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0일 화요일

응답하라 YTN 그리고 '돌발영상'이여!


이글은 미디어스 2012-10-30일자 기사 '응답하라 YTN 그리고 '돌발영상'이여!'를 퍼왔습니다.
[대선보도, 비평으로 뚫다]언론장악의 시발점을 기억하는가?

얼마 전 우연히 한 주간지를 읽다가 낙하산 인사와 부당한 권력의 개입에 저항하다가 YTN에서 해직되었던 언론인들이 4년 째 맞는 기념식을 이달 초에 가졌다는 소식을 뒤늦게 서야 접하게 되었다. 순간 필자는 매우 큰 부끄러움과 더불어 무언가 날카로운 물체가 마음을 아프게 할퀴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벌써 세월이 이리 지나서, 그리고 이런저런 일에 치여 산다는 참신하지 않은 이유로, 이제는 뇌리에서 스러질 정도로 이 사안을 한동안 잊고 지낸 것일까. 정신없이 요동치는 현실 속에 YTN에서 타의로 몰려난 이들에 대한 기억을 어느 결엔가 마음 한 구석에 묻어두게 된 것일까.

▲ 2008년 10월6일 YTN으로부터 해직 통보를 받은 노조원들(왼쪽부터 조승호, 우장균, 현덕수, 노종면, 권석재, 정유신) ⓒYTN노조

이미 숱하게 발생한 MB시대의 언론잔혹사들, MBC와 KBS 그리고 국민일보와 부산일보 등에서 발생한 사안들을 접하며, 의도했다하지는 않는다 해도 세월이 지나며 내 자신의 감각이 이리 무디어진 것일까... 일순 마음을 후벼오는 부끄러움은 자책감과 안타까움으로 그리고 분노로 공명되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기억하시리라. 구본홍 낙하산 사장의 부임과 함께 촉발되기 시작한 YTN에서의 언론인들의 긴 투쟁과 시련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당하게 해직되고, 징계와 불이익을 당한 이들에게 여전히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들을.
돌아보면 문화와 언론을 그리고 소통의 문제를 탐구하는 한명의 학자로 필자가 YTN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돌발영상)을 접하고, 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되었던 데 연유한다. 뉴스프로그램이 정치인과 관료들의 동정과 활동을 관습적으로 그리고 종종 무기력하게 재현해 온데 비해, (돌발영상)은 여러 가지 이유로 뉴스의 아이템으로 나가거나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수용자들이 알만한 충분한 가치와 필요성이 담겨있는 사안과 장면들을 민첩하게 포착하고 환기시켜주는 새롭고 독특한 프로그램이었다. 저널리스트들이 정치의 현장과 특히 이면(backstage)에서 등장한 정치인과 관료들의 발언과 허언, 문제적인 행동과 뻔뻔함의 일부를 날렵하고 기민하게 포착하고, 동시에 생각하고 곱씹을 거리들을 말풍선이나 자막으로 재치 있고 압축적인 방식으로 풍자하고 환기한, 한때는 YTN의 대표 격이라 충분히 논할만한 방송텍스트였다. 3-4분 안팎의 비교적 짧은 시간 속에 (돌발영상)은 놀랄 만큼 흥미롭고, 눈이 번쩍 뜨이는 콘텐츠이자, 정치영역 속에서 등장하는 언행과 관련된 새로운 학습효과를 수용자들에게 매개해주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방송문화 영역의 한 매우 유의미한 이정표를 제시한 바 있다.


또한 상당수의 학자들이 주목하게 된 작업이기도 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현장에서, 그리고 정치인들이 모이는 청문회와 기자회견장에서 채록한 생생한 말의 기록들이, 그리고 뉴스의 재현과정에서는 빠지고 묻혔을 이 시대의 말과 행동의 풍경들이, (돌발영상)을 매개로 수용자와 시민들과 만날 수 있었다. (돌발영상)은 대안적인 방송콘텐츠로서의 참신함과 창의성과 더불어, 언론의 비평과 풍자기능을 체화한 보기 드문 프로그램이자 성취였다. 개인적으로는 (돌발영상)은 EBS의 (지식e)와 더불어 지난 수 년 간 등장했던 방송프로그램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유용한 작업이었다고 충분히 평가할만하다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연구자이자 팬으로서 이 프로그램을 수업 시간에 소개하기도 했고, 미디어 생산자연구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돌발영상)의 화법과 역할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YTN에서 벌어진 언론장악과 퇴행과 순치의 잔혹사는 필자가 손꼽아 기다리던 (돌발영상)의 활기를 앗아갔으며, 그보다 중요하게 이 프로그램을 애초에 만들고, 사측과 정치권력의 부당한 개입에 투쟁하던 언론인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뉴스전문채널의 기자들이 저널리즘의 비판정신과 독립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목 놓아 외치고 행동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불통과 징계라는 전혀 합리적이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반응이었다.

▲ 돌발영상을 제작할 당시의 임장혁 PD ⓒ미디어스

MB정부 초반부에 발생한 YTN사태는 불행하게도 이후 언론장 전반에 불어 닥치게 된 언론장악과 순치의 시발점이 되었다. YTN 노조와 구성원들의 “블랙투쟁”과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을 기억하는가? 여섯 명의 YTN을 타의에 의해 떠난 이들과 징계를 받은 33인을 기억하는가? 가까운 미래에 이들 사안들을 복기하고 기술하게 될 언론(잔혹)사가 엄정하게 그리고 세밀하게 YTN에서 벌어진 폭력과 비정상성의 단면들을 기록할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각까지 YTN을 직장으로 삼아 본분을 다하려했던 6인의 저널리스트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오랜 기간 일하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힘겨운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고 있다. 한편 한때 수용자와 학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던 (돌발영상)은, YTN사태의 장기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제 현저하게 활기와 비평의 이빨이 무디어진 모습을 드러낸다.
이 대목에서 (돌발영상)의 등장과 역할을 여전히 기억하며, YTN의 정상화를 바라는 시민과 네티즌들에게 부탁드린다. 공영방송도 아니고 거대방송사도 아닌 한 뉴스전문채널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결코 잊지 마시라고. 그리고 망각에 대항해서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온과 오프라인에서 담화와 격려로, 공감과 관심이 깃든 행동으로 해직된 언론인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 당위와 그날을 이야기하고 염원해달라고. YTN의 구성원들이 겪고 있는 크나큰 고통의 시간을 치유하고, 이 사안이 해피엔딩이 있는 서사로 귀결될 수 있게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과 지혜를 모아달라고. 물론 필자 또한 이러한 노력의 대열에 힘을 보탤 것이다.
여전히 부끄러운 마음으로 하지만 힘주어 되뇌어본다. 응답하라 YTN아, (돌발영상)이여. 예전의 패기와 활기 넘치던 네 모습을 다시 보고 싶구나. 나아가서 화면에서 길가에서 혹은 광장에서 마주치는 YTN의 로고를 보고서도 찡그리지 않고 고개를 조용히 끄덕일 그날을. 언론의 비판정신을 지키기 위해 저항해왔고 자신이 속하고 땀 배인 노동을 영위하던 자리에서 부당하게 쫓겨난 이들이 복귀해서 만들어내는 기사와 프로그램을 다시 접할 그날을 하루빨리 만나고 싶다. 먼저 지면을 빌려서 공정방송의 제도화를 위해서 권력의 개입과 무리수에 꿋꿋하게 대항하고 있는 분들께 깊은 경의와 지지를 표한다.

You‘ll Never Walk Alone.

이기형 /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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