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경제민주화’를 위해 언론이 다뤄야할 것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0-29일자 기사 '‘경제민주화’를 위해  언론이 다뤄야할 것'을 퍼왔습니다
[손석춘 칼럼] 문제는 '경제 살리기'다

경제민주화. 우리 시대의 숙제다. 2012년 대선 정국에서 후보들 두루 동의한다.  톺아보면 경제민주화가 대선에서 처음 불거진 시점은 지금이 아니다. 옹근 5년 전인 2007년 10월29일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의 ‘불법 비자금’을 정면 제기했다. 사제단은 삼성이 임직원 명의로 차명계좌를 개설해 정치, 사법, 행정부는 물론 언론계를 대상으로 검은 돈을 뿌려왔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어떤가. 5년이 흐른 지금 정의구현사제단의 결곡한 호소가 어떻게 귀결되었는가를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위기에 몰렸던 삼성은 되레 탈법적 경영권 승계를 법적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사제단의 증언이 곰비임비 이어졌지만 2007년 대선판을 압도한 것은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경제 살리기였다. 그 한복판에 이명박 후보가 있었다. 경제 살리기를 내건 그의 선거전략 앞에 모든 의제는 무너져 내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에 걸쳐 부익부빈익빈이 해소되긴 커녕 비정규직이 되레 늘어나고 자살률이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그 빈틈을 정확하게 노렸다. 이명박이 내세운 ‘747’공약은 당시 박근혜의 ‘줄푸세’가 그렇듯이 대기업 중심이기 때문에 결코 서민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진실을 아무리 쓰고 말해도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사진 왼쪽부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정의구현사제단의 경제 민주화 요구가 흐지부지 되었듯이 이명박의 경제 살리기 또한 빛바랬다. 그의 ‘국민 성공시대’ 공약은 국민적 사기극임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바로 그래서다. 이명박과 같은 정당의 박근혜조차 ‘줄푸세 소신’을 ‘경제민주화’라는 세련된 화장으로 감추고 나섰다.
대선 후보들이 너도 나도 경제민주화를 부르대지만 어떤가. 국민 대다수는 시큰둥하다. 언론도 18대 대선에선 집중된 의제가 없다고 사뭇 개탄한다. 의제 설정이 본령인 언론이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지 못한 채 다른 곳에 책임을 돌리는 모습까지 굳이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왜 유권자들이 시들한가는 따져볼 일이다. 나는 작금의 ‘경제민주화’가 내용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박근혜조차 그것을 공약하면서, 더구나 법인세 인하는 반대하며 그 말을 부르대면서 ‘경제 민주화’는 시나브로 의미를 잃어왔다. 경제 민주화가 시대적 숙제임을 부정하자는 뜻이 결코 아니다. 경제 민주화가 ‘속빈 강정’으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물론, 후보들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와 한국방송·문화방송·서울방송이 주도하는 여론시장에서 유권자들이 경제 민주화의 ‘기호’로 후보들의 차별성을 정확히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상대 후보의 주장을 살천스레 ‘공산주의’로 몰아치는 박근혜 쪽 주장이 큼직하게 보도되는 살풍경을 보라.
그래서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전국을 돌고 있는 2012생명평화대행진의 선언에 공감한다. 수많은 공약들이 떠들썩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빼앗기며 고통 받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진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성 정치권의 추상적인 구호와 모호한 공약보다 구체적인 실천”이라는 제언은 생생한 울림을 준다. 생명평화대행진은 지난 5년 동안 현장에서 내내 민중과 더불어 지며리 싸워온 인권운동가 박래군이 앞장서고 있어 더 미덥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강정마을 주민들, 용산 철거민들의 앞 글자를 따 ‘하늘’(SKY)로 명명하고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자며 뚜벅뚜벅 걷고 있는 대행진은 제주에서 출발해 호남과 영남의 ‘지옥’같은 투쟁 현장들을 거쳐 경기도 평택까지 올라와 있다. 
여기서 대통령이 되겠다며 ‘경제민주화’를 내건 후보들은 물론, 의제 설정력을 독과점한 신문과 방송에 정중히 제안한다. 생명평화대행진을 모르쇠 하더라도 좋다. 다만 지금 ‘시대정신’으로까지 회자되는 경제 민주화의 고갱이가 다름아닌 ‘경제 살리기’임을, 지난 15년 내내 호황을 거듭해 온 대기업들과 부익부로 재산을 불려온 10%가 아닌 국민 대다수의 경제 살리기임을 유권자들이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장기 침체기로 들어선 세계 경제에서 국민 경제를 살리려면 지금 어떤 정책이 절박한가를 남은 선거기간만이라도 활발하게 공론화해야 옳다.
국정 과제를 또렷하게 정의하고 그 해법들을 공론장에 내놓아 유권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과 언론에게 주어진 의무다. 정당이 못한다면 언론이라도, 3대신문과 3대방송이 못한다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만이라도, 어떤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경제 살리기에 적실한가를, 지금 죽어가는 해고노동자·비정규직·농민·도시빈민· 2030세대의 경제를 살릴 수 있는가를, 날카롭게 의제설정하고 국민적 소통에 나서길 간곡히 촉구한다. 그것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선 언론 고유의 문제다.

손석춘·언론인·건국대 교수 |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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