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9일 일요일

"소화기 뿌리고 쇳덩어리 던지고...죽음의 공포 느꼈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7-28일자 기사 '"소화기 뿌리고 쇳덩어리 던지고...죽음의 공포 느꼈다"'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안산 SJM 용역 침탈 부상자 한정록

ⓒ이승빈 기자 27일 저녁 안산 SJM 용역 침탈 당시 머리 부상을 당해 동안산병원에 입원중인 한정록(49)씨를 찾았다. 한 씨가 부상 당시 입었던 피묻은 옷을 꺼내보이고 있다.

“[긴급] 용역깡패 투입 확실 지회로 긴급히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SJM 지회”

금속노조 SJM 지회 지도위원인 한정록(49)씨가 긴급한 문자를 받은 것은 27일 새벽 4시경 이었다. 공장에 도착한 것은 4시 반. 마치 경찰처럼 헬멧을 쓰고 곤봉과 방패를 든 300명 가량의 용역들은 인원을 나눠 정문과 후문으로 동시에 침탈을 시도하고 있었고 야간 농성조와 지도부 등을 합쳐 80여명에 불과한 비무장 조합원들이 이들의 공장 진입을 막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용역들은 공장 침탈이 익숙한 듯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반면 조합원들에겐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그동안 공장을 다니면서 이런 식의 노사 분규를 겪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군대도 아닌 이상 훈련받은 바도 없었다. 

한씨는 당시 상황을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고 회상했다. 

“진격! 진격!”

노무사와 용역 책임자의 명령과 함께 용역들은 상대적으로 경계가 허술했던 정문을 통해 무자비한 침탈을 시작했다. 정문 옆 경비실 창문을 깨고 공장 안으로 진입한 용역들은 소화기를 뿌리며 조합원들을 압박했고 희뿌연 연막 사이로 곤봉 세례가 이어졌다. 말 그대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에서 맨몸인 조합원들은 맞고 깨지고 터지며 하염없이 밀려났다.

용역들의 소화기에 대항해 조합원들은 락카를 가져다 용역들에게 뿌려대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소화기를 뿌리고 연막에서 허우적대는 조합원들을 곤봉으로 두들겨 패기를 반복하며 조직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용역들에게 조합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것뿐이었다.

“칼로 배때지를 쑤셔버린다”, “잡히기만 해봐 내가 죽여줄게” 등 깡패들이나 할 욕설을 하며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용역들을 피해 조합원들은 살기 위해 공장 안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씨가 부상을 당한 것은 이때. 용역들의 모습에 공황 상태에 빠진 한 조합원을 공장 안으로 들여보내는 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목줄기를 타고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 용역이 한 씨의 뒤통수를 철제 소화기로 내려친 것. 조합원들은 한씨를 공장 2층으로 데려가 지혈을 하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용역을 피해 공장 2층 사무실로 피신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셈이다. 사실상 침탈은 마무리됐음에도 용역들은 사무실을 포위한 채 조합원들에게 소화기를 뿌리고 30cm 크기의 쇳덩어리인 제품을 집어던지며 폭력의 향연을 마음껏 즐겼다. 퇴로가 막힌 채 폭력이 계속되자 조합원들 중 몇몇은 사무실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뛰어내려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상처가 워낙 깊은 탓에 지혈이 되지 않았던 한씨는 결국 병원으로 후송됐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꿈 같은 상황이 구급차로 가는 내내 스쳐지나갔다. 

ⓒ이승빈 기자 27일 저녁 안산 SJM 용역 침탈 당시 머리 부상을 당해 동안산병원에 입원중인 한정록(49)씨를 찾았다. 한 씨가 당시 새벽 온 문자를 보여주고 있다.

민홍기 노무관리이사 부임과 함께 시작된 갈등

한씨는 SJM은 매년 임단협이 별탈없이 합의에 이르는 등 노사관계가 원만했다고 했다. 특히 지난해 9월경 주간2교대 근무 합의 당시 조합은 생산량 감소를 우려해 이전보다 생산 물량을 늘려달라는 사측의 요구를 수용하며 협상을 마무리 짓기도 했다. 조합원들의 불만은 다소 있었지만 노조는 ‘노동자 건강권’이라는 대승적인 목표를 성취했다는데 의의를 뒀다. 

하지만 이미 3년전 민홍기 노무관리이사가 부임하면서 사측의 탄압은 서서히 고조되고 있었다. 조합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규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공장 부품 생산을 외주화 하는 등 사측의 도발이 계속됐다. 현 지도부 또한 출범과 동시에 부지회장이 징계를 당하는 등 탄압이 이어졌다. 

한씨는 “조합원들 중 20년가량 근무한 장기 근속자들이 많다보니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한가족 같은 회사를 많이 도와주자는 입장이 많았다”며 “회사에서 2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노조를 향후 경영의 걸림돌로 생각해 와해시키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승빈 기자 27일 저녁 안산 SJM 용역 침탈 당시 머리 부상을 당해 동안산병원에 입원중인 한정록(49)씨를 찾았다. 한 씨는 용역이 휘두른 소화기에 뒤통수를 맞아 6cm 가량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마스크도 없이 석면 작업하며 키운 회사인데

1990년에 입사한 한 씨는 올해로 23년째 건설 기계, LNG 선박 등을 다루는 3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다. 당시 급여를 때먹곤 하는 공장들이 많았지만 SJM은 꼬박꼬박 급여가 나오는 괜찮은 회사 중 하나였다. 결혼을 하고 어린 자식이 있는 상황에서 SJM은 참으로 고마운 곳이었다. 

고된 노동의 나날이 이어졌다. 아침 8시부터 다음날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살인적인 철야 근무를 일주일에 두세번 꼴 해야했고, 변변한 안전장비도 없었다. 심지어 석면 작업을 할 때도 마스크 한 번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다. 위험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던 중 SJM에 민주노조가 세워졌다. 어용노조가 있던 시절 노조 사무실은 문을 세 개나 열고서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폐쇄적인 관리자들의 사랑방에 불과했다. 막상 용기를 내 들어가도 주눅이 들어 변변한 하소연도 못하곤 했다. 하지만 노조가 조합원들을 위한 공간으로 변하자 노동자들의 인식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씨는 회상했다. 

이전까지 억울함이 있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던 노동자들이 노조로 모이기 시작했다. 억울하게 퇴사당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노조의 요구에 따라 안전장비 착용이 의무화되고 교육도 실시됐다. 공장의 각종 소음에서 청력을 보호해주는 귀마개 또한 노조의 요구로 이뤄낸 성과다. 

한씨는 노조 지회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다. 마지막 지회장 임기를 끝낸 것도 어느덧 7년 전. 처음 조조 활동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노조하려면 이혼부터 해라. 왜 굳이 나서냐”며 뜯어 말리던 아내는 어느덧 조합원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해 주는 든든한 응원군이 되었다. 

23년간 한씨에게 회사는 생계의 터전이자 전부였다. 비록 넘치는 생활은 아니지만 땀흘려 일한 덕에 아내와 가정을 꾸려 대학생인 자녀 둘을 키워낼 수 있었다. SJM 김용호 회장은 사원들이 모이는 행사 때마다 모두가 한가족임을 말했다, 한씨는 그 말이 고마웠고 철썩같이 믿었다.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상부상조하는 선례가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이 27일 새벽이 오기 전까지의 일이다.

ⓒ이승빈 기자 27일 저녁 안산 SJM 용역 침탈 당시 머리 부상을 당해 동안산병원에 입원중인 한정록(49)씨를 찾았다. 한 씨는 배신감을 넘어 망연자실함을 느낀다고 했다.

가족이라면서 왜 식구를 때려?

동안산병원으로 후송돼 머리를 9바늘이나 꽤맨 한씨는 말도 못할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한가족이라고 말하던 회사가 용역을 동원해 하루아침에 적으로 돌변한 상황. 비무장에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하는 조합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 회사에 평생을 바친 그들에게 27일 새벽의 일은 평생에 다시없을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한씨의 딸은 자초지종을 듣고 “가족이라면서 왜 식구를 때려?”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한씨가 재차 “한가족처럼 일해 왔지만 우리를 걸림돌이라고 생각한 거 같다”고 말했지만 딸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딸에게 한씨는 평생을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온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다. 이런 아버지를 회사가 용역을 동원해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 한씨의 딸은 차마 울지도 못했다고 한다. 

27일 새벽의 일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한씨도 마찬가지다. 용역이 침탈하고 철제 부품이 날아다니는 아수라장을 23년 만에 처음 경험한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회사를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헛갈린다는 한씨는 피를 흘리며 공장안의 아수라장을 지켜보는 내내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우릴 가족이라고 했던 회사가 정말 이렇게 했을까?”

이승빈 기자 cadenza123@naver.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