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7일 금요일

"PD수첩 작가 해고, 권력자 눈치 보겠다는 것"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7-27일자 기사 '"PD수첩 작가 해고, 권력자 눈치 보겠다는 것"'을 퍼왔습니다.
[인터뷰]해고된 MBC PD수첩 정재홍 작가

ⓒ이승빈 기자 정재홍 작가

“프리랜서의 세계는 냉정하다. 실력이 없고 도태되면 나가야 되는 것은 납득이 된다. 그러나 회사는 아무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우리를 나가라고 한다. 납득할만한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거리로 내모는 것은 사실상 생존권을 박탈하는 학살이다”

26일 오전 10시 30분께 진행된 인터뷰 내내 특유의 밝은 미소를 유지하던 정재홍 작가의 눈이 갑자기 빨갛게 물들었다. 인터뷰가 진행되기 전 PD수첩 작가들의 해고 사실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에서 동료 작가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때도 담담한 모습을 유지했던 그였지만, 그 역시 억울하고 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MBC는 지난 23일 PD수첩 작가 전원을 해고했다. 그러나 정작 해고대상 작가들은 자신의 해고소식을 회사로부터 듣지 못하고, 소문을 통해 들어야 했다. SBS 작가가 자신이 PD수첩으로 옮길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방송계에 돌았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들은 김현종 시사제작교양국장과의 어려운 만남 끝에 “쇄신을 위해서다”라는 짤막한 이유를 듣고 해고를 통보받았다. 

정재홍 작가는 1995년 MBC에서 일을 시작했고, PD수첩에만 12년 동안 일한 베테랑 작가다. 그는 “언제 짤릴지 모르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항상 이 프로그램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취재를 해왔다”며 “특히 PD수첩 작가로서 이 사회의 곪아터진 문제를 보도하고 권력비리가 개선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고 소회했다.

그러나 2010년 김재철 사장의 취임 이후 그의 자랑이었던 PD수첩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행방이 묘연했던 BBK 가짜편지의 장본인인 신명씨를 찾아 아이템을 발제했지만, 당시 김철진 부장은 인상을 쓰며 ‘이런 것을 못한다’고 말했다”며 “이후 한미FTA, 한진 중공업, 제주해군기지문제 등 주요한 이슈들을 발제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고 회자했다. 이어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고 말하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프리랜서라는 비정규직에게는 보다 엄격한 해고 기준이 적용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비정규직을 이렇게 거리로 내몬 PD수첩이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할 것 같아 슬프다”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처음 해고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잠시 동안 침묵 후) '이제 정말 막가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특히 TV프로그램은 사람 자체가 인프라다. 수십년간 쌓아온 노하우가 축적돼 있고, 그 노하우가 PD수첩을 차별성 있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만든 인프라였다. 프로그램의 인프라인 작가들은 6명이나 한번에 해고한다는 것은 PD수첩이야 어떻게 되든 권력자의 눈치를 보겠다는 것이다.

PD수첩 작가들은 주로 어떤 일을 해왔는가?

사실 많은 분들이 PD수첩에 작가가 있는지 모르신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PD와 작가라는 수레의 두바퀴가 잘 굴러가야 한다는 말이 있듯, 작가 역시 프로그램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PD들과 함께 아이템 선정도 같이하고 섭외와 취재까지 함께 한다. PD가 인터뷰와 촬영을 해오고 우리는 그 영상에 대해 대본을 작성한다. 

ⓒ이승빈 기자 정재홍 작가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아이템을 발제했다 묵살당한 적 있는가?

BBK 가짜편지의 당사자인 신명씨의 행방이 묘연할 때 저희가 그 분을 찾아서 아이템을 제시했다. 당연히 특종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당시 김철진 부장이 인상을 쓰며 “이 아이템 정 작가가 발제한 거지? 이런 아이템 못한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한미FTA, 한진 중공업, 제주해군기지 문제 등 주요한 이슈들을 발제했지만 전부 묵살당했다. 이들은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 “국민들이 외면한다” 등의 이유를 댔지만 PD수첩이 예능도 아니고 시사교양프로그램이라면 당연히 국민들이 알아야 할 것을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 정작 국민들이 PD수첩을 외면한 이유는 이같은 문제들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국장급에서 작가 인사에 개입한 적이 있는가?

방송환경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MBC는 전통적으로 방송제작 자율성이 보장되는 조직이다. PD들이 자신들과 일할 스텝을 꾸리는 것은 MBC의 전통이었다. 당연히 PD들이 자신과 잘 맞는 작가들을 원할 것 아니냐. PD들은 지금도 우리의 해고를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김현종 국장은 작가 해고가 자신의 권한이라고 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PD수첩 작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원래는 1995년 예능 작가로 MBC에 들어왔다. 이후 ‘이야기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시사교양국으로 옮겨 가며 PD수첩을 시작했다. 그동안 많은 돈을 벌거나 빛나는 명예가 있는 자리는 아니지만 PD수첩 작가로서 보람과 자긍심을 많이 느꼈다. 이 사회에 곪아 터진 문제를 보도하고 권력비리가 개선되는 것을 보면 희열을 느꼈다. 

이번 해고로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았는가?

사실 프리랜서라는 직업상 자신의 실력이 모자르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나도 항상 이번 프로그램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일해왔다. 그러나 회사는 이번 해고 과정에서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무지막지하게 6명 전원을 내쳤다. 사실 누구보다 일을 잘하는 PD들이 쫓겨나는 것을 보며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막내작가들까지 한 번에 거리로 내몬 것은 생존권을 빼앗는 것이자 학살이다.

김재철 사장이 퇴진한다면 복직할 수도 있나?

물론 김재철 사장이 퇴진해야겠지만 언론 본래의 기능을 보장할 수 있는 제작현장 시스템이 만들어 져야 한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 사회정화 기능을 해야 하지만, MBC는 김재철 사장과 그가 심어놓은 사람들 때문에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볼귀할 수도 없고 복귀한다 해도 무의미한 일이다. 

ⓒ이승빈 기자 26일 오전 MBC 구성작가 협의회는 서울 여의도 금산빌딩에서 'PD수첩' 작가 전원 축출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MBC 구성작가협의회를 비롯한 방송 4사 작가들이 'PD수첩' 작가 6명 해고에 반발하며 PD수첩 보이콧을 선언할 예정이다.

MBC 구성작가협의회 소속 회원들은 26일 오전 10시께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해고를 PD수첩의 비판정신을 거세하기 위한 폭거로 규정한다"며 "이미 보이콧 선언을 한 MBC 구성작가협의회 회원 70여명 뿐만 아니라 KBS와 SBS 그리고 EBS 작가들까지 보이콧 행동에 동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앞서 MBC구성작가협의회 회원들은 성명을 통해 PD수첩 작가 전원 복귀를 요구하고, 대체 인력으로 투입되는 것을 거부하는 보이콧을 선언한 바 있다.

최미혜 구성작가협의회장은 "이번 해고는 단순히 PD수첩만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 전체에 대한 모욕"이라며 "구성작가협의회 소속 작가들이 같이 대응하고 연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PD수첩에서 '검사와 스폰서' 등을 보도했던 최승호 PD는 "본부장과 PD를 쫓아내고 방송까지 불방시키더니 이제는 작가마저 쫓아냄으로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영혼없는 사람들로 PD수첩을 채우려고 하고 있다"며 "PD수첩을 이렇게 갈갈이 찢어 놓고 정권에 추파를 던지는 저의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성토했다.

ⓒ이승빈 기자 26일 오전 MBC 구성작가 협의회가 서울 여의도 금산빌딩에서 'PD수첩' 작가 전원 축출 규탄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한 작가가 침울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이승빈 기자 26일 오전 MBC 구성작가 협의회가 서울 여의도 금산빌딩에서 'PD수첩' 작가 전원 축출 규탄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작가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대현 기자 kdh@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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