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31일 화요일

박근혜, 정수장학회에서 20억 넘게 받아


이글은 시사IN 2012-07-31일자 기사 '박근혜, 정수장학회에서 20억 넘게 받아'를 퍼왔습니다.
박정희가 빼앗은 부일장학회는 1982년 박정희와 육영수의 이름을 따 정수 장학회로 간판을 바꾸었다. 박근혜 의원은 장학회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20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장학회 관계자로부터 후원금도 받았다

1962년 4월의 어느 새벽. 서울 청운동 송혜영씨 집에 중앙정보부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그 사내들은 송씨를 비행기에 태워 부산으로 끌고 갔다. 도착한 곳은 부산 중앙정보부(중정) 사무실. 중정은 송씨가 외국에서 산 다이아몬드 반지와 카메라를 밀수했다고 몰아세웠다. 세관에서 허락을 받은 물품이었다. 담당 세관원도 불려왔다. 밀수가 아니라고 말하자, 세관원은 며칠 후 해고됐다. 송씨는 일본에서 치료받는 남편을 불러오기 위한 인질이었다. 남편 김지태씨(당시 부산일보 사장 겸 부일장학회 이사장)가 바로 귀국했다. 귀국하자마자 중정에 끌려간 김씨는 군 검찰에 의해 구속됐다. 관세법 위반, 부정축재 혐의 등 9개 혐의가 덧씌워져 김씨는 1962년 5월24일 7년 징역형을 구형받는다. 

 
1970년 11월30일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김지태 전 부일장학회 이사장(오른쪽)이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고 김지태씨 평전은 그의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부일장학회 강탈 지시

1962년 6월20일 부산 군수기지사령부 내 법무관실. 김씨는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차고 있었다. 그 앞에는 법무부 장관을 지낸 고원증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고 변호사는 미리 작성해둔 서류를 꺼냈다. 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의 주식 100%, 부산 서면 일대의 금싸라기 땅 10만 평, 그리고 부일장학회의 경영권을 국가에 무상 기부하겠다는 기부 승낙서였다. 김지태씨는 여기에 도장을 찍는다. 김씨의 아들 김영구씨는 “내가 인감도장을 들고 가자 부산 군수기지사령부 법무관실에서 아버지가 수갑을 찬 채로 운영권 포기각서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었다”라고 증언했다. 

고원증 변호사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부터 김씨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기로 약속했으니 그 재산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하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였다고 한다. 고 변호사는 와의 인터뷰(2004년 9월호)에서 김씨는 도장을 찍은 지 이틀 뒤에 박정희 의장 지시로 석방됐고, 김씨의 혐의사실 자체가 터무니없는 내용이었다고 증언했다. “내가 도장을 받으러 부산에 내려갔을 때 박 의장이 (수사)기록까지 다 보고 올라오라고 했다. 사실 김씨 잘못은 명의 신탁한 토지를 등기하는 과정에 몇 사람이 생사도 확인 안 되고 연락도 안 돼 도장을 파서 찍은 것과 부인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준 것뿐이었다. (김씨가 재단을 헌납하자) 박 의장이 김용순(군수기지사령관)에게 ‘너 곧바로 내려가서 풀어주라’고 지시했고, 김용순은 그날 전용 비행기로 부산으로 내려가 풀어줬다.” 

중정 부산지부장 박용기씨의 회고록을 보면 박 의장이 부일장학회 강탈을 기획한 대목이 나온다. 2000년 3월 발간된 에서 박씨는 1962년 1월2~3일경 박정희 의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김지태씨에 대한 조사를 지시받았다고 밝혔다. 

부일장학회는 이렇게 사라지고 만다. 김씨는 재산을 국가에 강제로 헌납했는데, 헌납받은 곳이 5·16장학회로 되어 있었다. 5·16장학회는 아직 설립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부일장학회와 언론사 세 곳은 5·16장학회 손에 넘어간다. 5·16장학회는 박 전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특히 출신학교인 대구사범 동창들이 장악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5·16장학회는 대구사범과 친인척들의 민원 처리 사무소 구실을 했다”라고 말했다. 

 
1996년 발간된 <부산일보 50년사>에 장학회 이사장으로 소개된 박근혜씨.

5·16장학회 초대 이사장은 이관구 전 재건국민운동본부장이 맡았다. 2대 이사장인 엄민영씨는 박정희와 하숙을 같이 한 인물. 5·16 쿠데타 뒤 만들어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박정희 의장의 고문을 지냈고 내무부 장관에 올랐다. 4대 이사장 최석채씨도 박 전 대통령 친구였다. 최씨는 문화방송· 회장을 지냈다. 5대 이사장을 지낸 조태호씨는 육영수 여사의 동생 육예수씨의 남편이다. 그는 1965~1968년 장학회 이사를 지냈고, 1968년에는 문화방송 이사를 지냈다. 1983~1988년에는 회장을 겸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2년 1월14일 5·16장학회는 박정희의 정(正)자와 육영수의 수(修)자를 따서 정수장학회로 간판을 바꾸었다. 여전히 박정희·육영수 부부의 개인 재산은 1원도 내놓지 않은 상태였다.  노조는 “정수장학회는 유신세력 집합체였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나온 대구사범 출신들의 놀이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의 동기인 조증출 전 부산문화방송 사장, 왕학수 전 사장이 정수장학회 이사를 지냈다. 


정수장학회에서 20억원 넘게 받아1995년 박근혜 의원은 정수장학회 8대 이사장에 올라 2005년 2월까지 이사장을 지냈다. 박 의원은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있던 1998년 1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연간 1억~2억3520만원을 보수로 받았다. 외환위기 이후 재정이 열악해지자 정수장학회는 2000년 1월 장학생 선발을 담당하는 장학국을 폐지한다. 하지만 같은 시기 비상근직이던 이사장 신분을 상근직으로 바꾸면서 1999년 1억3500만원이던 연봉을 2억5350만원(섭외비 포함)으로 올렸다. 박 의원은 10여 년간 총 20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당시 서울교육청은 “이사장의 연봉이 공익법 취지나 사회통념상 과다하다고 볼 수 있다”라며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는 2002년 3월 박근혜 의원이 1998년과 1999년에 각각 받은 1억원, 1억3500만원의 섭외비 대부분을 재단업무 이외 용도로 사용했고,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보도가 나간 며칠 뒤 박근혜 의원은 소득세 1억2000만원을 자진 납부했다. 

2004년 김지태씨의 후손들이 정수장학회를 되찾겠다고 나섰다. 논란이 일었지만 박근혜 의원은 꿋꿋했다. 인터뷰에서 박 의원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사퇴할 생각은?”이라는 질문에 “잘못된 것이 있어야 사퇴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2005년 2월 박 의원에 이어 최필립 전 리비아 대사가 이사장에 선임됐다. 최 이사장은 1974년 박 전 대통령 의전·공보비서관을 지낸 인물로 박근혜 의원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박 의원이 2002년 한국미래연합을 만들었을 때 운영위원으로 참여했고, 2007년 대선 경선에서도 핵심적인 일을 맡았다고 한다. 이호진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산일보지부장은 “2005년 3월 최 이사장이 취임 직후 노조와 가진 면담 자리에서 ‘박 대표가 최근 미국 방문에 앞서 잠시 조언을 해달라고 해서 만났다. 박 대표가 그 자리에서 장학회를 좀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설명했다”라고 밝혔다. 정수장학회 이사 5명 가운데 3명은 박 의원이 임명한 사람이다.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정수장학회 관계자들은 매년 박근혜 의원의 정치후원금으로 거액을 내놓고 있다. 최필립 이사장 가족은 2004~2010년 박 의원에게 정치 후원금 3000만원을 냈다. 정수장학회 장학생 모임인 ‘상청회’ 김삼천 회장도 2004~2010년 정치 후원금으로 2500만원을 냈다.

2003년 5월 부산일보 사장이 박근혜 정수장학회 이사장에게 장학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박근혜 “이미 사회에 환원된 공익재단”

하지만 정수장학회 이야기만 나오면 박근혜 의원은 자신과 관계없다고 선을 긋는다. 2007년 5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은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정수장학회는 헌납된 재산을 피해자들에게 반납하거나 반납이 안 되면 국가가 대신 배상을 하라”고 밝혔다. 그러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어거지가 많다. (정수장학회는)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이미 사회에 환원된 것이다. 또 환원하란 것도 어폐가 있다. 그런데 자꾸 이런 식으로 틈만 나면 또 (거론)하고 또 (거론)하는 것은 (나를) 흠집 내기 위한 정치 공세일 뿐이다.”

박근혜 의원은 2007년 7월 대선후보 경선 청문회에서 “새 (정수장학회) 이사진이 구성돼 자율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나와 관계가 없다”라고 말했다. 2011년 12월 인터뷰에서는 “이미 사회에 환원된 공익재단이다”라고 말했다. 2012년 3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는 “저와 장학회는 관련이 없다”라고 말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난 7월10일 박근혜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는) 개인의 것이 아니고 공익법인인데 내가 이사장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계없는 이사장을 관두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이건 법치국가에서 언어도단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의원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야권뿐만이 아니다. 새누리당 한 친박계 의원은 “정수장학회가 부모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는데 자꾸 자신과 관련 없다고만 한다. 꿩이 대가리를 눈 속에 처박고 숨었다고 하는 격이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은 “실제 많은 국민이 정수장학회는 박근혜 후보가 주인이란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집에 문패 달아놓고 내 집 아니라 하면 누가 믿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재오 의원은 “박근혜 대표는 5·16 군사 쿠데타나 유신독재의 반민주·반인권성을 겸손히 사과해야 한다. 정수장학회는 내놓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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