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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사설] 누가 누구를 ‘친일파’라고 욕하는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0-23일자 사설 '[사설] 누가 누구를 ‘친일파’라고 욕하는가'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주변 사람들은 부일장학회 창설자인 고 김지태씨를 몇 차례 죽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강압으로 재산을 빼앗아 그의 가슴에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박 후보는 그를 “부정부패로 많은 지탄을 받았던 분”이라고 비난했고, 박 후보의 측근인 이정현 공보단장은 ‘친일파’라고까지 매도했다.김지태씨는 5·16 쿠데타 후 서슬 퍼렇던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 손에 수갑을 찬 채로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부일장학회 등의 재산을 포기한다는 각서에 날인했다고 한다. 누가 뭐래도 박 후보는 가해자 쪽이고, 김지태씨와 유족들은 피해자들이다. 박 후보가 엎드려 잘못을 빌어도 시원치 않을 형편인데도 오히려 고인을 모욕하고 있으니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모든 것을 떠나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아니다.그중에서도 압권은 박 후보의 ‘입’을 자처하는 이정현 공보단장의 친일파 발언이다. 이 단장은 김지태씨가 고등학교 졸업 후 일제의 수탈기구인 동양척식회사에 입사한 것 등을 들어 그를 친일파로 규정했다. 이 단장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죽음으로 일본에 충성하겠다’는 혈서까지 써가며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고,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일본군 장교로 복무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일본 이름)는 뭐라고 불러야 옳은가. 친일 부역의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면 박 전 대통령은 당연히 특A급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친일파의 딸’이 재산을 강탈당한 피해자를 친일파로 몰고 있는 물구나무선 풍경이다.박 후보 쪽이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주장을 잇달아 내세워 정수장학회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는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에서 김지태씨가 헌납한 돈은 전체의 5.8%에 불과하다”는 등의 주장도 숫자 장난을 통한 진실 흐리기일 뿐이다. 국가정보원 과거사위가 밝힌 5·16장학회 재산 내역을 봐도 김지태씨 재산은 부산일보·문화방송 주식 3억4800여만환에 토지 10만147평으로 김씨 재산이 외부 성금보다 훨씬 많았다.이정현 단장이 뜬금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연차씨 등을 들먹이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정부가 공개적으로 헌납을 받은 반면, 노 전 대통령 쪽은 사적으로 돈을 수수했다”고 비난하고 나선 것도 전형적인 물귀신 작전이다. 엉뚱한 논쟁을 일으켜 관심을 딴 데로 돌리고 정수장학회 문제의 초점을 흐리려는 유치한 술책이다. 하지만 박 후보 쪽이 이런 치사한 작전으로 정수장학회 문제의 덫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박 “김지태씨가 먼저 헌납” 실제론 “석달 가두고 회사 망하게 한다 협박”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0-22일자 기사 '박 “김지태씨가 먼저 헌납” 실제론 “석달 가두고 회사 망하게 한다 협박”'를 퍼왔습니다.

박후보 회견 사실왜곡 점철
 박 “김씨 부정부패 지탄받던 사람”
당시 중정 부산지부 “김씨 국가에 큰 도움”

박 “정수장학회는 새 재단” 
“부일장학회 재산이 재단 기본재산의 핵심”

박 “운영 문제없었다” 
“정수, 45년 3만8천명…부일, 4년 1만명 지원”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지난 21일 기자회견 내용은 ‘부정축재자 재산을 헌납받아 장학회를 만들었다. 다른 독지가들 도움도 받아 장학사업을 활발히 하고 산하 언론사들도 성장했으니 떳떳하다’는 입장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사실 왜곡과 아전인수로 점철된 주장임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헌납인가 강탈인가? 
 박 후보는 “김지태씨가 처벌을 면하려고 먼저 헌납의 뜻을 밝히고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주식 등을 헌납했다”고 주장했다. 또 “법원에서도 강압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김씨 유족이 낸 소송에)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말했다가, 법원의 판단과 다른 것으로 확인되자 이를 번복했다.이미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는 2005년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구속 상태였던 김씨가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중앙정보부와 국가재건최고회의 쪽의 압력에 의해 기부승낙서를 작성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힌 바 있다. 1962년 군사정부는 일본에 있던 김씨를 귀국시키려고 아내 송혜영씨를 구속했고, 김씨 측근에게 “살고 싶으면 부정축재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는 것이 좋다”고 위협도 했다.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사학과)는 “사람을 석 달이나 가둬두고 회사 망하게 한다고 협박했다면 ‘헌납이냐 강탈이냐’고 박 후보에게 역으로 묻고 싶다”고 말했다.

■ 김지태씨는 부정축재자? 
 박 후보는 “김지태씨는 부정부패로 지탄받던 사람이며 5·16 때도 부패 혐의로 7년형을 구형받기도 했다”며 김씨와 유족 쪽을 공격했다. 박 후보 캠프는 김씨가 일제강점기에 동양척식회사에서 일했다면서 ‘과거사 역공’까지 하고 나섰다.그러나 과거사위 보고서를 보면, 중앙정보부(중정) 부산지부는 김씨가 재구속당하기 전인 1962년 2월 보고서에서 그가 “부일장학회 장려로 국가에 큰 도움이 되고 학생 각자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김씨의 차남 김영우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 자금 500만환을 요구했지만, 아버지가 이를 거절하자 부정부패사범으로 몰고갔다”고 주장했다. 과거사위 보고서에도 이런 정황들이 나온다.군사정권은 1961년 5·16 직후에도 부정축재자라는 이유로 김씨를 구속하는 등 기업인 120명을 조사해, 결국 김씨는 5억4570만환을 납부했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따라서 1962년에 유독 김씨만을 부정축재자로 몰아 다시 구속한 것은 “특정 목적을 위해 기획된 것”이라고 밝혔다. 범법사실이 있다면 그에 맞게 처벌할 일이지, 김씨만을 연속해서 구속하고 재산을 빼앗은 것은 짜맞추기 수사였다는 말이다.당시 고원증 전 법무장관은 김씨에게 적용된 외환관리법과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에 대해 “수사기록을 봤더니 중죄도 아니”라며, 거액을 “혁명정부”에 헌납까지 했으니 공소취소를 해야 한다는 건의를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했었다고 국정원 과거사위에 밝혔다.

■ 부일장학회는 정수장학회 전신 아니다?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는) 국내 독지가와 해외 동포의 성금과 뜻을 더해 새롭게 만든 재단이었다”고 한 것도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박 후보 캠프의 이정현 공보단장은 나아가 “1962년부터 79년까지 11억3600여만원의 장학금이 조성됐고, 이 가운데 김지태씨가 헌납한 규모는 전체의 5.8%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철우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22일 김씨가 헌납한 재산의 규모는 1962년 7월 출범 당시 기준으로도 정수장학회 자산의 5.8%에 불과했다며 또다른 주장을 했다.국정원 과거사위는 “5·16장학회는 설립 전후에 하와이 교포들로부터 1000만여환을 모금하고 당시 장학회 이사였던 이병철 전 삼성 회장으로부터 1억환, 김연수 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부터 3000만환을 기부받은 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5·16장학회의 기본재산은 언론 3사의 주식과 토지 10만147평 등 김씨로부터 강제 헌납받은 재산으로 구성돼 있다”고 못박았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김씨가 석방된 뒤 군사정부가 이미 5·16장학회로 넘어간 사옥 신축 비용까지 그에게 떠넘긴 사실도 밝혀냈다. 또 당시 국민은행 등 3개 시중은행은 김씨가 빼앗긴 언론사 지분 평가액만 3억4875만환으로 평가했다. 이 단장과 이 대변인은 뚜렷한 근거를 밝히지 않은 채 이에 배치되는 주장을 하면서 자신들끼리도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이다.한 교수는 “현재 정수장학회의 기본 재산(문화방송·부산일보 주식, 경향신문 터)만 봐도 부일장학회가 소유했던 자산이 핵심”이라며 “정수장학회 30년 책자에도 부일장학회와 5·16장학회 등의 법통을 이었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김영우씨는 “우리는 정수장학회의 기본 자산을 반환하라고 말하고 있다”며, 박 후보 캠프가 장기간에 걸쳐 조성·사용된 전체 장학금 규모를 강탈 자산 규모와 견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 정수장학회 운영 문제없었다? 
박 후보 쪽은 정수장학회 운영에 문제는 없었고 사회적 역할에 충실했다고 밝히고 있다.국정원 과거사위 보고서를 보면, 김씨가 세운 부일장학회는 1961년까지 4년간 1만2364명에게 장학금을 줬다. 반면 정수장학회는 장학사업을 시작한 1966년 11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대학·대학원생 3만8000여명에게 장학금을 줬다. 한 교수는 “김씨가 4년 동안 장학금을 지급한 숫자대로만 계속 지급했어도 지금까지 15만명쯤은 혜택을 입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있던 10여년간 모두 11억3720만원을 섭외비 및 보수로 지급받은 점도 논란거리다. 서울시교육청은 2005년 정수장학회 감사 뒤 “이사장 연봉이 목적 사업에 비해 과다하다고 볼 수 있다”며 개선을 권고했다. 박 후보는 이에 대한 탈세 논란이 일자 소득세 1억2000만원을 납부했다.

유선희 음성원 기자 duck@hani.co.kr

‘아버지 시대’ 앞에 서면 왜 박근혜는 작아지는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0-22일자 기사 '‘아버지 시대’ 앞에 서면 왜 박근혜는 작아지는가'를 퍼왔습니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새누리당사에서 정수장학회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기자회견 후폭풍 자질논란 재점화
 부일장학회 강탈 사실 부인
법원 판결까지 무시한 발언
과거사 사과 진정성 의문 키워선대위 ‘해법’ 건의했지만 묵살
회견내용 비서 4인방과만 논의
“비슷한 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21일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은 그가 안고 있는 ‘박근혜 문제’의 본질을 보여준다. 기자회견 직후, 당 안팎에선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박 후보가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 잘못된 역사인식 여전 먼저, 국가공동체를 이끌 정치 지도자로서 공동체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박 후보의 회견 기조는 고 김지태씨가 설립한 부일장학회를 정부에서 강압적으로 빼앗은 것이 아니라, 5·16 군사쿠데타 이후 부정부패 혐의로 구속된 김씨가 구명을 위해 스스로 헌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당시 정부가 잘못한 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조사 결론뿐 아니라 1심 재판부도 지난해 “김씨가 국가의 강압에 의해 5·16장학회에 주식을 증여하겠다고 의사표시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고위관계자는 “과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미래로 가자’고만 하면 설득력이 있겠느냐”며 “박 후보의 역사인식과 판단력에 국민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박 후보의 이런 그릇된 역사인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정계에 들어온 이후 최근까지도 5·16과 유신 등에 대해 줄곧 “구국의 결단”,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해왔으며, 사법살인으로 비판받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서도 “두 개의 판결이 있다”며 국가범죄란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다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자, “5·16과 유신, 인혁당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처음으로 사과했다.하지만 이번 기자회견으로 박 후보의 과거사 사과가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 말바꾸기 아니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새누리당 재선의원은 “지도자라면, 아버지와 자신의 잘못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박 후보는 박정희 시절 문제만 나오면 무조건 방어적으로 임한다”며 “아버지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생각이 강한 탓인지, 자신에 대한 객관화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 공적인 의사결정 구조 부재 또한 이번 정수장학회 기자회견 과정을 통해 박 후보의 의사결정 구조가 공적 시스템을 외면한 채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 또다시 드러났다. 새누리당 선대위는 내부 논의를 거쳐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해법은 박 후보에게 전달됐지만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박 후보가 “나한테 맡겨달라”고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선대위가 박 후보에게 올린 건의안에는 최필립 이사장 등 이사들의 전원 사퇴와 재단 명칭 변경, 장학회의 공익성 강화 등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내용들이 다 들어 있었다”며 “박 후보가 저렇게 발표하니 말릴 방법이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주요 정책이나 정치적 사안에 대한 입장이 당의 공식적인 회의 등에서 결정되지 않고 박 후보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다. 박 후보를 잘 아는 한 초선의원은 “후보와 선대위 관계자들이 모여 토론을 하면 많은 문제들이 사전에 걸러질 텐데 후보가 토론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비슷한 사례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세연 의원도 “박 후보가 의사결정을 할 때 당 공식기구를 통하지 않고 있다”며 “앞으론 당 공식기구의 결정이 후보 입을 통해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비서 4인방에 의존한 비선정치 이재만, 이춘상, 정호성, 안봉근 등 ‘비서 4인방’이 박 후보를 둘러싼 비선정치의 실상도 다시 불거졌다. 새누리당 당직자는 “박 후보는 국회의원 등 다른 사람은 모두 자기 정치하느라 믿을 수 없는 사람이고, 4인방만이 자신을 위해 헌신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 이들과만 상의한다”며 “이러다 보니 소통이 안 되고 문고리 권력이 정치를 흔드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이번에도 기자회견 직전까지 비서실 4인방을 제외하고는 선대본부장, 상황실장, 대변인 등 선대위 지도부 어느 누구도 회견 방향이나 내용을 몰랐다. 회견 뒤 선대위 관계자가 ‘왜 박 후보가 법원 판결을 잘못 말하게 했느냐’고 비서실에 항의하자, 한 보좌관은 “법원 판결이 그렇지 않느냐”며 박 후보와 똑같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당내에서는 문고리 권력 퇴진론이 다시 강하게 나오고 있다. 정우택 최고위원은 “공식라인이 아니라 비서 4인방이 했다면 두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선대위 핵심관계자도 “문고리 권력들이 기초적인 사실조차 틀리게 전달해 사태가 악화됐다”며 “후보와의 소통을 막고 있는 측근들이 물러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지난번 당 쇄신 파동 때 최경환 비서실장이 사퇴하고, 이한구 원내대표가 2선으로 물러났지만 당내의 온갖 요구에도 박 후보는 비서 4인방에 대해선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런 당내 요구를 ‘권력투쟁’이라고 규정한 바 있는 박 후보가 결국 비서 4인방을 물리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많다.

김종철 기자 phillkim@hani.co.kr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유족들 “아버지 부정축재자 몰다니…‘사자 명예훼손’ 고발 검토”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0-21일자 기사 '유족들 “아버지 부정축재자 몰다니…‘사자 명예훼손’ 고발 검토”'를 퍼왔습니다.

부일장학회를 빼앗긴 김지태씨 유가족들(오른쪽 부인 송혜영씨, 가운데 다섯째 아들 김영철씨, 왼쪽 여섯째 아들 김영찬씨)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 건물에 있는 정수장학회 사무실을 찾아가 굳게 닫힌 철문을 두드리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박 후보, 허위사실 유포” 성토
30년사 책엔 ‘부일장학회 법통’
“이제와 새로 만들었다 말하나”

“애초 오늘 기자회견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유력 대선후보라는 사람의 역사인식이 이 정도일 줄이야…, 실망과 분노를 넘어 참담함이 느껴집니다.”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원소유주 고 김지태씨의 5남 김영철(61)씨는 21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기자회견 내용을 두고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박 후보가) 이제 국민들을 상대로 아버지를 ‘부정축재자’로 몰아가고 있다”며 “변호사와 상의해서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법적 조처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강력 대처 의지를 밝혔다.김씨는 아버지 김지태씨를 ‘존경받는 기업인이자 8년 동안 국회의원을 지낸 분’이라고 설명하며 박 후보의 회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부산일보)는 비록 지역신문이었지만 자유당 정권시절부터 독재와 폭압에 맞서 싸운 훌륭한 신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산시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고요. 그런 신문의 사주인 아버지가 4·19 때부터 부정축재자로 지탄받았다니….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입니다.” 그는 “시민들이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성토했다”는 박 후보의 말은 ‘근거 없는 모함’이라고 되받았다.김씨는 “정수장학회가 부일장학회를 그대로 승계한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박 후보의 발언에 대해서도 ‘무지의 소산’이거나 ‘의도적인 발뺌’이라고 주장했다. 정수장학회에서 펴낸 (정수장학회 30년사)(1992년)라는 책에 ‘5·16장학회는 부일장학회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그 법통이 이어져 내려온다’고 돼 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자기들이 펴낸 30년사를 부정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언제든 본인 유리하게 입장을 바꾸는 것입니까?” 김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문이 프롬프터에 비춰지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

김씨는 박 후보의 기자회견 내용 가운데 가장 경악한 부분은 유족들의 주식반환청구소송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한 언급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강압이 없었다고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며 “강압은 있었지만 시효 때문에 (돌려주는 건) 곤란하다는 것이 판결문의 요지였다”고 성토했다.박 후보가 ‘정수장학회의 이름을 비롯해 이사진이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한 부분에 대해서도 김씨는 “꼼수이며 야비한 술책”이라고 못박았다. “정수장학회를 강탈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이름과 이사진을 바꾼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정수장학회를 개인재산처럼 팔아버리려고 했으면서….” 정수장학회의 잘못된 시작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외형이 어떻게 변하든 ‘장물’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그는 “정수장학회를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 외에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야 하는 또다른 짐이 유족들에게 지워졌다”며 “(박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아버지를 이렇게 모함하니 이제 또다른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2012년 7월 31일 화요일

박근혜, 정수장학회에서 20억 넘게 받아


이글은 시사IN 2012-07-31일자 기사 '박근혜, 정수장학회에서 20억 넘게 받아'를 퍼왔습니다.
박정희가 빼앗은 부일장학회는 1982년 박정희와 육영수의 이름을 따 정수 장학회로 간판을 바꾸었다. 박근혜 의원은 장학회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20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장학회 관계자로부터 후원금도 받았다

1962년 4월의 어느 새벽. 서울 청운동 송혜영씨 집에 중앙정보부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그 사내들은 송씨를 비행기에 태워 부산으로 끌고 갔다. 도착한 곳은 부산 중앙정보부(중정) 사무실. 중정은 송씨가 외국에서 산 다이아몬드 반지와 카메라를 밀수했다고 몰아세웠다. 세관에서 허락을 받은 물품이었다. 담당 세관원도 불려왔다. 밀수가 아니라고 말하자, 세관원은 며칠 후 해고됐다. 송씨는 일본에서 치료받는 남편을 불러오기 위한 인질이었다. 남편 김지태씨(당시 부산일보 사장 겸 부일장학회 이사장)가 바로 귀국했다. 귀국하자마자 중정에 끌려간 김씨는 군 검찰에 의해 구속됐다. 관세법 위반, 부정축재 혐의 등 9개 혐의가 덧씌워져 김씨는 1962년 5월24일 7년 징역형을 구형받는다. 

 
1970년 11월30일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김지태 전 부일장학회 이사장(오른쪽)이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고 김지태씨 평전은 그의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부일장학회 강탈 지시

1962년 6월20일 부산 군수기지사령부 내 법무관실. 김씨는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차고 있었다. 그 앞에는 법무부 장관을 지낸 고원증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고 변호사는 미리 작성해둔 서류를 꺼냈다. 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의 주식 100%, 부산 서면 일대의 금싸라기 땅 10만 평, 그리고 부일장학회의 경영권을 국가에 무상 기부하겠다는 기부 승낙서였다. 김지태씨는 여기에 도장을 찍는다. 김씨의 아들 김영구씨는 “내가 인감도장을 들고 가자 부산 군수기지사령부 법무관실에서 아버지가 수갑을 찬 채로 운영권 포기각서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었다”라고 증언했다. 

고원증 변호사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부터 김씨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기로 약속했으니 그 재산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하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였다고 한다. 고 변호사는 와의 인터뷰(2004년 9월호)에서 김씨는 도장을 찍은 지 이틀 뒤에 박정희 의장 지시로 석방됐고, 김씨의 혐의사실 자체가 터무니없는 내용이었다고 증언했다. “내가 도장을 받으러 부산에 내려갔을 때 박 의장이 (수사)기록까지 다 보고 올라오라고 했다. 사실 김씨 잘못은 명의 신탁한 토지를 등기하는 과정에 몇 사람이 생사도 확인 안 되고 연락도 안 돼 도장을 파서 찍은 것과 부인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준 것뿐이었다. (김씨가 재단을 헌납하자) 박 의장이 김용순(군수기지사령관)에게 ‘너 곧바로 내려가서 풀어주라’고 지시했고, 김용순은 그날 전용 비행기로 부산으로 내려가 풀어줬다.” 

중정 부산지부장 박용기씨의 회고록을 보면 박 의장이 부일장학회 강탈을 기획한 대목이 나온다. 2000년 3월 발간된 에서 박씨는 1962년 1월2~3일경 박정희 의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김지태씨에 대한 조사를 지시받았다고 밝혔다. 

부일장학회는 이렇게 사라지고 만다. 김씨는 재산을 국가에 강제로 헌납했는데, 헌납받은 곳이 5·16장학회로 되어 있었다. 5·16장학회는 아직 설립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부일장학회와 언론사 세 곳은 5·16장학회 손에 넘어간다. 5·16장학회는 박 전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특히 출신학교인 대구사범 동창들이 장악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5·16장학회는 대구사범과 친인척들의 민원 처리 사무소 구실을 했다”라고 말했다. 

 
1996년 발간된 <부산일보 50년사>에 장학회 이사장으로 소개된 박근혜씨.

5·16장학회 초대 이사장은 이관구 전 재건국민운동본부장이 맡았다. 2대 이사장인 엄민영씨는 박정희와 하숙을 같이 한 인물. 5·16 쿠데타 뒤 만들어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박정희 의장의 고문을 지냈고 내무부 장관에 올랐다. 4대 이사장 최석채씨도 박 전 대통령 친구였다. 최씨는 문화방송· 회장을 지냈다. 5대 이사장을 지낸 조태호씨는 육영수 여사의 동생 육예수씨의 남편이다. 그는 1965~1968년 장학회 이사를 지냈고, 1968년에는 문화방송 이사를 지냈다. 1983~1988년에는 회장을 겸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2년 1월14일 5·16장학회는 박정희의 정(正)자와 육영수의 수(修)자를 따서 정수장학회로 간판을 바꾸었다. 여전히 박정희·육영수 부부의 개인 재산은 1원도 내놓지 않은 상태였다.  노조는 “정수장학회는 유신세력 집합체였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나온 대구사범 출신들의 놀이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의 동기인 조증출 전 부산문화방송 사장, 왕학수 전 사장이 정수장학회 이사를 지냈다. 


정수장학회에서 20억원 넘게 받아1995년 박근혜 의원은 정수장학회 8대 이사장에 올라 2005년 2월까지 이사장을 지냈다. 박 의원은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있던 1998년 1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연간 1억~2억3520만원을 보수로 받았다. 외환위기 이후 재정이 열악해지자 정수장학회는 2000년 1월 장학생 선발을 담당하는 장학국을 폐지한다. 하지만 같은 시기 비상근직이던 이사장 신분을 상근직으로 바꾸면서 1999년 1억3500만원이던 연봉을 2억5350만원(섭외비 포함)으로 올렸다. 박 의원은 10여 년간 총 20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당시 서울교육청은 “이사장의 연봉이 공익법 취지나 사회통념상 과다하다고 볼 수 있다”라며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는 2002년 3월 박근혜 의원이 1998년과 1999년에 각각 받은 1억원, 1억3500만원의 섭외비 대부분을 재단업무 이외 용도로 사용했고,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보도가 나간 며칠 뒤 박근혜 의원은 소득세 1억2000만원을 자진 납부했다. 

2004년 김지태씨의 후손들이 정수장학회를 되찾겠다고 나섰다. 논란이 일었지만 박근혜 의원은 꿋꿋했다. 인터뷰에서 박 의원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사퇴할 생각은?”이라는 질문에 “잘못된 것이 있어야 사퇴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2005년 2월 박 의원에 이어 최필립 전 리비아 대사가 이사장에 선임됐다. 최 이사장은 1974년 박 전 대통령 의전·공보비서관을 지낸 인물로 박근혜 의원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박 의원이 2002년 한국미래연합을 만들었을 때 운영위원으로 참여했고, 2007년 대선 경선에서도 핵심적인 일을 맡았다고 한다. 이호진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산일보지부장은 “2005년 3월 최 이사장이 취임 직후 노조와 가진 면담 자리에서 ‘박 대표가 최근 미국 방문에 앞서 잠시 조언을 해달라고 해서 만났다. 박 대표가 그 자리에서 장학회를 좀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설명했다”라고 밝혔다. 정수장학회 이사 5명 가운데 3명은 박 의원이 임명한 사람이다.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정수장학회 관계자들은 매년 박근혜 의원의 정치후원금으로 거액을 내놓고 있다. 최필립 이사장 가족은 2004~2010년 박 의원에게 정치 후원금 3000만원을 냈다. 정수장학회 장학생 모임인 ‘상청회’ 김삼천 회장도 2004~2010년 정치 후원금으로 2500만원을 냈다.

2003년 5월 부산일보 사장이 박근혜 정수장학회 이사장에게 장학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박근혜 “이미 사회에 환원된 공익재단”

하지만 정수장학회 이야기만 나오면 박근혜 의원은 자신과 관계없다고 선을 긋는다. 2007년 5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은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정수장학회는 헌납된 재산을 피해자들에게 반납하거나 반납이 안 되면 국가가 대신 배상을 하라”고 밝혔다. 그러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어거지가 많다. (정수장학회는)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이미 사회에 환원된 것이다. 또 환원하란 것도 어폐가 있다. 그런데 자꾸 이런 식으로 틈만 나면 또 (거론)하고 또 (거론)하는 것은 (나를) 흠집 내기 위한 정치 공세일 뿐이다.”

박근혜 의원은 2007년 7월 대선후보 경선 청문회에서 “새 (정수장학회) 이사진이 구성돼 자율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나와 관계가 없다”라고 말했다. 2011년 12월 인터뷰에서는 “이미 사회에 환원된 공익재단이다”라고 말했다. 2012년 3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는 “저와 장학회는 관련이 없다”라고 말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난 7월10일 박근혜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는) 개인의 것이 아니고 공익법인인데 내가 이사장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계없는 이사장을 관두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이건 법치국가에서 언어도단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의원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야권뿐만이 아니다. 새누리당 한 친박계 의원은 “정수장학회가 부모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는데 자꾸 자신과 관련 없다고만 한다. 꿩이 대가리를 눈 속에 처박고 숨었다고 하는 격이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은 “실제 많은 국민이 정수장학회는 박근혜 후보가 주인이란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집에 문패 달아놓고 내 집 아니라 하면 누가 믿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재오 의원은 “박근혜 대표는 5·16 군사 쿠데타나 유신독재의 반민주·반인권성을 겸손히 사과해야 한다. 정수장학회는 내놓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

2012년 7월 30일 월요일

박정희는 왜 <부산일보>에 눈독들였나


이글은 시사IN 2012-07-30일자 기사 ' 박정희는 왜 (부산일보)에 눈독들였나'를 퍼왔습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역사학자로 통한다.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민간위원으로 참여해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 전신) 강제헌납’ 사건 조사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부일장학회 강탈’을 박정희 정권의 ‘언론 장악’이라고 말한다(부일장학회는 5·16장학회 그리고 1982년 정수장학회로 이름이 바뀐다. 5·16장학회는 1962년 박정희 정권이 김지태 사장 소유의 (부산일보) 주식 100%, 한국문화방송(현 MBC) 주식 100%, 부산문화방송 주식 65.5%와 부일장학회의 기본 재산 토지10만여 평을 강탈해 설립한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부산문화방송과 (부산일보)가 4·19혁명에 큰 몫을 했다. 3·15 부정선거가 일어나고 마산시민들이 부정선거에 항거했다. 부산문화방송이 이 3·15의거를 생중계했다. 일본의 NHK가 이 보도를 이어받아 전 세계로 송신했다. 한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혁명을 생중계한 셈이다”. 당시 김지태 사장은 경찰이중계를 방해할까봐, (부산일보) 사장실에서 방송을 하도록 했다. 

<부산일보 50년사>에 수록된 김주열의 시신 사진. <부산일보>가 보도한 이 사진 한 장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부산일보)는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 사진을 특종 보도했다. 김지태 사장은 이를 전국 언론사에 제공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과 관련한 사진이 (뉴욕 타임스) 1면에 실린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한 교수는 “당시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으로 내려와 있던 박정희는 대구사범 동기동창인 황용주([부산일보] 주필)와 친구 사이로 이런 상황을 자세히 지켜볼 수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김지태 사장의 재산 중 언론사에 비해 규모가 큰 조선견직, 대한생사, 삼화고무는 놔두고 언론 3사 주식과 부일장학회 등을 강탈했는데, 이는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의도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한홍구 교수는 “정수장학회가 왜 (부산일보)를 갖고 있는가. 한마디로 원인 무효다”라고 말한다. ‘나와는 상관없다’는 박근혜 후보의 말에 한 교수는 이렇게 반문한다. “예컨대 노무현 정권에서 방일영 장학회와 (조선일보) 주식을 강압적으로 뺏었다고 하자.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게다가 (부산일보)에서는 윤전기를 세우네 마네 하고, 편집국장이 밖에 나와 싸우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차형석 기자 | cha@sisain.co.kr

2012년 7월 11일 수요일

"정수장학회는 장물전용 지갑, 장학금 받는 학생들에겐 모욕"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7-10일자 기사 ' "정수장학회는 장물전용 지갑, 장학금 받는 학생들에겐 모욕"'을 퍼왔습니다.
한홍구 교수 특강 “10조원 자산관리… 아직까지 남아있는 건 한강보다 더 큰 기적”

“박정희가 돈이 탐났다면 재벌을 뺐었을 것이다. 60년 4월 혁명 때 부산일보와 부산MBC가 혁명을 생중계했다. NHK가 이걸 보고 타전을 보냈고, 전 세계로 퍼졌다. 박정희는 당시 부산지역 계엄사령관이었다. 이걸 보고 언론장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신관 소회의실에서 배재정 민주당 초선의원 등이 개최한 ‘박근혜 의원과 정수장학회’를 주제로 연 특별 강연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한 교수는 박정희 정권이 고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를 강탈한 과정에 대해 당시 자료를 근거로 “본래 중앙정보부의 김지태 동향보고에는 긍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박정희의 수사 지시 이후 급변했다”며 “이후 중앙정보부는 김지태를 ‘금력과 권력에 의해 변절하는 기회주의적 편승파’, 부일장학회를 정치성이 기재된 곳이라고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부일장학회 등 김지태씨 재산이 1962년 3월부터 7월까지 강제헌납된 과정에 대해 한 교수는 박정희의 지시 이후 1962년 초 김지태씨 회사 직원들 10여 명과 김씨의 부인 송혜영씨마저 구속됐다고 전했다. 김씨는 그해 4월 귀국해 징역 7년을 구형지만 재산포기각서를 쓴 뒤에야 풀려났다. 이 과정에서 설립된 것이 5·16장학회이다. 이를 두고 한 교수는 “국가가 장물아비가 돼 장물 전용 지갑으로 5·16장학회를 만든 것이 (지금의) 정수장학회에 이르게 됐다”고 꼬집었다.
특히 한 교수는 박정희가 김씨의 재산을 강탈한 목적 ‘언론장악’에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박정희가 돈이 탐났다면 재벌을 뺐었을 것”이라며 “왜 언론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60년 4월 혁명 때 부산일보와 부산MBC의 혁명 생중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박정희는 당시 부산지역 계엄사령관이었고, 이걸 보고 언론장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정수장학회 보유 언론사 자산의 성격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수장학회는 MBC 지분 30%, 부산일보 100%, 경향신문 사옥대지를 보유하고 있다. 한 교수는 “MBC 지분 30%면 10~20조 원”이라며 “박정희 18년 집권 뒤 10조 원 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정수장학회가 지금까지 있는 것이야말로 ‘한강의 기적’보다 더한 기적”이라고 풍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사회환원으로, 고 김지태씨 가족에게 장학회를 돌려줘 이들의 뜻에 맡겨야 한다고 한 교수는 제안했다. 한 교수는 “박근혜 의원은 ‘관계없다’, ‘사회에 환원했다’고 얘기하는데 진짜 공익재단이라면 원래 주인의 손으로 돌려주고 원 주인의 뜻에 맡겨야 한다”며 “박정희가 5·16장학회 만들 때 ‘陰水思原’(음수사원)이라는 글을 썼다. 물을 마실 때는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인데 정수장학회 장학금의 근원은 ‘장물’이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는 ‘모욕’”이라고 밝혔다.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  

2012년 7월 10일 화요일

“장물 50년, 박근혜는 정수장학회 문제에 답하라”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7-10일자 기사 ' “장물 50년, 박근혜는 정수장학회 문제에 답하라”'를 퍼왔습니다.
정수장학회 환수 공대위, 박근혜 의원에 의견 표명 촉구… “사회환원, 공익재단화하라”

“정수장학회 강제헌납 판결 어떻게 생각하나?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은 누가 앉혔나?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국가권력을 동원해 이뤄진 수많은 민간의 인권과 재산권 침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10일 박근혜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시각, 국회 정론관에는 박 의원에 대한 공개질의가 진행됐다. ‘독재유산 정수장학회 환수와 독립정론 부산일보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박근혜 의원에게 3가지 질문을 던졌다.
공대위는 공개질의서에서 “오는 14일은 박정희 정권이 고 김지태씨가 갖고 있던 부일장학회, MBC와 부신일보 주식을 빼앗아 정수장학회(옛 5·16장학회)를 설립한지 50년이 되는 날”이라며“국민의 선택을 받고자 하는 박근혜 의원은 세 가지 질문에 명쾌하게 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5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박정희 정권의 고 김지태씨 재산 강제헌납 성격을 밝혔고, 지난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또한 이를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은 지금까지 명확한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대위는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정수재단과 자신은 법적으로 무관하다고 항변하지만, 10년 동안 재단 이사장을 지내고 아직도 자신의 최측근 인사를 대신 앉혀놓고 소유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회견에 참석한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전국언론노동조합 부산일보 지부장)은 2005년 현 최필립 이사장이 노조와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대표가 내게 장학회를 부탁했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박근혜 의원이 꿈꾸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모르겠지만 공개질의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의심하고 우려할 수밖에 없다”며 대답을 촉구했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도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하고, 부산일보 편집권 독립을 이루는 것은 시민사회, 언론노동자, (고 김지태씨) 가족의 염원인데 이를 짓밟고 서는 곳은 ‘네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일 뿐”이라며 박근혜 의원을 정면 비판했다.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주식 100%, MBC 30%, 경향신문 사옥 땅 723평을 보유하고 있다.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는 “정수장학회 문제의 핵심은 언론”이라며 “언론자유를 위해서라도 장학회를 공공화(실질적 공익재단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정수장학회 재산은 강탈한 장물이요, 그걸 끝까지 가지고 대통령 선거를 치를 작정이냐,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서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언론을 비롯해 선량한 사람들의 재산과 권리와 자유를 강제로 강탈할 작정이냐”며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박 의원을 질타했다.
한편 이 자리에는 고 김지태씨의 부인 송혜영씨와 아들 김영철씨 등 가족도 참석했다. 김영철씨는 “박근혜 대표가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나섰는데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 

2012년 4월 24일 화요일

"정수장학회, 그녀가 '오빠' 라 부르던 전두환의 생계용 배려"


이글은 미디어스 2012-04-23일자 기사 '"정수장학회, 그녀가 '오빠' 라 부르던 전두환의 생계용 배려"'를 퍼왔습니다.
[인터뷰]박근혜 아킬레스건 '정수장학회' 저격수 한홍구를 만나다

(대한민국사) 저자로 유명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아킬레스건'인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수'를 요구하는 저격수로 나섰다. 한홍구 교수는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헌납사건' 조사를 담당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가장 촘촘하게 들여다 본 대표 전문가로 꼽힌다.

▲ <미디어스>는 20일 한홍구 교수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곽상아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은 5.16 쿠데타 후 군부세력의 핵심인 중앙정보부가 당시 부산지역 기업인이던 고 김지태 삼화고무 사장의 부일장학회를 강제로 국가에 헌납하게 한 일을 말한다. 당시 부일장학회는 부산시내 땅 10만여평과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현 부산MBC), 한국문화방송(현 MBC) 등 언론사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정부에 강제로 헌납당했고, 이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딴 정수장학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기자들, 박근혜에게 '핵심'을 겨냥한 질문을 하라"
한홍구 교수는 3월 19일 출범한 '정수장학회 사회환수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3월 26일부터는 정수장학회 문제 등을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트위터(@history_hongkoo) 활동도 시작했다.
한홍구 교수는 '정수장학회 저격수'로 나서게 된 이유에 대해 20일 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부동의 대선 후보로 등장하고, 부산일보 사태 등이 터지면서 '정수장학회'가 큰 화두로 떠올랐지만 언론노조 차원에서 나서는 것 말고는 체계적인 문제제기가 없는 것 같았다"며 "내가 아무래도 당시 사건을 조사해 역사학자 중에는 (정수장학회 문제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돼버렸기 때문에 '공익근무'에 나선다는 심정으로 올 1년간 죽도록 싸워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정수주장학회 문제의 '섬세한 디테일'들을 알리기 위해 트위터를 시작하게 됐어요. 다들 '정수장학회 사회환수'라는 결론만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맨날 똑같은 이야기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트위터를 시작한 지 1달 정도 됐는데, 사람들이 이 문제를 잘 모르고 있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한홍구 교수가 트위터를 시작하게 된 이유에는 '기자들의 무식'도 한몫 했다.
"기자들이 사건 자체를 잘 몰라요. 그래서 그런지, 박근혜 위원장한테도 맨날 똑같은 질문만 하죠. 박근혜 위원장이 '정수장학회는 이미 사회에 환원된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없다'라고 말하면 더 이상 질문을 안합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질문해서 끝내버릴 문제가 아닌데…참 답답했어요.
'민주국가에서 언론사를 빼앗기 위해 사람을 가둬두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지'에 대해 박근혜 위원장이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는지 핵심을 겨냥하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 조선일보가 맘에 안든다고 방우영 명예회장과 일가 친척을 다 잡아놓은 뒤 조선일보를 헌납받은 일이 있었다면'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물어야 합니다. 아마 박근혜 위원장은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펄쩍 뛰겠죠.
그렇다면, 과거에 벌어진 똑같은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어야 하겠죠? 지나간 일이니까 그냥 덮어두자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런 일이 재발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형성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부일장학회 헌납사건 조사 "대한민국의 못볼 것을 봤다"


▲ 한홍구 교수가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담당했던 부일장학회 헌납사건 관련 자료를 훑어보고 있는 모습. ⓒ곽상아

2005년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기 전까지, 한홍구 교수 역시 이 사건에 대해 "부일장학회의 원 소유자인 김지태씨와 박정희의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벌어진 일" 정도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사를 하고 나니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은 형식상 "국가권력이 동원된 납치 강도극"이요, 내용적으로는 "언론장악" 사건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부일장학회 헌납의 진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어요. 원 소유자인 김지태씨와 박정희의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유족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조사를 해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핵심은 '언론장악'입니다.
1960년 3.15 부정선거 당시 부산MBC가 데모를 생중계 했었거든요. '혁명'을 중계한 거니까 당시로서도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었겠죠? 경찰들은 (중계를 막으려) 부산MBC를 포위했었는데, (경찰이 막을 게 뻔하니까) 중계차를 갖다놓고 부산일보 김지태 사장실에서 데모를 중계했었거든요. 그 당시 박정희가 부산에 있었습니다. 군수기지사령관으로 부산에 있으면서 부산일보와 부산MBC의 엄청난 영향력을 보고 '정권 장악을 위해 언론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거죠.
그런데 자기들도 빼앗은 언론사를 국가소유로 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자진헌납처럼 꾸미기 위해 문서도 위조하고 '장학회'라는 형태로 언론사를 소유한 거죠. 국가가 무슨 장학회가 필요합니까? 육영사업에 뜻이 있었던 게 아니라 '장물을 담을 바구니'로서 장학회라는 형식을 취한 거예요. 지금 MB 정부의 언론장악이 문제되고 있는데 언론장악의 씨앗은 박정희 때에 잉태된 것입니다."
한홍구 교수가 당시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을 조사하면서 느낀 심정은 "대한민국의 못볼 것을 봤다"는 것.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조사하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최대한 만났습니다.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아주 세심한 것 하나까지 복원해 나가는 과정이었지요. 조사를 진행하면서 '정말 이런 짓을 한 자들이 국가권력을 가지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잘못된 게 아직까지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구나, 본질적 구조를 바꾸지 않고 표면적인 것만 몇 개 고쳐서는 한국사회에서 민주화가 이뤄질 수 없겠다고 느꼈지요."
"전두환, 박근혜 돌봐주기 위해 '정수장학회' 탄생시켜"


▲ 박정희의 '양아들' 격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뒷줄 왼쪽)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포즈를 취한 MBC보도 캡처. 전두환 전 대통령 옆은 차지철 전 경호실장이며, 박정희 왼쪽에 있는 이는 차녀 박근영씨.

박정희 정권이 62년 부일장학회를 뺏어 탄생시킨 '5.16 장학회'는 82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정수장학회'로 재탄생된다. 한홍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5.16 장학회'와 '정수장학회'의 성격은 굉장히 다르다. 준국가기구였던 '5.16 장학회'가 '정수장학회'로 탄생하면서 사실상 박근혜 위원장의 사조직이 되었다는 것. 박정희의 '양아들'이자, 박근혜 위원장이 사석에서 '오빠'라고 불렀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부모를 잃은 박근혜 위원장의 '생계'를 챙겨주기 위한 차원에서 '정수장학회'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형식적으로는 재단법인이었으나 사실상 준국가기구였던 '5.16 장학회'는 박정희가 죽고난 이후 공중에 붕 뜨게 됩니다. 박정희의 호위병 출신인 전두환 입장에서는 '준국가기구인 5.16장학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 '박정희의 남은 가족들을 어떻게 돌봐주느냐'가 더 큰 문제였지요. 박정희는 전두환을 양아들처럼 생각했고, 박근혜 역시 사석에서 전두환을 '오빠'라고 불렀으니까요. 부모를 잃은 박근혜 형제들을 어떻게 먹고살게 해줄까 고민하다가, 5.16 장학회를 정수장학회로 바꿔 사실상 박정희 일가의 사유재산으로 만들어주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커진 MBC를 박근혜에게 다 줄수는 없어, 70%는 KBS에 주고 30% 지분을 떼어 정수장학회에 준 거죠. 87년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KBS가 가지고 있던 70%의 지분을 담당할 방송문화진흥회가 만들어졌어요. 원래는 100% 김지태씨 소유였는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방송 MBC의 지분도 여러 번 손을 탄 '장물'인 거죠. 이 잘못된 구조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근혜, 언제까지 '상관없다' 할 건가?"
때문에, 정수장학회라는 '장물'이 아직까지도 반환되지 않고 있는 것은 '민주국가의 비극'이다. 그러나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딸로서 아버지의 강도짓을 인정하기 힘들긴 하겠지요. 인간적으로. 그러나 그것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일국의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 이렇게 침묵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일반 개인이 아니잖아요? 국가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으로서, 과거의 악행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에게 줘야합니다. 국민들은 정치지도자에게서 이 문제에 대한 해명과 재발방지 약속을 들을 권리가 있는 거구요. 박근혜 위원장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정수장학회가 '국가최고의 정보기관을 동원한 최악의 인질강도극'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만약 박근혜 위원장이 '정수장학회의 원상회복'을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정치지도자로서의 위상이 지금보다 굉장히 높아질 것입니다. 지금처럼 '나몰라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비겁하죠.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데는 한 명의 평범한 사람도 책임이 있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위원장은 한 나라의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열두살 때부터 청와대 생활을 했고, 유신 체제의 중요한 부분이었잖아요.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10년동안 20억 가까이 연봉으로 가져갔구요.
박정희는 다른 권력자들과 달리 청렴했다고 하는데 '허구'에 불과합니다. 물론, 화장실 변기에 벽돌을 넣었다든지 구멍뚫린 런닝을 입었다든지 이런 것은 모두 사실일 겁니다.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랬던 것처럼, 검약을 생활화하고 소박한 생활을 했을 거예요. 저도 그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습니다.
문제는 부정축재죠. 박정희 이후 박정희의 양아들이었던 전두환이 정권을 잡으면서 (박정희의 개인비리를) 다 덮어버렸기 때문에 저희가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아요. 그런데 5.16 군사반란을 일으킬 당시만 해도 신당동에 낡은 기와집 한 채만 가지고 있었던 사람의 자녀들이 지금은 10조원 훌쩍 넘는 자산을 놓고 다투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한국경제의 기적보다 더 놀라운 재테크 신공 아닙니까?(웃음) 과연 정상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한 걸까요?"
한홍구 교수는 정수장학회 사건의 전모를 알리는 책도 8월경 낼 예정이다.
"장물이 아직도 반환되지 않고 있는 이 나라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백만부 이상 팔려봤자 다 무슨 소용입니까? 이건 민주주의를 할 거냐, 말거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예요.
만약 최근에 일어난 일이었다면, 가둬놓은 사람을 감옥에 보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법정 시효가 만료됐다고 하더라도, '나는 물러나서 상관없는 일'이라고만 하는 게 과연 유력 대선주자에 걸맞는 행동인가요?"

곽상아 기자  |  nell@mediaus.co.kr

2012년 3월 19일 월요일

"정수장학회 '납치강도' 장물! 박근혜 결자해지해야"


이글은 미디어스 2012-03-19일자 기사 '"정수장학회 '납치강도' 장물! 박근혜 결자해지해야"'를 퍼왔습니다.
500개 단체, 정수장학회 공대위 출범…서명운동 등 본격투쟁 선언

언론계, 학계, 종교계를 비롯해 사회 각 분야의 시민사회 단체 500여 곳이 '정수장학회 사회환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19일 본격 출범했다.

▲ 19일 오전 열린 '정수장학회 사회환수와 독립정론 부산일보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출범 선언문을 읽고 있다. ⓒ언론노조

역사정의실천연대, 미디어행동, 정수재단 사회반환을 위한 부산시민연대 등 500여 개 단체는 19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정수장학회 사회환수와 독립정론 부산일보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공식 출범을 알렸다.
공대위는 "그동안 박근혜 위원장과 정수장학회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불법 강탈된 재산이자 장물인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할 것을 요구하고 그 결단을 기다려왔지만, 양측 모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정수장학회 사회환수를 위한 시민캠페인과 범국민서명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공대위는 "오는 30일, 부산에서 전국의 언론노동자들이 집결해 부산지역 시민들과 함께 '박근혜는 답하라'를 외칠 것이다. 상생과 정의를 위한 과거사청산특별법 제정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며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정론 부산일보 만들기 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2005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활동 당시 부일장학회 헌납 사건을 조사했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장물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경우는 '납치 강도 장물'이다. 김지태 회장 측을 두달간 납치한 뒤 몸값으로 받아놓고 '자발적 헌납'이라고 한다"며 "정수장학회를 원 소유주인 김지태 씨 측에게 돌려줘서 부일장학회로 부활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법치국가라고 하면서 이 사건을 그대로 놔둬야 하느냐"며 취재진을 향해 "기자 여러분들이 박근혜 위원장에게 '만약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조선일보 방씨네 형제를 붙잡아서 방일영 장학회를 헌납받은 뒤 김대중 장학회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면, 대통령이 된 다음에 이 사안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질문해 주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한홍구 교수는 "정수장학회 측은 4만명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이미 법인이 사회에 환원돼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박정희에게 강탈당하기 전, 부일장학회는 재단으로 등록하지도 않은 개인 운영 단체였지만 연간 3천명에게 장학금을 줬다. 당시 제일 큰 장학회였던 상이군경장학회는 1년 300명에게 장학금을 주었다"며 "정수장학회가 전신인 부일장학회 만큼만 했더라도 지난 50년간 15만명 넘는 이들이 장학금을 받았을 텐데 나머지 11만명은 어디 있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김지태 회장이 부일장학회 대표이사 자격으로 임금을 받아갔다는 이야기는 듣지도 못했다. 그런데 박근혜씨는 이사장으로 있을 당시 판공비, 급여 등 2억원이 넘는 돈을 10년 넘게 받아갔다"며 "강탈당한 장물이 새끼를 치고 있는 형국"이라고 표현했다.
지분 30%를 소유해 정수장학회가 2대 주주로 있는 MBC의 정영하 노조위원장은 "정수장학회 사건은 부산일보와 MBC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라며 "정수장학회는 MBC의 2대 주주라 가려져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현 정권이 MBC 대주주인 방문진(지분 70%)을 어떻게 장악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만약 박근혜 씨가 대권을 쥔다면 정수장학회 지분까지 합쳐 100% 주주가 된다"며 "박근혜 위원장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대선주자로서 자격없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1962년에 벌어진 정수장학회 강제헌납은 언론장악의 첫 출발이다. 때문에 이 투쟁은 더욱 각별한 언론독립투쟁"이라며 "3보 1배, 대규모집회 등 적극적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