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30일 월요일

예능 출연, 안철수는 되고 당신은 왜 안 되느냐고?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7-29일자 기사 ' 예능 출연, 안철수는 되고 당신은 왜 안 되느냐고?'를 퍼왔습니다.
[기고] 최지연 문화평론가 "정치판의 예능엔 감동도 공익도 없다"

지난 7월 23일 SBS 월요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출연했다. 대권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안철수 원장이기에 방송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관심만큼이나 실제 시청률도 18.7%로 (힐링캠프) 자체 최고 시청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안 원장의 삶이나 사상, 철학 등에 대한 관심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핵심은 안철수 원장이 공식적으로 대선출마 여부를 밝힐 것인가 였을 것이다.

안철수 원장의 (힐링캠프) 출연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볼 멘 소리들이 쏟아졌다. 특히 박근혜 대세론을 밀어붙이던 새누리당은 패닉에 빠진 듯이 보인다. 속된 말로 얼마나 ‘똥줄’이 탔으면 새누리당은 기자 브리핑까지 하면서 방송사의 형평성 문제를 시비 걸고 ((힐링캠프)에) 야권에서 2명 나왔으니 여권에서도 2명이 나가야 한다는 초등학생 수준의 주장을 해대기까지 했다. 새누리당 ‘기관지’ 조중동은 “부정출발”, “예능 대선”, “방송 정치중립성”이란 말들을 뱉어내며 안 원장과 (힐링캠프)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었다.

긴장할 만도 하다. 이전에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상임고문이 (힐링캠프)에 출연한 이후 지지율이 급상승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철수 원장의 (힐링캠프) 출연 이후 지지율이 ‘대세’ 박근혜 의원을 앞선 것으로 조사되었다.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낱’ 예능 프로그램이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선마저 들었다 놨다 하며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조짐은 오래전부터 보였다. 안철수 원장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으면서 대권후보로까지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은 (힐링캠프)에서도 밝혔듯이 2009년 KAIST 교수 시절 MBC의 예능 프로그램인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의 출연에 기인한다. 지난 1월 박근혜 의원과 문재인 상임고문이 (힐링캠프)에 출연해 이미지 제고에 긍정적 효과를 얻었다. 그러자 이재오 의원과 정세균 의원은 케이블 TV 예능 프로그램인 (SNL코리아)에 출연해 꽁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여야의 다른 대선주자들도 (힐링캠프) 출연을 원했다고 하고, 어떤 정치인들은 KBS ‘개그 콘서트’와 같은 프로그램에 방청객으로라도 출연 의사를 타진해올 정도라고도 한다.

예능 프로그램은 최근 들어 다양하게 변화하면서 높은 인기를 누리며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식자층에 의해 무시당하는 측면이 있다. 보도와 시사, 교양 프로그램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교양을 높여주는 진중하고 고상한 것이라면 예능은 말초적이고 수준이 낮아 생각없는 사람 혹은 젊은 애들이나 보는 가볍고 유치한 것이라는 오래된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가볍고 유치’한 예능 프로그램에 ‘진중하고 고상’한 정치인들이 앞 다투어 출연하려는 모습이 더 ‘예능’적으로 보인다. 출연을 문의했다 거절당한 정치인들이 ‘왜 나는 안 되고 안철수는 되는가’ 라며 투정(?)을 부리고, 여당이 기자회견을 열어 여권 후보 한 명 더 출연시켜달라고 떼(?)쓰는 것이 그야말로 ‘예능’이다.

하지만 즐겁지도 재밌지도 않은 ‘예능’이다. TV의 예능 프로그램은 진화하고 발전하여 즐거움과 재미뿐만 아니라 의미와 감동을 선사하고 공익까지 추구하고 있는데 정치판의 ‘예능’은 감동도, 공익도 없다. 그 어느 것도 주지 못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은 종영되고 퇴출되는데 이 ‘재미없는 예능’은 막을 내리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이 재미없으면 채널을 돌린다. 정치판을 보고 있으면 채널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다. 요즘은 다이얼이 아니라 리모콘으로 채널을 바꾸기 때문에 소리도 나지 않는다.)

(힐링캠프) 안철수 편도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다.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도 ‘폭탄 발언’도 없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의 은근한 기대대로 안철수 원장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 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그 프로그램의 시청율도 더 높았을 것 같고, 현실의 예능도 더더욱 재미있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범생이’ 같은 안철수 원장이 행할 것 같은 행보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예능 프로그램으로 ‘뜬’ 사람 아닌가. 거기다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혹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고 평가 혹은 비난 받는 판인데 아예 다른 대선 후보들의 진부한 출마 방식마저 신선하게 바꿔버리게 말이다. 그런데 안철수 원장이 비록 예능 프로그램의 강력한 수혜자이긴 한데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거나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최지연·문화평론가 |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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