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31일 화요일

MB정부, 재벌 민자발전 수익 챙겨주려 한전 쥐어짰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30일자 기사 'MB정부, 재벌 민자발전 수익 챙겨주려 한전 쥐어짰나'를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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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소액주주 소송…증거 제출한 한전 직원 진술서 보니
 명절·선거 등 민심 동향 따라
전기요금 인상 폭·시기 좌지우지
한전, 현정부들어 누적적자 8조원

민자엔 ‘원료값 연동 판매액’ 특혜
매년 영업이익률 15~30% ‘호황’
“전력수급 왜곡…공공성 악화시켜”

“2010년 초부터 지식경제부와 언론을 상대로 전기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설득했습니다. 원유값이 너무 치솟아 적자가 갈수록 누적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력수급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 반응도 호의적이어서 저희는 8.7% 인상안을 의결해 제출했죠. 기획재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결국 3.5%로 낮춰진 인상안이 확정돼 청와대에 보고됐습니다. 그런데 전력 수요가 피크에 가까운 7월28일에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있다는 겁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서 선거 뒤에 전기요금을 올릴 것을 요청했고, 결국 8월1일에야 3.5% 인상할 수 있었어요.” 한국전력 소액주주들이 정부와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한전 직원들의 진술서가 최근 증거로 제출됐다. 30일 가 단독 입수한 진술서에는 불합리한 국내 전력요금 체계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 ‘정치논리’ 따라 폭·시기 좌지우지
진술서 내용을 보면, 전기요금 인상 범위와 시기를 좌지우지하는 건 결국 정부다. 한전 이사회에서 인상안을 결정해 올리더라도, 지경부가 1차로 힘겨루기를 하고 다시 재정부 협의를 거치면서 인상 폭이 최종 결정된다. 또 이렇게 확정된 인상안이 청와대에 보고되면, 추석·재보궐선거 등 민심 동향에 따라 인상 시기가 결정된다. 생산 원가의 변동이 매출액 결정에 반영되기까지 ‘옥상옥’의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전의 한 직원은 진술서에서 “한전이 이사회에서 의결하는 건 ‘짜고 치는 고스톱’일 뿐이에요”라고 털어놓았다. 전기사업법이 정하고 있는 적정투자보수·총괄원가 등 한전의 기대수익은 계속해서 무시된 셈이다.

■ 현 정부 들어 한전 적자 눈덩이
물론 전기요금 결정은 공공성을 강하게 띠는 정책적 판단 영역이다. 때문에 어느 정도 적자를 감수하고 이를 재정으로 메우는 일은 불가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눈에 띄는 건 이명박 정부 들어 한전의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점이다. 실제 소송 기록을 살펴보면, 한전의 법정 기대수익을 뜻하는 ‘총괄원가’에서 한전의 수입총액을 뺀 금액(적자 개념)은 2007년 1조9328억원에서 지난해 6조5228억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한전 재무제표상의 당기순이익도 2007년 1조6000억원에서 2011년 -3조5100억원으로 악화됐다. 2012년 상반기 당기순손실은 2조8960억원에 이르러, 누적적자만 8조원이 넘게 쌓였다. 서민물가를 잡겠다는 정부 기조가 한전에는 적자 누적을 강요했고, 이제는 자산 건전성마저 한계상황에 다다른 셈이다. 한전 관계자는 “물가관리라는 목표도 공공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밀어붙여야 하는데, 이제는 한전의 기초체력이 바닥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 민간업자에겐 특혜, 한전만 봉?
더 큰 문제는 이런 물가관리 기조가 한전에만 적용됐을 뿐, 민간업자에겐 엄청난 특혜를 안겨줬다는 데 있다. 정부는 유독 민자발전사가 생산하는 전기에 대해서만은 적정이윤을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비싼 전기값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한전의 자회사인 남동·중부발전 등 ‘기저발전’에는 싼값에 전기를 팔도록 하면서, 민자발전사에는 원료값에 연동된 판매액을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이 탓에 민자발전소를 운영하는 포스코·지에스(GS)·에스케이(SK) 등 재벌 계열사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해마다 영업이익률 15~30%에 이르는 호황을 누려왔다. 삼성물산·대우건설 등 24개 기업이 내년부터 시행될 ‘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맞춰 민자발전 운영을 신청하고 나선 것도 알토란 같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전력노조의 한 관계자는 “엠비 물가를 강조하며 한전의 적자구조가 심화됐는데, 이 와중에 민자발전사들은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것은 모순 아니냐”고 비판했다.

■ ‘전력 공공성’ 악화 부메랑
이런 왜곡된 ‘전력수급 이중구조’는 결국 ‘전력 공공성’의 악화로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한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은 “2007년 이전에는 한전이 적정이윤을 그런대로 보장받는데, 2008년 이후 정부의 가격 규제가 제대로 작동이 안 돼 부담이 누적됐다”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도 “예를 들어 송배전에 큰 비용이 드는 산간 도서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재정 부담과 연결된다”고 말했다.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민자발전의 이윤을 어느 정도 제한하고, 전력 수용의 60% 정도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린다면 전력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한전의 기초체력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이날 한전 김중겸 사장은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식경제부가 권고한) 5% 미만 인상안을 수용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인상률이 5% 미만이면 적자가 2조원 정도 더 추가되겠지만, 국가와 유럽의 재정위기·물가관리·국민정서 등을 고려해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현웅 이승준 기자 goloke@hani.co.kr

주주-한전-정부 힘겨루기

주주 “적자누적 책임져라
”김쌍수쪽 “정부가 지시
”정부 “의견제시 했을 뿐”

한전 직원들이 낸 진술서가 증거로 채택됨에 따라, 소송의 향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전의 소액주주 14명은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법에 김쌍수 전 사장한테 2조8000억원, 정부를 상대로는 7조2028억원을 한전 쪽에 물어내라는 소송을 냈다. 정부가 원가에도 못미치는 전기요금을 강요해 적자가 누적돼 왔고, 이에 주주들도 배당과 주가 등에서 손해를 봤다는 논리다. 1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이 소송은 다음달 24일 최종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원고인 소액주주들의 논리는 간명하다. 김 전 사장이 전기요금 인상 노력을 회피했다면 이는 경영 책임을 질 일이고, 정부가 실질적으로 전기요금을 좌지우지했다면 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기사업법과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은 한전이 신청한 인상안을 지식경제부가 기획재정부와 협의한 뒤 인가 여부를 결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문제는 법률상 ‘인가’ 처분은 신청자가 제출한 안건에 대해 가·부 판단만 할 수 있는 소극적 권한이라는 점이다. 요금 인상 시기나 인상폭을 정부 마음대로 결정했다면, 이는 ‘인가’ 처분 범위를 벗어난 탈법 행위라는 것이다.이에 대해 정부는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안에 대해 반려를 하면서 요금폭에 대한 희망을 전달하긴 하지만, 이는 지시나 요구가 아니라 그야말로 의견 제시나 권유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물가상승률과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난감한 처지 역시 재판부를 설득할 수 있는 정황으로 작용할 수 있다.김 전 사장 쪽은 “정부가 모든 것을 지시했고, 나는 결정권이 없었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배상 책임에서 자유롭기 위한 선택이다.이름 밝히기를 꺼려한 한 변호사는 “진술서 내용이 전기요금 결정 과정에 정부 입김이 어느만큼이나 들어가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어, 정부 쪽에 난감한 상황을 올 수도 있다”며 “결국 재판부가 정부의 정책 결정 권한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소송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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