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8일 일요일

비슷하고도 다른 경제민주화들


이글은 한겨레21 2012-10-29일자 제933호 기사 '비슷하고도 다른 경제민주화들'을 퍼왔습니다.
[줌인] 각 대선 캠프 정책 근거로 재구성한 박근혜·문재인·안철수의 경제민주화 가상 토론회… 재벌 지배구조 개선 해법에서 드러난 차이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헌법 119조 2항)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헌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새로 들어간 ‘경제민주화’ 조항이다. 시장경제 원칙을 지키면서도 경제적 부작용과 문제점을 막는 데 국가가 규제와 조정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거나, 골목상권 및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정책 등을 꼽을 수 있다.

골목상권 보호에는 한 목소리

주요 대선주자들이 모두 이러한 경제민주화 정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10월11일과 12, 14일 강도 높은 재벌 개혁 구상을 발표했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10월 안에 경제민주화 공약을 구체적으로 밝힐 계획이다. 세 후보가 얘기하는 경제민주화 내용을 따져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눈에 띈다. 골목상권 보호, 일감 몰아주기, 경제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등에 대해선 한목소리를 내지만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출자총액제한제, 계열분리명령제 등 재벌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해법은 차이가 난다. (한겨레21)은 세 후보 캠프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된 정책을 중심으로 각 후보의 경제민주화 구상을 가상 토론회 형식으로 재구성한다.

-경제민주화가 왜 필요한가.

박근혜 후보(이하 박): 국가는 발전했고 경제는 성장했다는데 국민의 행복은 커지지 않았다. 국정 운영의 기조를 국가에서 국민으로 바꿔야 한다. 특히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은 시대적 과제다.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개입하는 정부를 만들겠다.
문재인 후보(이하 문): 경제민주화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시대의 요구다. 재벌 등 강자는 승승장구하고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은 피폐화하는 현재의 경제구조로는 한국의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고, 국민경제 구성원 모두가 함께 지속적 성장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하겠다.
안철수 후보(이하 안): 국민소득은 올랐다는데 국민의 삶은 올라가지 않았다. 24시간 영업을 해도 가게 월세도 못 낸다고 하소연한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 방향을 바꿔야 한다. 풍요로운 삶이 국민에게 고루 나눠져야 한다. 그 방법이 경제민주화이며, 핵심 가치는 △기회의 균등 △과정의 공정 △약자의 보호로 요약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방법을 꼽는다면.

박: 경제민주화를 통해 소기업인을 비롯한 경제적 약자들의 꿈이 다시 샘솟게 하겠다. 그동안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공정성의 중요성을 간과했고, 그 결과 경제주체 간의 격차가 심화됐다. 새누리당은 이미 지난 4·11 총선 공약에서 하도급 부당 단가인하에 대해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등 공정한 경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로 약속했다. 대기업 총수 가족의 소유 회사로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를 뿌리뽑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고쳐 국내 기업 생태계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출자총액제한제를 보완해 재벌의 사익 남용을 막는 조처가 필요하다는 데도 동의한다. 하지만 출총제 부활이 아니라, 보완을 하거나 공정거래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검토해봐야 한다.

박근혜 “출총제 부활보단 공정거래법으로”

문: 공정한 시장 경쟁을 저해하는 재벌 총수 일가의 부당한 사익 추구 행위는 당연히 막아야 한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출발은 재벌에 넘어간 권력을 되찾는 것이어야 한다. 재벌의 왜곡된 소유지배구조는 소수의 지분으로 지배력을 유지하고, 편법적 방법으로 소유경영권을 승계하는 수단이 돼왔다. 재벌이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이유이자 조건이다. 이를 개혁하지 않고는 총수 일가의 황제적 경영과 경제력 집중의 폐해를 막을 수 없다. 구체적인 개혁 방안으로는 재벌의 순환출자를 금지해 소수의 지분으로 지배력을 유지하며 계열 기업을 확장하는 경영권을 편법적으로 승계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신규 순환출자는 즉시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는 3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자율적으로 해소하겠다.
안: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문제가 재벌이라는 데 동의한다. 재벌은 기업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기업을 지배하는 총수, 일가족을 말한다. 재벌 총수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편법적으로 부를 물려주고, 적은 돈으로 거대 그룹을 좌지우지하고 있어서다. 가장 강하고 많이 가진 이들이 가장 불공정한 일을 벌이는 곳, 이곳을 먼저 뚫어야 경제민주화가 시작된다. 대통령 직속 재벌개혁위원회를 설치해 1단계, 2단계로 나눠 재벌 개혁을 단행하겠다. 1단계 재벌 개혁 조처를 통해 재벌이 골목상권의 보호, 비정규직 문제 해결, 하청기업과의 선순환 구조 구축, 일자리 창출 등 우리 사회의 바람에 부응하길 희망한다. 이에 재벌이 동행하지 못할 경우 2단계로 계열분리명령제 등 더 강력한 구조 개혁 조처를 검토하겠다.

»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홈플러스 합정점이 들어서는 걸 반대하는 망원동시장 상인들이 홈플러스 입점 반대 구호가 적힌 펼침막을 걸어놓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 한겨레21 933호 대선 후보별 경제민주화 정책 비교

-새로운 법, 규제가 생겨도 재벌이 제대로 처벌받는 경우는 없었다.

박: 기업 총수가 법원에서 판결을 받았는데 얼마 있으면 또 뒤집히는 사면·복권은 법치를 바로잡는 데 굉장한 악영향을 준다. 이건 선진국으로 가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
문: 누구라도 특권과 반칙이 더 이상 허용돼서는 안 된다. 기업 범죄에 대한 사면을 제한하도록 하겠다. 또 처벌을 강화해 집행유예를 제한하겠다. 이사의 자격 요건을 강화해 재벌 총수와 그 일가라도 유죄판결을 받으면 그룹 경영에서 일정 기간 배제되도록 하겠다.
안: 재벌 총수의 편법 상속·증여 등 불법행위를 철저히 방지하겠다. 총수 및 임직원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엄정히 법을 집행해 법앞의 평등을 실현하겠다. 특히 재벌 총수가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벌금만 내고 면죄부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재계는 경제민주화 정책이 경제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박: 경제성장률에만 치중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고용률을 높이는 경제 운영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을 이끌어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창조경제론’을 제시한다.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기술에 기반한 경제 운영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정책이다. 이로써 한국 경제의 체질은 다른 나라를 따라가는 추격형 경제에서 다른 나라를 앞서가는 선도형 경제로 바뀔 것이다.

문재인 “경제민주화, 성장과 일자리 만들 것”

문: 경제민주화가 성장과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복지는 비용이 들지만 일자리, 성장을 만들 수 있다. 성장, 일자리, 복지, 경제민주화는 경제가 굴러가려면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네 개의 바퀴다(‘4두마차 경제’). 한국 경제의 성장 전략으로도 4가지를 내놓았다. 우선 포용적 성장은 경제민주화와 중소기업 정책으로 집약된다. 창조산업과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창조적 성장과 생태적 성장의 기반이다. 협력적 성장은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남북 경제연합을 통해 일구려 한다.
안: 재벌 개혁은 기업 활동을 막으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막힌 곳을 뚫고 기업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경제의 기득권을 걷어내고, 질식된 경제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메마른 땅에 혁신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한 바퀴를, 혁신경제가 다른 한 바퀴를 이루고 이를 일자리 창출이라는 체인으로 연결하는 ‘두 바퀴 경제’가 선순환을 이끌 것이다. 모든 경제주체의 자원을 새롭게 융합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며 그 과실을 공정하게 나누는 거다.

-일자리 창출 방안은.

박: 창업 기업들이 죽음의 계곡을 넘을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단계별 창업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겠다. 성실 실패를 성공으로 인정하는 문화와 제도를 정착시켜 패자부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겠다. 또 지금의 붕어빵 같은 스펙 기반 채용 시스템은 상상력과 창의력, 잠재력과 열정을 기준으로 채용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이 합동으로 스펙초월 청년취업센터를 설치하고 열정과 잠재력만으로 청년들을 선발한 다음 실습 위주의 맞춤형 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하겠다.
문: ‘사람이 먼저인 나라’에서는 일자리는 권리다. 새로 늘어나는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여야 하고, 기존의 나쁜 일자리들은 좋은 일자리로 바뀌어야 한다. 일자리는 개인에게도 중요하지만 우리 경제의 건전한 성장과 발전에도 중요하다. 내수시장의 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늘어나면 소비가 늘어나고, 확대되는 내수는 특히 중소 상공인의 매출을 올리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왜 재벌에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투자라 하고 일자리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비용이라 하는가?

안철수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돼야”

안: 재벌 개혁은 시작일 뿐이다. 그 과정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 우선 중견기업을 육성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 중견기업육성법을 제정해 중소기업의 세제 혜택을 일정 기간(5년) 연장하고, 중소기업 전용 연구·개발(R&D) 센터를 공공재원으로 건립할 것이다. 일하는 사람이 잘살고 그 가족들이 좋은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또 중소기업 성장 사다리를 복원해 혁신경제로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 생각이다.

박근혜 캠프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재벌개혁, 이런 구차한 표현이 필요한가”

» 김종인 박근혜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 대한발전전략연구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암탉이 마당에서 여기저기 다니며 아무거나 먹어치운다고 목을 비틀면 어떻게 되나. 알도 못 낳고 나눠먹을 게 없어진다. 비유를 들면 일정한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모이를 먹게 하려는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캠프의 김종인(72)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지난 7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를 이렇게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방편으로 재벌개혁을 앞세우지 않는다. “탐욕을 절제하기 위해 경제 운영의 틀을 새롭게 바꾸고 공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자는 게 경제민주화다. 그 틀을 정하면 재벌이든 누구든 전부 다 적응할 수밖에 없다. 구차하게 재벌개혁, 이런 표현이 필요한가.”(10월16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김 위원장은 1987년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든 주역이다. 모델은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였다. “독일은 기업 경영에서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노사 공동 결정체’를 한다. 사회 안정에 도움이 되면서 경제 효율에도 지장이 없다.”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마친 김 위원장은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0년대부터 정·관계 요직을 거쳤다. 박정희 정권에서 의료보험제를 도입하고 노태우 정권에서 보건사회부 장관을 거쳐 1990년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이때 투기 붐으로 부동산 가격이 치솟자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재벌 규제로 꼽히는 5·8 조처(대기업 비업무용 토지의 강제 매각)를 이끌었고,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주도했다. 11·12·14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정당과 민자당에서 각각 지역구 의원을 했고 17대 들어서는 민주당 비례대표로 활동했다. 그 덕분에 정파를 넘나들며 유력 대선주자의 조언자로 불렸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선택한 이유를 “한번 약속한 것은 꼭 실천하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세’우자)와 경제민주화는 실질적으로 같을 수 없다. 박근혜 후보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 새누리당의 정강정책도 바꿨고, 대선 공약으로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밝혔다. 제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캠프의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
“국가·시장 독재 동시 극복이 경제민주화”

» 토지 자유 연구소 창립식 및 정책 토론회.이정우교수 한겨레21 류우종 071105

“양극화가 너무 심하다. 벼랑에 선 사람을 돕는 복지국가가 필요하고, 경제적 약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다. 경제적 약자인 채무자·영세상인·중소기업 등이 참여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캠프의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경북대 경제학 교수)은 지난 10월17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진보개혁 성향 학자로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 교수는 재벌 외부 개혁을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밝혔다. “고래가 시냇물까지 와서 물을 다 마셔버리는 형국인데 송사리나 피라미는 어떻게 살겠느냐? 고용의 9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여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착수해야 한다.” 재벌 외부 개혁이란 골목상권 보호, 일감 몰아주기 등을, 내부 개혁이란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 등 소유 지배구조 개선을 말한다.
“한국 경제는 박정희 모델로 상징되는 오랜 관치경제의 악습과,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받아들였던 시장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자는 국가 독재 모델이고, 후자는 시장 독재 모델이다. 그 독재를 극복하는 게 경제민주화고, 북유럽과 네덜란드 등이 그 대안이다.” 스웨덴 등 유럽식 노사관계 모델이 국가경쟁력을 높인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정우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재벌개혁 노선을 견지하다가 이헌재 경제부총리로 대변되는 재경부 모피아 세력에게 패배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그는 재벌과 관료의 함정 탓이라고 평했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 문 후보를 다시 선택했다. 그 이유는 이렇단다. “시장만능주의 전성기로, 재벌개혁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어려운 분위기였다. 고위 관료들은 퇴직 뒤 낙하산 등 이권이 눈앞에 있어 개혁성이 떨어진다. 제약 조건이다. 두 번 실패하지 않는다. 결국 최종 수단은 사회적 대타협이다. 재벌과 노조, 많은 시민단체들이 모여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

안철수 캠프의 장하성 교수(경제총괄역)
“재벌에 변화 기회 준 뒤 정부 개입”

»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KCGF)를 주도하고 있는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

“재벌이 자발적으로 변화를 할 기회를 주고 그 진행 상황에 따라 정부가 개입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무서운 거다. 칼을 빼면 이제는 칼을 쥔 사람이 더 어려운 입장에 선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 캠프의 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제총괄역)는 10월18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한국 경제의 기존 틀을 깨는 게 경제민주화이지만, 그 변화는 재벌개혁위원회를 통해 재벌 스스로 일궈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중간금융지주회사를 허용하거나 계열분리명령제를 금융 부문에만 우선 도입하는 단계적 정책을 펼치는 이유다.
이런 처방은 장 교수가 2000년대 초·중반에 이끌었던 소액주주운동과 일맥상통한다. 한국 재벌이 1∼5%의 지분으로 전체 그룹 계열사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에 착안해 장 교수는 ‘장하성 펀드’를 조성했다. 재벌이 계열사의 수익금을 다른 계열에 편법 지원해 기존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 과정에 개입해, 장 교수가 소액주주로 참여한 제일모직에 손해를 끼쳤다며 민사소송을 내 지난 9월에는 130억원을 배상받기도 했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장 교수의 사촌동생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소액주주운동이 실제로는 글로벌 자본을 위해 국내 산업을 먹잇감으로 내주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해왔다. 장하준 교수는 재벌과 사회적 타협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하성 교수의 반박은 이렇다.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나 남미 등 저개발국에 유효하다. 재벌이 경제적 영향만이 아니라 언론·사법계·문화계 등까지 다 장악한 한국의 구조에서는 적절한 내용이 아니다.”
장하성 교수는 안철수 후보를 선택한 이유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기존 틀 안에서, 기존 것들을 조합해 한국 사회에서 변화의 변곡점을 만들려 했지만 실패한 만큼 이제는 새로운 틀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운 어젠다를 맡기는 게 옳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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