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백선엽, 반민족 행위 스스로 고백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30일자 기사 '"백선엽, 반민족 행위 스스로 고백했다"'를 퍼왔습니다.
[기고] 31세 김광진이 아니라 92세 백선엽의 '과거'를 보자

민주통합당 김광진 의원을 두고 네티즌들이 설왕설래 하고 있다. 발단은 김 의원의 백선엽 비판 발언이다. 그가 지난 19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방부의 백선엽 씨 미화 뮤지컬 제작을 비판하자 는 기자 칼럼을 통해 "지금 우리 국회에선 31세짜리 의원이 92세의 전쟁 영웅을 '민족반역자'라 부르며 모욕을 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적었다. 당시 "잘못된 과(過)를 가지고 있는 이 민족 반역자가 대한민국 국군 지도자로 설 수 있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한 김 의원은 졸지에 버릇 없는 국회의원이 됐다.  물론 이 기자 칼럼에는 허술한 지점도 발견된다. 칼럼은 "백 장군은 일부에서 자신이 '독립군 토벌을 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2009년 인터뷰에서 '독립군을 구경도 해보지 못했는데 무슨 토벌을 하느냐'고 했다"고 지적했는데, 백 장군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직접 그의 손으로 독립군을 죽였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속한 간도특설대가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하는 것이다. 실제 백 씨는 회고록을 통해 "우리(간도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팔로군, 항일광복군 등)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백선엽 씨가 민족 반역자인지 아닌지 논쟁은 사라지고, 김 의원의 과거 트윗 발언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김 의원이 "새해 소원은 뭔가요? 명박 급사(急死)"라는 글을 리트윗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가 20대 때 한 '채찍 발언' 같은 것들이 기사화됐다. 그는 지금 '국가 원수 모독'을 즐기는 '변태 성욕자'처럼 돼 있다.  공인이라면 자신의 언행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게 마땅하다. 농담 글이라도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새누리당 이준석 전 비대위원 역시 과거 트위터에 철거민을 비하하는 듯한 트윗을 한 것이 밝혀져 혹독한 신고식을 치룬 적이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김 의원에게 경고를 보내며 "송구하다"고 대신 사과했다. 다만 최초로 김 의원이 제기했던 "백선엽은 민족 반역자인가 아닌가" 하는 부분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KBS의 백선엽 미화 다큐가 파행을 겪고, 국방부의 백선엽 명예 원수 추대 시도가 무산된 것을 보면 그가 지적대로 전 국민의 존경을 받는 "92세의 전쟁 영웅"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은 '김광진 논란'의 최초 발원지인 '백선엽 논란'과 관련한 기고 글을 싣는다. 편집자주

백선엽, 1920년생이니 올해 92살이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대한민국 국군의 원로이다.

김광진, 1981년생이니 올해 31살이다. 민주당 청년비례대표로 의원이 됐는데,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백선엽 미화 뮤지컬에 거액을 지원한 사실을 비판하면서, 백선엽을 민족반역자라고 지칭했다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의원이 되기 전에 트윗한 글까지 신상 털기를 당했다. 결국 '명박 급사'를 리트윗했다고 문재인 후보 선대위의 보직을 사퇴하고 공개사과까지 했다.

그런데도 막말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새누리당이 김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국회 윤리위에 제출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시 입에 담기도 민망한 패륜적 망언을 리트윗했을 때의 반응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백선엽, 살아 있을 때 참회라도 하라"

백선엽, 그가 일제강점기 만주국의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에서 군관으로 복무하면서 민족반역행위를 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하에서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반민족행위자에 포함되었으며 국회에 제출한 최종보고서에도 수록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백선엽은 해방 후에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는 더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는일본에서 출간된 저서에서 동족에게 총을 겨누었지만 그 때문에 독립이 늦어졌다고 볼 수도 없고, 자신이 일본과 싸웠다고 독립이 빨라질 것도 아니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 백선엽 ⓒ민족문제연구소

백씨가 영웅으로 대접받고 싶다면 먼저 일제강점기의 반민족행위, 그리고 해방 후 이를 사죄하지 않은 것에 대해 뒤늦게라도 참회해야 한다. 아직 생존해 있기 때문에 기회는 남아 있다.

1938년 9월 독립군 '소탕'을 목표로 결성된 간도특설대는 전 부대원 740명 중에서 조선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악명높은 대게릴라전 특수부대였다. 알려진 것만 해도 동북항일연군이나 팔로군과 108차례 전투를 벌여 172명을 살해하였으며, 수많은 민간인들을 상상하기 힘든 잔혹한 방법으로 살상 강간 약탈 고문했다.

만주국 중앙육군훈련처(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한 백씨는 1943년 4월 만주국 소위로 임관했으며, 곧 간도특설대에 배속된다. 일제가 패망할 때 만주국군 중위였는데 이는 판사 검사 군수와 동일한 고등관 7등의 고위직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백씨가 팔로군, 즉 공산주의자와 싸웠다고 강변을 한다. 그러나 간도특설대가 조선인으로 하여금 조선인을 제압한다는 의도 아래 조직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며 백 씨도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이를 인정하고 있다. 팔로군을 공격한 것도 당시 상황에서는 항일부대 나아가 연합군을 공격한 것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더욱이 민간인 동포들을 학살한 행위는 전쟁범죄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 백선엽 회고록 중에서 ⓒ민족문제연구소

"대한민국 정치사 오염시킨 정치 군인"

이렇게 사실관계가 명백함에도 군부의 원로나 보수층이 크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식민지의 청년으로서 일제강점기에 일본 육군사관학교나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정규 군사교육을 받고 일본군이나 만주군 장교로 임관한다는 것은 출세가 보장되는 길이었다. 일제강점기 전 기간을 통틀어 130명만이 이런 혜택을 누렸다. 일본 육사출신이 63명이고, 만주 군관학교 출신이 67명이다. 이들 중에서 독립운동 진영에 참여한 사람은 5명뿐이다.

이들은 소위로 임관하면 고등관 8등 대우를 받았고, 2~3년 후 중위로 진급하면 고등관 7등에 올랐다. 고등관은 기차를 타도 2등칸 이상을 탔으며, 고등관의 부인은 '옥상'이라 불렸다.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오염시킨 정치군인의 원조들이다.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나 행정과에 합격하면 시보생활을 몇 년 거친 다음에 고등관 7등의 군수나 판사에 임명됐다. 고등시험에 합격한 조선인이 400명쯤 됐으니 군수가 되는 것보다 장교가 되는 게 훨씬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해방 후 민족의 불행은 계속됐다. 일본 육사나 만주군관학교 출신 중에서 50명 이상이 '반공'의 기치를 든 덕분에 국군의 장군으로 변신했다. 심지어 신경군관학교 2기이며 만주국 중위 출신인 박정희 소장은 만주국 군맥을 동원해서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박정희 정권은 경상도의 외피를 쓴 만주 군인들의 정권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59년 2월까지 육군 참모총장은 일본군 장교 또는 만주국군 장교 출신들이 독차지했다. 이 자리는 일본군 대령 출신 이응준이 초대 참모총장을 맡은 이래 일본군 중령 출신 신태영, 일본군 소령 출신 채병덕, 만주국군 헌병 대위 출신 정일권, 일본군 소령 출신 이종찬, 만주국군 중위로 간도특설대 군관 출신 백선엽, 이응준의 사위이자 일본군 대위 출신 이형근, 다시 백선엽이 이어받았다. 이상 7명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랐다. 그 다음부터 1972년 10월유신으로 제3공화국이 끝날 때까지 육참총장 자리는 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현지 임관해서 일본군 장교로 복무한 자들이 독차지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사정이 이러하니 이들과 직간접으로 연을 맺고 있는 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백 씨의 역성을 들만도 하다. 게다가 색깔론이 선거에 유리하다는 판단까지 들고 보니 김 의원 화형식 같은 이성을 잃은 퍼포먼스까지 연출하고 있다.

이건 추론이지만 친일수구세력이 백씨에 대해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을 수 있겠다. 백 씨가 육본 정보국장 근무시절 남로당 프락치 사건으로 죽게 된 박정희를 구명하고, 정보국에 문관으로 근무하게 했으며, 정보비에서 월급을 챙겨준 적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 이래저래 챙겨야 할 까닭이 많아 보인다.

 /신명식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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