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30일 월요일

나는 올림픽이 불편하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2-07-28일자 기사 '나는 올림픽이 불편하다'를 퍼왔습니다.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에 부쳐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미군 장갑차에 깔려 세상을 떠난 효순이와 미선이를 뒤로 제쳐두고 대 포르투칼전을 인천 월드컵 경기장에 가서 직접 관람한 이후, 난 월드컵과 올림픽에 흥미를 잃었다. 물론 수년간 흘린 피와 땀의 성과로 한국 선수들이 체격, 양성과정, 훈련환경, 정부지원 등의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서구 선수들을 극적으로 이겨내는 승부를 보며 감동을 느끼거나 목이 메어 오는 경험을 가끔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스위스 제네바 출장 중에 열린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장면은 스위스 TV에서도 십수 차례 방송이 되었기 때문에 나 역시도 넋을 잃고 그 연기를 보며 내가 바로 김연아의 나라 KOREA에서 왔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다.

▲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가 들썩이는 이 세계인의 잔치가 난 영 불편하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기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뉴스의 뒷전이고 여론의 관심에서 밀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정부나 자본은 골치 아프거나 시끄러워질 일들을 이 시기에 밀어붙이기도 하고, 꼭 후에 문제제기가 생길 일들이 자연스레 넘어가기도 한다. 앞에서 얘기한 효순이 미선이 사건도 월드컵 기간 그것도 한국 땅에서 열리는 월드컵 기간이 아니었다면 사건 당시 그토록 철저하게 외면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이유를 제외하고도 난 스포츠 선수들에게 열광하고 좌절하고 기뻐하고 분노하는 정서가 편치 않다. 대한민국이 올림픽 종합순위에서 3등을 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이 무엇인가? 심지어 금메달 1개가 은메달 100개보다도 높게 순위가 매겨지는 방식의 순위집계는 오로지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경쟁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가? 이런저런 비판과 돌아봄이 있더라도 여전히 은메달을 딴 선수는 국민들에게 죄인이고 동메달을 딴 선수의 시상식은 TV에서 볼 수가 없다.
솔직히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소위 A매치 경기뿐만 아니라 미국 메이저리그나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한국 국적 선수들의 프로경기에 열광하면서 그들 소속팀의 승리를 마치 자신의 승리인 양 감격하고 신나하는 모습도 난 이해하고 싶지가 않다. 좋아하는 영화배우나 가수를 보고 열광하는 것이나 멋진 스포츠 선수를 보고 환호하는 것은 비슷한 일이기 때문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포츠 선수의 경우 특별하게 ‘국위선양’이라는 엉성한 논리를 대입시키면서 마치 그 선수를 응원하는 일이 애국심을 발휘하는 일인 양 생각하게 된다. 요즈음에는 드라마나 노래의 한류 열풍을 소개하면서도 자긍심이나 애국심 등을 자극하는 요소를 가미한다.
스포츠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일정정도의 성적을 거두었을 때, 국가나 협회에서 수천만 원의 포상도 하고 연금도 주며 병역도 면제시켜 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면 불편하지 않을까? 그들도 우리 소시민들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자신의 업에 충실한 한 사람의 국민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너무 치졸한가. 좋은 성적을 내면 그에 따른 포상을 받고, 좋은 실업팀이나 프로팀에 스카웃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연봉이나 광고수입을 얻는다. 그들에게 그런 것 없이 오로지 국위선양만을 위해 열심히 뛰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물론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로 온갖 설움과 힘겨움을 극복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들도 많고, 아주 극소수 스타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 극소수의 스타들에게 열광하니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남자 선수들이 병역면제 혜택을 받을 때, 같은 또래에 같은 성적을 낸 여자 선수들은 무슨 혜택을 받는지 궁금하다. 어차피 군대는 남자들만 가는 것이니까, 남자들을 면제시켜 주는 것에 여자들은 별 불만이 없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애초에 병역의 의무라는 것은 차별을 조장하고 남성우월주의를 양산하는 제도가 아닌가?
심지어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는 스폰서 기업들에 대한 엄격한 배려가 더욱 도드라진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올림픽 공식후원사가 코카콜라이니 선수들이나 관객들이 펩시콜라를 마셔서는 안 되고, 시상식에는 공식후원사의 로고가 새겨진 옷으로 갈아입고 올라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 세계인의 축제의 승자는 결국 자본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엄청난 액수의 후원금을 받은 조직위원회는 또 엄청난 액수의 중계료를 받고 방송을 송출한다. 그 방송사들은 다시 중계료를 뽑기 위해 광고 수익을 올린다. 이렇게 초국적 자본들과 세계적인 기업들이 열심히 후원을 하고 광고를 해도 결국은 남는 장사이기 때문에 몰려드는 것이 아닌가?
열심히 뛴 선수들보다는 그 선수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마시는 음료가 더 기억에 남는 올림픽이 난 불편하다. 그러나 세계인의 축제라고 하니 딴지 걸 용기는 나지 않고, 온 국민이 열광하는 일에 등한시하면 또 ‘종북좌파’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니 적당히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면서 메달 딴 선수에게 박수를 치면서 “동메달도 세계 3위다. 엄청 잘한 거다”는 식의 트윗이나 날릴 참이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덕진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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