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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1일 화요일

MBC ‘PD수첩’ 결방 방치하는 세력 있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20일자 기사 'MBC ‘PD수첩’ 결방 방치하는 세력 있다'를 퍼왔습니다.
21일 방송 예정 작가 해고 사태로 결방… 외부 압력 아닌 내부 요인에 따른 결방은 처음

결국 PD수첩이 결방될 예정이다.


PD수첩 제작진은 지난 7월 18일 MBC 노조의 업무 복귀 후 방송 일자를 타진한 끝에 오는 21일 방송 재개 날짜를 결정했지만 작가 전원 해고 사태라는 벽에 부딪히면서 방송이 불투명해졌다.


PD수첩은 지난 1월 방송이 나간 후 무려 7개월 가까이 전파를 타지 못하고 있다. 특히 PD수첩 작가 전원을 해고시킨 이후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MBC 경영진이 고의로 PD수첩 결방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 PD수첩이 결방된 전례와 비교해도 이번 결방 사태는 사안이 엄중하다.


PD수첩이 처음으로 결방된 것은 지난 1990년 우루과이 라운드를 다뤘던 방송편이다. 이어 1999년 5월 당시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PD수첩을 방영하고 있는 주조정실을 점거하면서 방영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2005년에는 황우석 논문조작'편의 취재 윤리 논란이 일면서 한 회 결방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4대강 수심 6m의 비밀'편이 국토해양부의 방송중지가처분 신청에 따라 일주일 결방된 사례가 있다.


이 같은 4건의 사례는 모두 외부적인 압력을 받고 불가피하게 결방이 된 사례들인데, 이번 경우는 MBC 경영진이 작가 전원 해고 사태를 촉발시키면서 결방에 이르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파업으로 인해 7개월 동안 방송을 하지 못하다가 결방 사태를 맞게 됐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체감온도가 낮을지 몰라도 외부의 압력이 아닌 내부 요인에 따른 것을 감안하면 초유의 사태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PD수첩 제작진에 따르면 현재 PD수첩팀은 일체의 회의가 사라진 상황이다. 언제 방송을 재개할 것인지 계획도 전무하다. 더구나 작가 전원 해고 사태 해결책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대선까지 PD수첩 결방 사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황대준 한국PD연합회 회장은 "시사매거진 2580의 안철수 아이템 폐기나 PD수첩 작가 전원 해고 사태를 보면 MBC 경영진들이 사태를 키워서 시사탐사보도프로그램의 결방을 방치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MBC 노조도 업무 복귀 이후 김재철 사장 체제의 한 달을 평가하면서 MBC 경영진이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못마땅하게 여겨온 정권에게 충성심을 과시하기 위해 방송 파행을 방치하거나 유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는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근거를 내세워 작가를 해고 시킨 것도 모자라 결방 사태에 대해 책임을 덧씌우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결국 작가를 해고시킨 것은 PD수첩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결정판'이라는 주장이다.
900여명이 넘는 구성작가들이 PD수첩 대체작가 투입을 거부하고 한국방송작가협회가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한 것은 방송작가들의 자존심을 짓밟은 요인이 크지만 PD수첩을 무력화 시켜 공정방송의 뜻을 훼손시킬 수는 없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해고된 PD수첩 정재홍 작가는 "레귤러 프로그램이 이런 일로 결방된다는 것은 엄청난 방송사고로 봐야 한다"며 "어떻게든 작가를 설득시키거나 대체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MBC 경영진은 얼씨구나 잘됐구나 하는 분위기다. 처음에는 시사프로그램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차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예 시끄러운 프로그램의 문을 다 닫아버리겠다는 속셈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PD수첩 결방 사태는 시사매거진 2580 아이템 폐기 지시 등을 포함해 21일 열리는 국장 정책 발표회에서 본격 논의될 예정이다.
김현종 시사제작국장이 나오는 이 자리에서는 PD수첩 작가 해고 사태에 대한 입장과 PD수첩 정상화 방안을 밝히라고 촉구하는 구성원들의 요청이 쇄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승준 PD수첩 PD는 "국장 정책 발표회에서는 어떻게 대답을 하던지 간에 PD수첩 정상화 입장이 논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입장에 따라 해결책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배연규 PD수첩 팀장은 20일 오후 작가 해고 사태 이후 PD수첩 정상화 일정을 묻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이재진 기자 | jinpress@mediatoday.co.kr  

2012년 8월 16일 목요일

황우석 취재 때도 위에서 전화 빗발쳤다, 하지만…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15일자 기사 '황우석 취재 때도 위에서 전화 빗발쳤다, 하지만…'을 퍼왔습니다.
[PD수첩 작가해고 사태 릴레이 기고 1] 그래도 그땐 방송 다 나갔다, 제작진도 무사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진 다음 날, 나는 동료 PD와 술을 마시며 그를 추억했다. 그땐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또한 먼저 간 이들에 대한 예우가 그렇듯, 좋은 추억들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노 대통령에 대해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들이 더 많았다. 나는 소위 ‘노빠’ 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참여정부 당시 ‘PD수첩의 작가’였기 때문이다.  (PD수첩)을 하는 동안, 나는 본의 아니게 참여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우석 사태며 한미 FTA 같은, 당시 정부에게는 달갑지 않은 아이템들이 나를 거쳐 갔다. 특히 황우석 사태는 참여정부에게는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바이오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내세우고, 황우석 박사를 그 선봉에 세워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던 차였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친히 황 박사의 연구실을 방문해 격려하는가 하면, 정부는 그에게 연구비며 제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황 박사는 참여정부의 후광 아래서 온갖 수혜를 다 받으며 ‘거물’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니 (PD수첩)에서 황 박사를 취재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윗분들의 전화가 조용히 빗발친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청와대, 정부 할 것 없이 여러 루트를 통해 취재 중단을 종용해왔고, 나중에 황 박사의 사기극이 들통 날 즈음엔 간접적인 루트를 통해 방송 중지를 ‘요청’해오기도 했다.
그 당시엔 정말 화가 났다. 민주주의 하에서 권력이 언론에 개입하고 크든 작든 압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권력의 입김은 그닥 세지 않았던 것 같다. 취재는 계속되었고 진실은 밝혀졌으며 방송은 나갔다. 그리고 제작진도 무사했다. 그렇게 황우석 사태는 끝이 났다.

MBC

그로부터 3년 후, 나는 (PD수첩)이 겪고 있던 ‘광우병 사태’를 보면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구나..’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피디들이 정권의 직접적인 탄압을 받는 것만도 경악할 일인데, 더욱이 작가에게까지 그 손길이 미치다니. 동료 피디들과 후배 작가의 손에 수갑이 채워지고 유치장에 갇히고 재판정에 세워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문득 상상하기도 했다. 만약 황우석 사태가 이 정권에서 터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했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취재는 접어야 했을 것이고, 방송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며, 그럼에도 방송을 강행했다면 나 또한 저들 못지않은 시련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분명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는 ‘황우석 사태’ 후에도 당시 정부에게 정말이지 ‘몹쓸 방송’을 또 감행했었기 때문이다. 
2006년 에서 다룬 ‘한미 FTA’는 참여정부에게 광우병 방송 못지않게 타격이 컸다. 정부가 공들여 한 홍보 덕에 국민들은 한미 FTA에 대해 무지갯빛 환상을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PD수첩) 방송이 나간 후, 대다수 국민들이 싸늘하게 돌아섰다. 여론조사 결과, 방송 전후 한미 FTA 찬반 비율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내가 대통령이고 정부 관계자라 해도 정말이지 (PD수첩)이 미웠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토록 ‘미운 PD수첩’에 대한 대응은 현 정부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방송 후, 제작진은 청와대로부터 놀라운 제의를 받았다. 한미 FTA를 놓고 제작진과 대통령이 방송으로 ‘끝장 토론’을 해보자는 것.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낸 아이디어라고 했다. 그만큼 노 대통령은 한미 FTA를 절체절명의 과업으로 생각했고, 국민들의 반대보다 지지 속에 추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뜻밖의 제안에 더 놀란 쪽은 제작진이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의 핵심 정책에 대해, 그 정책을 비판한 프로그램의 제작진과 함께, 대통령이 직접 ‘토론’을 하자니...그것을 방송을 통해 그대로 국민들에게 보여주자니...지금 시대라면 상상이 되는가.
그 토론은 결과적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초긴장 속에 토론 준비를 하던 즈음 급작스레 국제적 이슈가 터졌고, 이러저러한 사정이 겹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방송 역사상 길이 남았을 그 토론이 불발된 것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책은 미웠지만, 언론을 대하는 방식만큼은 차마 미워할 수 없었던 대통령. 나에게 있어 노 대통령에 대한 ‘추억’은 그렇게 남아 있다.

황우석 교수. ©MBC

군사정권에서 시작돼 다섯 정권을 거쳐 오는 동안, (PD수첩)은 늘 정권으로부터 ‘미움’ 받는 존재였다. 심지어 국정원인가 어느 기관의 직원은  (PD수첩) 다음 주 아이템이 무엇이고 어떤 내용인가 사전에 파악해 보고하는 것이 임무였다고도 전해진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잘하는 일을 칭찬하기보다 잘못한 일, 감추고 싶은 일들만 콕콕 짚어내어 비판하니, 누가 예뻐할 것인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미움 받는 것은 (PD수첩) 같은 시사프로그램에겐 숙명이다.
중요한 건 그런 ‘미운’ 프로그램을 대하는 정권의 태도다. 지금까지 모든 정권은 대체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전화로 불같이 화를 내고, 방송 내용에 반박하는 보도 자료를 내고, 기자회견을 열어 열심히 성토하고,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고, 심지어 거액을 들여 신문에 반박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제작진을 용서할 수 없다며 협박하고, 권력기관을 동원해 물리적인 탄압을 가해온 적은 없었다.
그사이, 정권과 권력기관으로부터 쏟아지는 그 모든 불만과 압력에 대해 ‘바람막이’가 되어준 건 데스크를 포함한 ‘회사의 윗분’들이었다. 각 정권에 따라 그들이 ‘저 위’로부터 어떤 닦달과 고초를 겪었는지 나는 모른다. 작가에게까지 그 ‘바람’이 전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작가를 할 때 팀장이나 국장에게 어떤 아이템에 대해 ‘절대 하면 안 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다. 내가 들은 건 그저 꼬투리 잡히지 않게 잘 만들어달라는 ‘당부’뿐. 그 당부대로, 작가로서 묵묵히 내 할 일만 하면 그뿐이었다. 그것이 모든 정권으로부터 미움을 받으면서도 (PD수첩)이 22년간 사라지지 않고 ‘무사히’ 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정권 들어 (PD수첩) 제작진들에게 가해지는 폭압의 정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잘하고 있는(너무 잘 해 탈인) PD들을 프로그램에서 내쫓는가 하면, (PD수첩)이 ‘절대 할 수 없는’ 아이템들이 늘어간다. 이 정권에서 또 한 번 논란이 된 ‘한미 FTA’ 아이템은 취재까지 다 끝내놓고 끝내 전파를 타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방송을 막은 건 현 (PD수첩)의 팀장과 국장이라는 분들이다.
그리고...급기야 작가들까지 전원 강제 퇴출이란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도 든다. 단지 ‘미운’ 차원이 아니라 ‘두려운’ 거구나...무엇이 그리 두려운 것인지. (PD수첩)의 힘이 그리 무서운 것인지. 작가의 능력이 그리도 대단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PD수첩) 출신 작가들은 지금의 작태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찾는구나 생각까지 든다.
MBC에서 작가 생활을 한지 올해로 만 20년째. 그 가운데 가장 치열하게, 독하게 일했던 (PD수첩)에서의 3년을 내 이력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마도 (PD수첩)을 거쳐 간 모든 작가들이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보수가 많아서도 조명을 받아서도 아니다. 이 사회에 뭔가 소용이 될 만 한 일을 했다는 자부심, 그거 하나 때문이다. (PD수첩)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작가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왜 이리도 힘든 일이 되었는지...‘PD수첩 아이템’ 같은 지금의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다.  

윤희영 MBC 전 PD수첩 작가 | media@mediatoday.co.kr  

2012년 7월 27일 금요일

"PD수첩 작가 해고, 권력자 눈치 보겠다는 것"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7-27일자 기사 '"PD수첩 작가 해고, 권력자 눈치 보겠다는 것"'을 퍼왔습니다.
[인터뷰]해고된 MBC PD수첩 정재홍 작가

ⓒ이승빈 기자 정재홍 작가

“프리랜서의 세계는 냉정하다. 실력이 없고 도태되면 나가야 되는 것은 납득이 된다. 그러나 회사는 아무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우리를 나가라고 한다. 납득할만한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거리로 내모는 것은 사실상 생존권을 박탈하는 학살이다”

26일 오전 10시 30분께 진행된 인터뷰 내내 특유의 밝은 미소를 유지하던 정재홍 작가의 눈이 갑자기 빨갛게 물들었다. 인터뷰가 진행되기 전 PD수첩 작가들의 해고 사실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에서 동료 작가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때도 담담한 모습을 유지했던 그였지만, 그 역시 억울하고 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MBC는 지난 23일 PD수첩 작가 전원을 해고했다. 그러나 정작 해고대상 작가들은 자신의 해고소식을 회사로부터 듣지 못하고, 소문을 통해 들어야 했다. SBS 작가가 자신이 PD수첩으로 옮길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방송계에 돌았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들은 김현종 시사제작교양국장과의 어려운 만남 끝에 “쇄신을 위해서다”라는 짤막한 이유를 듣고 해고를 통보받았다. 

정재홍 작가는 1995년 MBC에서 일을 시작했고, PD수첩에만 12년 동안 일한 베테랑 작가다. 그는 “언제 짤릴지 모르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항상 이 프로그램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취재를 해왔다”며 “특히 PD수첩 작가로서 이 사회의 곪아터진 문제를 보도하고 권력비리가 개선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고 소회했다.

그러나 2010년 김재철 사장의 취임 이후 그의 자랑이었던 PD수첩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행방이 묘연했던 BBK 가짜편지의 장본인인 신명씨를 찾아 아이템을 발제했지만, 당시 김철진 부장은 인상을 쓰며 ‘이런 것을 못한다’고 말했다”며 “이후 한미FTA, 한진 중공업, 제주해군기지문제 등 주요한 이슈들을 발제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고 회자했다. 이어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고 말하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프리랜서라는 비정규직에게는 보다 엄격한 해고 기준이 적용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비정규직을 이렇게 거리로 내몬 PD수첩이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할 것 같아 슬프다”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처음 해고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잠시 동안 침묵 후) '이제 정말 막가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특히 TV프로그램은 사람 자체가 인프라다. 수십년간 쌓아온 노하우가 축적돼 있고, 그 노하우가 PD수첩을 차별성 있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만든 인프라였다. 프로그램의 인프라인 작가들은 6명이나 한번에 해고한다는 것은 PD수첩이야 어떻게 되든 권력자의 눈치를 보겠다는 것이다.

PD수첩 작가들은 주로 어떤 일을 해왔는가?

사실 많은 분들이 PD수첩에 작가가 있는지 모르신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PD와 작가라는 수레의 두바퀴가 잘 굴러가야 한다는 말이 있듯, 작가 역시 프로그램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PD들과 함께 아이템 선정도 같이하고 섭외와 취재까지 함께 한다. PD가 인터뷰와 촬영을 해오고 우리는 그 영상에 대해 대본을 작성한다. 

ⓒ이승빈 기자 정재홍 작가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아이템을 발제했다 묵살당한 적 있는가?

BBK 가짜편지의 당사자인 신명씨의 행방이 묘연할 때 저희가 그 분을 찾아서 아이템을 제시했다. 당연히 특종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당시 김철진 부장이 인상을 쓰며 “이 아이템 정 작가가 발제한 거지? 이런 아이템 못한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한미FTA, 한진 중공업, 제주해군기지 문제 등 주요한 이슈들을 발제했지만 전부 묵살당했다. 이들은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 “국민들이 외면한다” 등의 이유를 댔지만 PD수첩이 예능도 아니고 시사교양프로그램이라면 당연히 국민들이 알아야 할 것을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 정작 국민들이 PD수첩을 외면한 이유는 이같은 문제들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국장급에서 작가 인사에 개입한 적이 있는가?

방송환경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MBC는 전통적으로 방송제작 자율성이 보장되는 조직이다. PD들이 자신들과 일할 스텝을 꾸리는 것은 MBC의 전통이었다. 당연히 PD들이 자신과 잘 맞는 작가들을 원할 것 아니냐. PD들은 지금도 우리의 해고를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김현종 국장은 작가 해고가 자신의 권한이라고 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PD수첩 작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원래는 1995년 예능 작가로 MBC에 들어왔다. 이후 ‘이야기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시사교양국으로 옮겨 가며 PD수첩을 시작했다. 그동안 많은 돈을 벌거나 빛나는 명예가 있는 자리는 아니지만 PD수첩 작가로서 보람과 자긍심을 많이 느꼈다. 이 사회에 곪아 터진 문제를 보도하고 권력비리가 개선되는 것을 보면 희열을 느꼈다. 

이번 해고로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았는가?

사실 프리랜서라는 직업상 자신의 실력이 모자르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나도 항상 이번 프로그램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일해왔다. 그러나 회사는 이번 해고 과정에서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무지막지하게 6명 전원을 내쳤다. 사실 누구보다 일을 잘하는 PD들이 쫓겨나는 것을 보며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막내작가들까지 한 번에 거리로 내몬 것은 생존권을 빼앗는 것이자 학살이다.

김재철 사장이 퇴진한다면 복직할 수도 있나?

물론 김재철 사장이 퇴진해야겠지만 언론 본래의 기능을 보장할 수 있는 제작현장 시스템이 만들어 져야 한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 사회정화 기능을 해야 하지만, MBC는 김재철 사장과 그가 심어놓은 사람들 때문에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볼귀할 수도 없고 복귀한다 해도 무의미한 일이다. 

ⓒ이승빈 기자 26일 오전 MBC 구성작가 협의회는 서울 여의도 금산빌딩에서 'PD수첩' 작가 전원 축출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MBC 구성작가협의회를 비롯한 방송 4사 작가들이 'PD수첩' 작가 6명 해고에 반발하며 PD수첩 보이콧을 선언할 예정이다.

MBC 구성작가협의회 소속 회원들은 26일 오전 10시께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해고를 PD수첩의 비판정신을 거세하기 위한 폭거로 규정한다"며 "이미 보이콧 선언을 한 MBC 구성작가협의회 회원 70여명 뿐만 아니라 KBS와 SBS 그리고 EBS 작가들까지 보이콧 행동에 동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앞서 MBC구성작가협의회 회원들은 성명을 통해 PD수첩 작가 전원 복귀를 요구하고, 대체 인력으로 투입되는 것을 거부하는 보이콧을 선언한 바 있다.

최미혜 구성작가협의회장은 "이번 해고는 단순히 PD수첩만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 전체에 대한 모욕"이라며 "구성작가협의회 소속 작가들이 같이 대응하고 연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PD수첩에서 '검사와 스폰서' 등을 보도했던 최승호 PD는 "본부장과 PD를 쫓아내고 방송까지 불방시키더니 이제는 작가마저 쫓아냄으로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영혼없는 사람들로 PD수첩을 채우려고 하고 있다"며 "PD수첩을 이렇게 갈갈이 찢어 놓고 정권에 추파를 던지는 저의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성토했다.

ⓒ이승빈 기자 26일 오전 MBC 구성작가 협의회가 서울 여의도 금산빌딩에서 'PD수첩' 작가 전원 축출 규탄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한 작가가 침울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이승빈 기자 26일 오전 MBC 구성작가 협의회가 서울 여의도 금산빌딩에서 'PD수첩' 작가 전원 축출 규탄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작가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대현 기자 kdh@v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