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8일 일요일

PD수첩 말살 스케줄… ‘재야작가’란 이름의 대체인력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0-27일자 기사 'PD수첩 말살 스케줄… ‘재야작가’란 이름의 대체인력'을 퍼왔습니다.
[미디어현장] 정재홍 전 MBC PD수첩 작가

새벽부터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가을비답지 않게 거센 빗발이 텐트의 바람막이 벽을 사정없이 들이쳤다. 텐트 안은 금방 질퍽질퍽한 물바다가 되었다. 그 차고 축축한 보도블록 위에 스티로폼을 깔고 (PD수첩) 해고작가 6명이 앉아있다. 가을비는 오전 내내 쏟아지는데 작가들은 다들 말이 없다. 나는, 그리고 동료 작가들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 무엇이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하여금 자신이 몸담았던 방송국 앞에 텐트를 치고 농성까지 하게 만들었을까? 

7월 25일. MBC경영진은 (PD수첩) 작가 전원을 통보 한마디 없이 교체했다. 이유를 묻자 ‘분위기 쇄신차원’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얘기한 ‘분위기 쇄신’에는 두 가지 경고가 담겨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권력에 비판적인 글을 쓰는 작가는 더 이상 MBC에서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둘째, MBC경영진의 말을 듣지 않는 작가는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그 동안 탐사보도프로그램 본연의 비판정신에 입각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 온 작가들을 내침으로써 (PD수첩)을 무력화하려는 의도였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MBC 경영진의 무지막지한 탄압에 맞서 지극히 방송작가다운 방법으로 저항하고자 했다. 신문과 인터넷 매체에 글을 쓰고 토크콘서트 ‘응답하라 PD수첩!’을 개최한 것이 그것이다. ‘응답하라 PD수첩!’ 행사에는 안철수 후보 본인과 문재인 후보의 대리인 도종환 의원, 한명숙 전 총리, 정연주 전 KBS사장, 성석제·공지영 등 문인,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최강욱 MBC 방문진 이사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참석해 (PD수첩) 작가 해고가 부당하며 즉각 복직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응답하라 PD수첩!’ 행사를 한 바로 다음날. MBC 경영진은 마침내 우리의 외침에 응답했다. (PD수첩)의 새로운 작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낸 것이다. 지난 10일 서류전형, 22일 면접, 24일 합격자 발표라는 일정이 제시됐다. (PD수첩) 대체작가 모집 공고는 2500명 방송작가들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조치였다.

한국방송작가협회는 MBC경영진에게 대체작가를 모집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한편, 대체작가에 응모하는 작가는 회원자격을 박탈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922명의 시사교양작가들이 (PD수첩) 대체작가를 거부하는 서명까지 한 터였다. 922명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시사교양작가 대부분을 망라한 숫자인데, 양심에 입각해 진실을 기록하는 작가로서 동료 작가들이 피를 흘리고 쫓겨난 언론탄압의 현장에 들어가 영혼을 파는 부역작가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럼에도 MBC경영진은 대체작가 공모를 시작했고, 우리는 최후의 수단으로 ‘끝장캠프’를 치고 24시간 농성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PD수첩) 대체작가 공모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지난 16일, (PD수첩)의 배연규 팀장은 PD들에게 ‘지원자 중 심사를 통해 4명의 작가를 선발할 예정이다’라고 통보했다. 그러면서 PD들을 한명 씩 불러 대체작가와 함께 PD수첩을 제작할 것인지 답변을 요구했다. 만약 대체작가와 제작을 거부할 경우 PD수첩에서 제외시키겠다는 엄포도 덧붙였다.

PD들은 반발했다. 그동안 PD들은 작가해고가 부당하다고 지적하며 경영진이 작가협회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해왔다. 그런데 경영진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대체작가를 뽑은 후 PD들에게 일을 할 거냐 말 거냐 양자택일 하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PD들은 서류심사를 통과한 대체작가가 대체 어떤 작가들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PD수첩) 배연규 팀장은 대체작가의 신원은 공개할 수 없고 다만 ‘재야작가’라고만 언급했다고 한다.

대체 재야작가란 어떤 작가를 말하는 것일까?

PD들은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될 ‘재야작가’의 자질을 검증하기 위해 PD들의 의견이 100% 수용되는 것을 조건으로 2차 면접에 참여하겠다고 요청했다. 

(PD수첩)은 방송을 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비중있는 프로그램이다. 탐사보도의 전문성과 열정을 갖춘 작가와 일을 해도 숱한 소송이 제기되는 마당에, 정체도 모호한 ‘재야작가’를 믿고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정재홍 전 MBC PD수첩 작가

지난 19일 배연규 팀장은 PD들에게 메일을 발송했다. PD들의 면접 참여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대체작가 면접이 예정되었던 22일, 배연규 팀장은 (PD수첩) 소속 PD들을 불러 어느 팀으로 가고 싶은지 뜻을 물었다고 한다. PD수첩 작가를 전원 해고한 데 이어, 마지막까지 PD수첩의 명맥을 유지해온 PD들마저 내쫓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마침내 (PD수첩) 무력화에 이어 말살이 임박했다. 그들의 스케줄대로라면 2012년 10월 24일, (PD수첩)에는 이른바 ‘재야작가’라는 이름의 대체작가가 선발된다. 그리고 그 동안 PD수첩을 제작해 온 PD들이 축출되고 그 자리에 경영진의 입맛에 맞는 어느 PD가 투입될 것이다. 그리하여 11월부터는 비판정신이 거세된 그들만의 (PD수첩)이 방송될 것이다.

정재홍 전 MBC 작가 |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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