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30일 월요일

공덕시장ㆍ망원시장에 나타난 '괴물', 상인들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29일자기사 '공덕시장ㆍ망원시장에 나타난 '괴물', 상인들은…'을 퍼왓습니다.
[늪에 빠진 중소상인·] 대형마트에 포위된 망원시장 상인들

여름날 오후, 시장 입구는 어두웠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공덕시장에는 별도의 조명시설이 없다. 가게들이 내는 불빛이 전부다. 그런데 어둡다. 영업 중인 가게가 그만큼 적다는 뜻이다. 입구 너머로 백열등을 켠 가게 하나가 보인다. 장사를 하는 건가 싶어 가까이 갔다. 하지만 좌판 위 스티로폼 상자는 모두 뚜껑이 닫혀있었다. 손님이 없어 개시를 못 하고 있었다. 가게 앞으로 천막과 스티로폼들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근처에 대여섯 개 가게가 밀집해 있었는데 지금은 장사를 안 한다고 했다. 기자가 최근 며칠 동안 지켜본 시장 풍경이다.

공덕시장은 족발과 튀김으로 유명하다. 저녁이면 출출한 배를 채우러 몰려든 직장인들로 늘 붐볐다. 덩달아 근처 가게도 북적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족발과 튀김 가게는 그럭저럭 장사가 된다. 유명세가 있으니까. 하지만 근처 가게는 파리가 날린다. 손님들은 시장에서 족발은 사먹지만 물건은 사지 않는다. 올해 1월 시장 근처에 대형 마트가 들어온 이후 생겨난 변화다. 손님도 상인도 드문 공덕시장의 여름은 바깥 거리처럼 뜨겁지 않다.

"'공덕시장의 몰락'이 남의 일이 아니다"

공덕시장의 몰락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이들이 많다. 같은 마포구에도 있다. 공덕역과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 떨어져 있는 망원시장. 그곳 상인들이 홈플러스 입점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오는 8월 말 시장과 670m 떨어진 합정역 부근에 홈플러스가 들어설 예정이다. 상인들에게 선택지는 하나였다.

상인회를 중심으로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대책위원회는 입점 저지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곳 상인들에겐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결사반대'라고 쓰여 있는 노란 조끼가 유니폼이나 다름없다. 시장 곳곳에는 홈플러스 입점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점포 문마다 입점 반대 포스터가 붙어있다.

▲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결사반대' 조끼 입은 망원시장 상인들 ⓒ프레시안

얼핏 보면, 현대화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몸짓 같다. '마트가 들어서면 소비자 입장에선 편한 게 사실인데, 전통 시장이 몰락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싶다. 하지만 망원시장 상인회 김진철(47) 총무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들만 살자고 싸우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자칫하면 지역 경제 자체가 무너진다는 것.

"우리 시장이 먹고사는 것도 문제지만 마트가 들어와서 시장이 없어지면 지역경제도 송두리째 죽을 수 있다. 우리는 시장에서 번 돈을 다시 지역에서 소비하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 하지만 홈플러스는 수익을 영국 본사로 다 보내지 않느냐."

대형마트와 SSM의 공세에도 살아남은 시장

망원시장 부근에 대형 마트가 들어선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3년,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상암동에 대형마트인 까르푸 월드컵경기장점(현 홈플러스 월드컵경기장점)이 생겼다. 상인들은 처음엔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며 대형마트 개점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매출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2006년 서울시와 마포구의 지원을 받아 햇볕을 막을 수 있는 아케이드 공사를 실시했다.

망원시장의 변화에 매출도 조금씩 회복되었다. 예전보다는 못해도 살만하다 싶을 무렵, 2007년 망원역에 SSM(기업형 수퍼마켓)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들어섰다. 시장에서 불과 3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익스프레스점은 마트보다 더 직접적으로 시장에 영향을 끼쳤다.

망원시장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최예숙(45) 씨는 "2007년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망원점이 들어선 이후에 매출이 30% 이상 떨어졌다고 하더라. 망원시장에서 오래된 소규모 슈퍼마켓 중에는 점포 정리하고 나간 경우도 많다"며 특히 슈퍼마켓이 큰 타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상인들은 장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홈플러스 월드컵경기장점은 시장과 1.5km 정도 떨어져 있고 익스프레스점은 시장보다 판매 품목이 적어 시장을 찾는 고객이 대거 줄진 않았다. 또 감소하는 시장 유입인구를 회복하기 위한 자구책을 찾았다. 우선과학화다. 요일별 매출을 분석했다. 매출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난 화요일에 10개의 간이 판매대를 시장 중간 길목에 따로 만들어서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팔았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타임 할인판매와 비슷한 전략이었다.

이미 2개나 있는데 또 들어선다고?

하지만 이런 대책으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망원시장 근처에 홈플러스 계열 매장이 2개나 있는 상황에 합정점까지 새로 들어설 경우, 버틸 자신이 없다.

우선 합정점이 시장보다 훨씬 다양한 물건을 팔기 때문에 품목과 관계없이 시장의 모든 점포에 타격 줄 가능성이 높다. 또 홈플러스 월드컵경기장점과는 달리, 합정점은 망원시장에서 67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상인들은 시장으로의 고객 유입이 대폭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실제로 서울시가 한누리창업연구소에 의뢰하여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에 따르면, 홈플러스 합정점이 들어서게 되면 망원 시장을 비롯한 근방 중소상인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분석됐다. 반경 1km 이내의 소매업 545개 점포가 이에 해당하며, 평균 매출액은 24.5%, 영업이익은 66.8%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13년째 아동복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선희(55) 씨는 "요즘 워낙 불경기라 인건비 주고 월세 내고 유지비 빼면 적자 나는 달도 있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상황에 코앞에 홈플러스 합정점까지 들어서면 가게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대책위원회는 지금까지 네 차례의 집회를 열었다. 3월 8일 마포구청 앞 집회를 시작으로 같은 달 18일에는 홈플러스 월드컵점 앞에서, 5월 24일에는 국회에서 항의 집회를 벌였다. 모든 상인들이 철시하고 집회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영국 대사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또 마포 구민을 대상으로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철회 서명운동을 벌여 2만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 망원시장에 걸려있는 홈플러스 입점 반대 현수막 ⓒ프레시안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홈플러스는 요지부동이다. 마포구청 지역경제과 시장관리팀 최용희 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업조정제도를 통해 홈플러스와 망원시장 상인회가 만나 세 차례 조정안을 논의했으나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구청은 홈플러스에 시장과의 상생을 위해 시장에서 취급하지 않는 품목, 예를 들어 전자제품, IT 제품과 같은 것들을 취급하는 전문화 점포로 바꿀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홈플러스는 운영 기술 부족 등의 이유를 들어 전문 점포로 전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근처 주민들은 홈플러스 합정점이 개점하는 것을 기정 사실로 여기는 분위기다. 홈플러스 측의 태도가 워낙 완강한 탓이다. 이용하기 편한 마트가 생긴다니, 주민들은 좋아할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망원동 토박이 중에는 망원시장을 아끼는 이들이 꽤 있다. 이들은 근처에 속속 들어서는 대형 마트 때문에 망원시장이 아예 사라져버릴까 걱정한다.

망원동에서 30년째 거주 중인 노재희(75) 씨의 말이다.

"망원시장에는 거의 매일 같이 나온다. 물건도 싸고, 질도 좋고 상인들도 친절하니 굳이 다른 곳에서 물건을 살 필요가 없다. 그런데 홈플러스가 또 생긴다고 하니 안타깝다. 망원동에는 시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 주민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려서 정책을 추진했으면 좋겠다."

대책위원회는 8월 말로 예정된 홈플러스 합정점의 개점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계획이다. 지금까지 해 왔던 1인시위와 입점 저지 집회를 이어가고, 8월 중에는 합정점 개점 예정지에서 농성할 계획이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상인들의 싸움에는 퇴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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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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