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스승의 날, 선물이 내 월급의 10배!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10-25일자 기사 '스승의 날, 선물이 내 월급의 10배!'를 퍼왔습니다.
학원별곡 - 학원 강사 10년의 비망록 ⑩

초등학생은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부모님께서 선물을 주신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모님은 자녀가 수학여행을 가거나 캠프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신다. 자녀가 집에 없는 동안 부모님은 오랜만에 편안하게 신혼부부 때의 기분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사들은 스승의 날이 되면 약간 들뜬다. 그래도 1년 중 우리 처지에서 나름대로 기념할 수 있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스승의 날이 되면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선물을 준다. 물론 이것도 스승의 날 직전에 종료되는 1학기 중간시험에서 학부모가 기대하는 정도의 성적대가 나와 줘야 가능한 일이다.
2003년 봄이다. 첫 중간시험은 어렵지 않게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어 스승의 날이 되었다. 학생들이 나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마저 아직은 어색했다. 따라서 나는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들뜰 필요는 없었다. 아직 인격적으로 미숙하기만 한 나를 스승이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단순히 교과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일 뿐,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더 오랜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아마 환갑을 넘기고도 스승이라는 말에 얼굴을 붉힐지 모를 일이었다.

스승의 날 들뜨는 강사들, 그리고 들이닥친 학부모들

그럼에도, 스승의 날은 왠지 기분이 좋았다. 학생들이 먼저 들뜨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수업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심도 있는(?) 토의들이 학원 이곳저곳에서 벌어졌다. 어떤 학생은 학원에 있는 강사들에게 편지를 써서 전달하기도 했다.
저녁이 되어가자 난데없이 학부모 몇몇이 학원에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26살, 아직 미혼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하여, 나는 많은 반의 담임을 맡고 있었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던 반은 초등 4학년 경시반, 초등 5학년 경시반, 초등 6학년 D반, 중등 1학년 A반, 중등 2학년 A반, 중등 3학년 D반, 고등 1학년 문과반, 고등 2학년 문과반, 고등 3학년 예체능계 반이었다. 학원에서 담임은 크게 세 가지 역할을 한다.
종합 학원에서 담임을 맡은 강사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담임 반에 소속된 학생들의 부모와 전화 상담을 해야 했다. 이 상담의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학습계획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또한, 각 담임은 자신이 맡은 반 학생들의 출결에 대한 사항을 관리해야 했다. 두 번째 역할은 탈원(학생이 학원을 그만두는 것)이 예상되는 학생이 생기면 탈원을 유보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으며, 마지막으로 담임 반에 학생 수가 증가할 수 있도록 나름으로 수단을 취해야 했다. 이 사항들을 현재에도 많은 학원에서 통용되고 있다.

선물 포장 뜯어보니, 현금과 명품이!

담임 반이 8개나 되다 보니, 나를 만나보기 위해 학원에 방문하는 학부모도 많았다. 그날 처음으로 방문하신 한 학부모는 지역에서 가장 큰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다음으로, 하는 말은 모든 부모님이든 모두 똑같았다. "진작 찾아뵙고 이런저런 말씀으로 드리고 했어야 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딸은 선천적으로 정신장애가 있어 학업성적에 대해 본인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밝게 성장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도 그 말씀에는 동의했다. 그러면서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나에게 흰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나는 그 봉투 안에 편지가 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에는 참 순진했다.
또 다른 어머님과 상담을 했다. 어머님은 자신이 학원 인근 S 중학교 수학 교사라고 했다. 학생의 성적 등에 대한 사항은 전화 상담과 성적표 발송을 통해 모두 알고 있었으므로, 학원 측에서 제시하는 학습 방법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 참 구체적인 것을 좋아하는 분이셨다. 어머님께서는 빈손으로 오기 어색해서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했다고 하시며 예쁘게 포장된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난 정말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어머니가 오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모든 부모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강사들은 어머님들의 선물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학원은 공교육 기관, 다시 말해 의무교육 기관이 아니므로 전적으로 민법상 계약관계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언가 강사에게 준다는 것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있다는 간접증거라며, 최선임자급 강사들은 선물을 절대 받지 않았다.
나를 찾아온 어머님은 16명이었다. 모두 가정 형편이 좋은 분들이었다. 생각해보니, 이들은 모두 작은 선물이라며, 조그만 정성이라며 무언가를 나에게 건넸다. 혼자 교무실에 앉아 선물을 뜯어봤다. 봉투 안에는 수표가 몇 장 들어 있었고, 작은 상자 안에는 정장차림에 사용하는 소맷동 버튼(커프스 버튼)과 넥타이핀 세트가 들어 있었는데, 품질보증서가 함께 있는 것을 봐서는 명품인 것 같았다. 이날 내가 편지라고 감사의 편지가 들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봉투들에서는 총 700만 원의 수표가 나왔고, 작은 선물이라고 내민 상자들에서는 총 300만 원 정도 가격의 물건들이 나왔다. 이들을 모두 합하면 1,000만 원 정도가 되었다. 당시 나의 기본급이 80만 원이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이런 선물 제공은 줄어들어, 최근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국가적 경제상황도 안 좋아졌으니 일단 선물이 줄어드는가보다. 좋은 현상이다.

우리에게 감동을 준 선물은 학생들의 정성어린 편지

▲ 강사들에게 최고의 스승의 날 선물은 학생들의 마음이 담긴 한 통의 편지다. (사진 출처 : 원주 해피스쿨어린이집 카페 http://cafe.daum.net/happySchool)

그날 나의 충격적인 경험에도 학원 안에서 학생들이 주는 선물은 종일 우리 강사들을 기분 좋게 했다. 학생들이 가장 선호했던 선물 품목은 바로 편지였다. 구구절절이 써 내려간 학생의 편지를 읽으면 웃음도 나오고, 때로는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는 강사도 있었다. 학생들은 강의를 시작하기 전, 오늘은 수업하지 말자며 귀여운 반항을 했다. 이날 부원장급 관리자가 아닌 일반 강사들은 대부분 수업을 하지 않고, 학생들과 좋은 시간을 만들었다. 인근 피자배달용 오토바이가 온종일 도로를 누볐다.
하지만, 강사세계에서 최고의 선물은 바로 졸업한 제자들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1년 차 강사였으므로, 올 제자는 없었다. 학원장의 제자들 몇 명이 왔다. 학원장은 상당히 자랑스러워했다. 모두 현재 포항공과대학(포스텍)과 서울대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나도 저렇게 제자들이 졸업하고도 잊지 않고 찾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선물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10만 원짜리 수표들과 명품 넥타이핀과 소맷동 버튼, 강사들이 애용하던 빈폴 셔츠, 명품 구두상품권, 10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 등……. 순간 행복했다. 내 월급의 10배가 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받을 수 없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야학을 통해 처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짐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가난하고, 못 배우고, 그래서 무시당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위해 강의하자는 다짐이 떠올랐다. 이런 선물을 할 수 없어 스승의 날에 학원으로 전화조차 하기 어려워하는 절대다수의 학부모가 생각났다. 그런 부모들 안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도 계셨다.

촌지를 모아 장학회를 신설하다.

나는 그것들을 모두 현금화했다. 그리고 학원 내에 장학회를 신설했다. 나는 매달 집안이 어려운 학생 2명에게 비밀리에 수강료를 냈다. 당시엔 이것이 사회정의라고 생각했다. 가진 자의 부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은 독점으로 점철된 한국의 천민적인 자본주의가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는 유의미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에게 불필요한 자원을 당장 필요한 이들과 나눌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을 부모들에게 되돌려주지 않았던 이유는 적어도 그들에게 이 선물들은 큰 가치가 있는 물건들이 아니었고, 특히 이 선물을 내가 사용하든,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든, 부모들에게 돌려주든 어차피 학원이라는 공간에서 강의하며, 전력을 기울일 것이었기 때문에, 이 거액의 선물을 받는다고 해도 사용처만 양심적이라면 다른 학생들에게 차별적인 행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세상 물정 모르던 때의 일이다.
이후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적지 않은 선물이 들어왔다. 5년 차 이상부터는 당시 선배 강사들이 그랬듯이 나도 학부모들의 선물을 정중히 거절했다. 학원에서 학생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처는 성적의 하락이 아니라, 인간 차별이라는 것은 학원 생활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선물 대신 미리 공지하여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대강당으로 입시설명회를 하거나, 부모님께 필요한 내용에 대한 특강을 했다. 5월이므로 사업자인 부모님을 위해 종합소득세 신고에 관련한 강좌를 열기도 했다. 이 지면을 통해 당시 어수룩한 나의 부탁에 무료로 강의와 상담을 해 주신 대신증권 과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제 스승의 날, 과도한 선물을 강사에게 주는 행태는 거의 없어졌다. 다행이다. 학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주요한 동력은 강의력을 바탕에 둔 자기관리능력이다. 경쟁이 치열한 세계이기에 입방아에 오르면 바로 퇴출이다.
정말 자녀를 사랑한다면, 가르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에게 더욱 나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면 자녀의 손으로 정성껏 편지를 쓰게 하자. 가르치는 이들은 이 편지에 감동한다.

이경직 기자  |  mp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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