 23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사고 지역 가축들이 불산에 노출되긴 했지만 검출된 함량은 가축의 건강에 위해를 끼칠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다만 불산에 노출된 가축을 식품 원료로 사용하는 것은 식품 건전성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국민 우려와 소비자단체의 요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식품망에는 유입되지 않도록 폐기 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유독·유해물질이 들어 있거나 묻어 있는 축산물 또는 그 우려가 있는 것의 판매 등을 금지한 축산물위생관리법(제33조)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사료만 축내고 판로는 없는 가축을 보유한 농민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살아 있는 동물의 살처분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당국의 고충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불산 노출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도 지당하다. 그렇다 해도 인간이 만든 재해로 고통을 당한 동물을 상품성이 떨어진 물건처럼 취급해서 일괄 폐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동물보호단체 등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 정부는 구제역 사태 때처럼 밀어붙이듯 불산 노출 가축을 처리하기보다는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정확한 수의학적 점검과 그에 따른 처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살처분이 불가피하다면 동물의 특성에 맞는 안락사 방법을 검토할 만하다. 살처분해야 피해로 인정하는 보상제도라든가 이번 사태와 같은 재난에 대비한 가축 처리와 폐기 규정 등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생명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행정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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