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누가 지금 그들의 단일화를 말하나?


이글은 미디어스 2012-10-31일자 기사 '누가 지금 그들의 단일화를 말하나?'를 퍼왔습니다.
[대선보도, 비평으로 뚫다]기이하고 흥미로운 조중동의 단일화 '압박'

바로 지금 문과 안의 단일화를 압박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 인터넷에 ‘단일화 압박’이라 치고 오늘 기사를 검색을 해 보자. 그러면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떠오를 것이다. ‘문측, 안에 단일화 공개압박 총력전.’ ‘문재인, “안철수 단일화 이야기만 하면 압박이라고….”’ 두 개 모두 10월 30일에 나온 것들이다. 와 의 기사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측이 30일 후보 단일화와 관련,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에 대한 공개 압박에 나섰다.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협상의 물꼬를 트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안 후보 측을 자극하지 않는 데 주력해왔던 기조에서 `정공법' 쪽으로 궤도를 수정한 것이다.”
안에 대한 문의 압박 공세를 는 그렇게 전하고 있다. 의 기사를 보자. 문 후보가 안 후보에게 던진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단일화 얘기만 하면 '압박'이라고 하니 논의 자체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좀 신경질적이지만, 여전히 발화의 주체는 문이다. 
"어느 시기부터 어떤 방안을 다뤄야 할지 이제는 좀 터놓고 얘기할 때 되지 않았느냐"는 문재인의 푸념 섞인 물음을 옮긴다. 같은 날 KBS 뉴스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단일화 방법 시기 터놓고 이야기 얘기할 때”’라는 제목의 뉴스를 날린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에 대해 방법과 시기를 터놓고 얘기할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말한다. 조국 교수와의 소위 ‘정치혁신 대담회’에서 “그동안 단일화 이야기를 하면 단일화 압박이나 주도권 잡기라고 비쳐져 논의를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얘기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통해 힘을 합쳐 대선에 임해야만 정권교체를 할 수 있고, 정권교체 이후 여소야대 국면에서 근본적인 개혁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문재인 후보의 말을 옮긴다. 그 자체로 보면 모두가 정확한 사실을 전하는 뉴스이고, 공정성이나 객관성 측면에서 별로 문제가 없는 보도다. 

▲ 10월 30일자 KBS 뉴스9 화면 캡쳐.

말 그대로 팩트를 옮기고 있다. 나는 이러한 기사를 문제 삼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문이 안을 압박하고 있는 게 맞다. 그렇게 압박하는 문 후보와 그에 대해 안 후보측이 내놓은 말을 기사로 옮기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기자의 책무다.
이 글에서 본인이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뉴스에 검색될 수 있는 ‘단일화 압박’이 아니다. 문의 말, 그의 말을 옮기는 기사가 아니다. 이와 별도로 문과 안의 단일화를 압박하는, 전혀 별개의 목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요지다. 인터넷에 ‘단일화 압박’이라 치면 전혀 검색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현실정치의 자장 속에서 문과 안의 단일화를 압박하는 특정하고 노골적인 음성이다. 문 후보의 입과 입장을 옮기는 간접 보도의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훨씬 직접적인 통로로 두 사람이 당장 합쳐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그런데도 뉴스에서는 검색되지 않는, 희한한 ‘단일화 압박’의 숨겨진 발화다. 
문 후보 외에, 그리고 그의 발언을 옮기는 신문과 방송 외에, 대체 지금 누가 문과 안의 단일화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인가?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촛불 네티즌들? 인터넷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이른바 ‘시민사회 원로들’? 그들이 앉기 좋아하는 원탁 테이블 앞에서는 그런 말을 꺼냈을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연장에 반대하는 비판적 학자와 양심적 문화예술인? 기자회견장이나 선언문에서 그렇게 주장했을 수도 있다.
아니다. 이들(만)이 아니다. 목소리는 그와 반대의 쪽에서 나온다. 훨씬 파워풀한 목소리로,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성하고 동원하면서, 매일 같이 지면을 통하고 사설을 동원해서 일제히 ‘단일화!’를 외치는 세력이 있다. 검색 망 바깥에 존재하면서도, 계속해서 두 사람의 단일화를 요구한다. ‘단일화’의 제조된 여론을 갖고 두 사람에게 압박한다. 다름 아닌 조·중·동 연합이다. 현재로서는 안 문의 단일화를 외치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정치적 목소리다.

▲ 10월 30일자 중앙일보 '이철호의 시시각각' 지면 캡쳐.

같은 날자 ‘이철호의 시시각각’을 한번 읽어보자. ‘아, 그리운 허 본좌!’라는 제목이 돋보인다. 신랄하다. 조롱과 냉소, 허무의 정치 희화다. “마치 단일화가 전부인 양 18대 대선판이 쪼그라들었다. 세 후보 모두 토론회를 무서워하는 겁쟁이들이다. 자꾸 샅바싸움만 하고 외곽을 빙빙 도니, 유권자는 하품만 난”단다. 허 본좌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대인배’였다. 시시하게 대선판을 쪼그라트린 소인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문·안도 하루빨리 단일화를 결판냈으면 한다.” 토론회를 빨리해야 하고, 그래서 유권자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다해야 한다. 지체 말고 단일화 하라는 요구를 그렇게 슬쩍 에둘러 한다.
이렇듯 노골적으로 혹은 은근하게, 점잖게 아니면 비꼬듯이, 문과 안의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우리는 오랫동안 조중동에서 들을 수 있었다. 최근 들어 거세진 안을 향한 문의 단일화 요청보다 훨씬 오래된 안과 문의 단일화 요구. 그러지 않을 거면 끝까지 따로 가라!
이제 현명한 독자는, 그리고 선거에 관심이 많은 시민은 고개를 갸우뚱 하지 않을 수 없다. 의문이 잇따른다. 왜 이들 신문은 두 사람이 끝까지 따로 가는 게 좋고 그러하지 않을 거면 지금 바로 단일화를 하라 요구하는가? 어떤 정치적 계산에서 그러하며, 이들의 담론은 과연 누구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조응하고 있는가? 어떤 진영의 정략적 판단을 대의하나? 조중동 연합이 꿈꾸는 게 보수/신자유 정권의 재창출이라고 할 때, 그런 매체가 일제히 부르짖는 ‘지금 당장, 단일화!’ 아니면 ‘끝까지, 따로 갈 것!’이라는 양자선택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며 누구를 위한 요구인 것인가?
또한 이렇듯 조중동이 단일화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문 후보까지 가세해 안 후보측에게 단일화를 촉구하는 형국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조중동이 집요하게 단일화를 재촉하고 마침내 문까지 나서 안에게 단일화를 압박하는 지금의 상황은, 많은 것을 떠나, 분명 기이하고 매우 흥미로운 것임에 틀림없다.     

전규찬 /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  mediaus@mediaus.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