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아버지 시대’ 앞에 서면 왜 박근혜는 작아지는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0-22일자 기사 '‘아버지 시대’ 앞에 서면 왜 박근혜는 작아지는가'를 퍼왔습니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새누리당사에서 정수장학회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기자회견 후폭풍 자질논란 재점화
 부일장학회 강탈 사실 부인
법원 판결까지 무시한 발언
과거사 사과 진정성 의문 키워선대위 ‘해법’ 건의했지만 묵살
회견내용 비서 4인방과만 논의
“비슷한 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21일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은 그가 안고 있는 ‘박근혜 문제’의 본질을 보여준다. 기자회견 직후, 당 안팎에선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박 후보가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 잘못된 역사인식 여전 먼저, 국가공동체를 이끌 정치 지도자로서 공동체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박 후보의 회견 기조는 고 김지태씨가 설립한 부일장학회를 정부에서 강압적으로 빼앗은 것이 아니라, 5·16 군사쿠데타 이후 부정부패 혐의로 구속된 김씨가 구명을 위해 스스로 헌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당시 정부가 잘못한 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조사 결론뿐 아니라 1심 재판부도 지난해 “김씨가 국가의 강압에 의해 5·16장학회에 주식을 증여하겠다고 의사표시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고위관계자는 “과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미래로 가자’고만 하면 설득력이 있겠느냐”며 “박 후보의 역사인식과 판단력에 국민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박 후보의 이런 그릇된 역사인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정계에 들어온 이후 최근까지도 5·16과 유신 등에 대해 줄곧 “구국의 결단”,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해왔으며, 사법살인으로 비판받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서도 “두 개의 판결이 있다”며 국가범죄란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다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자, “5·16과 유신, 인혁당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처음으로 사과했다.하지만 이번 기자회견으로 박 후보의 과거사 사과가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 말바꾸기 아니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새누리당 재선의원은 “지도자라면, 아버지와 자신의 잘못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박 후보는 박정희 시절 문제만 나오면 무조건 방어적으로 임한다”며 “아버지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생각이 강한 탓인지, 자신에 대한 객관화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 공적인 의사결정 구조 부재 또한 이번 정수장학회 기자회견 과정을 통해 박 후보의 의사결정 구조가 공적 시스템을 외면한 채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 또다시 드러났다. 새누리당 선대위는 내부 논의를 거쳐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해법은 박 후보에게 전달됐지만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박 후보가 “나한테 맡겨달라”고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선대위가 박 후보에게 올린 건의안에는 최필립 이사장 등 이사들의 전원 사퇴와 재단 명칭 변경, 장학회의 공익성 강화 등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내용들이 다 들어 있었다”며 “박 후보가 저렇게 발표하니 말릴 방법이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주요 정책이나 정치적 사안에 대한 입장이 당의 공식적인 회의 등에서 결정되지 않고 박 후보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다. 박 후보를 잘 아는 한 초선의원은 “후보와 선대위 관계자들이 모여 토론을 하면 많은 문제들이 사전에 걸러질 텐데 후보가 토론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비슷한 사례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세연 의원도 “박 후보가 의사결정을 할 때 당 공식기구를 통하지 않고 있다”며 “앞으론 당 공식기구의 결정이 후보 입을 통해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비서 4인방에 의존한 비선정치 이재만, 이춘상, 정호성, 안봉근 등 ‘비서 4인방’이 박 후보를 둘러싼 비선정치의 실상도 다시 불거졌다. 새누리당 당직자는 “박 후보는 국회의원 등 다른 사람은 모두 자기 정치하느라 믿을 수 없는 사람이고, 4인방만이 자신을 위해 헌신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 이들과만 상의한다”며 “이러다 보니 소통이 안 되고 문고리 권력이 정치를 흔드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이번에도 기자회견 직전까지 비서실 4인방을 제외하고는 선대본부장, 상황실장, 대변인 등 선대위 지도부 어느 누구도 회견 방향이나 내용을 몰랐다. 회견 뒤 선대위 관계자가 ‘왜 박 후보가 법원 판결을 잘못 말하게 했느냐’고 비서실에 항의하자, 한 보좌관은 “법원 판결이 그렇지 않느냐”며 박 후보와 똑같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당내에서는 문고리 권력 퇴진론이 다시 강하게 나오고 있다. 정우택 최고위원은 “공식라인이 아니라 비서 4인방이 했다면 두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선대위 핵심관계자도 “문고리 권력들이 기초적인 사실조차 틀리게 전달해 사태가 악화됐다”며 “후보와의 소통을 막고 있는 측근들이 물러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지난번 당 쇄신 파동 때 최경환 비서실장이 사퇴하고, 이한구 원내대표가 2선으로 물러났지만 당내의 온갖 요구에도 박 후보는 비서 4인방에 대해선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런 당내 요구를 ‘권력투쟁’이라고 규정한 바 있는 박 후보가 결국 비서 4인방을 물리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많다.

김종철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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