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9일 일요일

김재철 졸렬함의 끝은 어디인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30일자 제921호 기사 ' 김재철 졸렬함의 끝은 어디인가'를 퍼왔습니다.
[초점] 54명이 다른 부서로 배치된 보복인사… 노조 “명백한 단협 위반”, 가처분 신청 계획

» 170일에서 멈춘 파업시계 엠비시노조 조합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사옥에서 조합원 총회를 마친 뒤 빠져나오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이 졸렬함의 끝은 어디인가. 무너진 집안 일으켜보겠다며 풍찬노숙하다 돌아온 식구들 뒤통수에 무능한 가장이 쇠방망이를 휘두른 격이었다. 타이밍부터 기가 막혔다. MBC 노조원들이 170일 동안의 파업을 접고 복귀를 선언한 날(7월17일) 밤, 사 쪽은 기다렸다는 듯 대규모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기획홍보본부 안에 미래전략실을 새로 만들고, 보도국 안에 중부권 취재센터와 주말뉴스부를 신설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라디오뉴스부를 주말뉴스부에 흡수 통합하고, 다큐멘터리제작부를 교양제작국에 통합시키는 안도 포함됐다.

풍문이 사실로… 최대 피해자는 보도국

조합원들 분노에 불을 지른 건 조직개편안 발표 하루 뒤(18일) 단행된 무더기 인사 발령 조처였다. 파업에 참여한 770명 가운데, 54명의 조합원이 맡고 있던 업무와 무관한 다른 부서로 배치됐다. 파업 복귀 직후 사 쪽이 대규모 보복 인사에 나설 것이라는 풍문이 사실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최대 피해자는 보도국 소속 조합원들이었다. 25명이 비보도 부서와 지역 지사로 밀려났다. 신사옥건설국으로 발령난 장준성 기자, 용인 드라미아개발단으로 전보된 전종환 기자가 대표적이다. 이세옥 기자는 서울경인지사 제작사업부로, 박소희 기자는 서울경인지사 인천총국으로 전보 조처됐다. 파업 기간 중 이미 징계를 받아 업무에서 배제된 30명(해고 3명, 정직 13명, 대기발령 14명)을 포함하면 전체 취재 인력(100명)의 절반 이상이 업무에서 밀려난 것이다.
PD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업 기간 해고 2명, 정직 4명, 대기발령 13명의 ‘징계 폭탄’을 맞았던 시사교양국은 이번에 2명의 조합원이 경인지사 제작사업부와 신사옥건설국으로 전보됐다. 의 전·현직 PD들도 표적이 됐다. 교양제작국 소속이던 조능희 PD는 사회공헌실로, 외주제작국 소속이던 송일준·오동희 PD는 미래전략실과 신사옥건설국으로 발령났다.
파업에 적극 참여한 아나운서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신동진 아나운서가 사회공헌실, 허일후 아나운서가 미래전략실로 배치됐고, 김상호·김범도 아나운서는 서울경인지사 수원총국으로 발령났다. 파업 기간 중 징계성 대기발령을 받았던 노조원 56명 전원에겐 ‘자택 대기’ 명령이 새로 떨어졌다. 노조는 사무실 출근을 원천 봉쇄해 다른 조합원들과의 일상적 접촉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했다.
사 쪽은 조직 개편에 대해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신시장과 신상품을 개척하기 위해 미래 전략을 수립하고, 세종시 출범으로 늘어난 중부권 뉴스 수요에 대처하기 위한 조처”라고 밝혔다. 인사 발령에 대해선 “파업에 참여했던 사원들이 원래 업무로 복귀하게 되면, 파업 기간 중 제작 현장을 지킨 사원들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 조처가 조직 내 갈등 예방 차원임을 강조했다. 조합원들 반발을 예상한 듯, 복귀자들의 추가 행동에 대한 강경 대처 방침도 명확히 했다. “노조원들의 업무 복귀를 환영하지만 불법적인 행동은 사규에 따라 엄단할 방침이다. 상사의 지시에 불응한다든가 동료들에 대한 위협 행위가 발견되면 사규에 따라 대응하겠다.”(7월18일 )

무효판결 받고 복귀시킨 이력 있어

노조는 이번 조처를 “악랄한 보복 인사”라며 ‘원천 무효’를 선언했다. “이번 보복 인사는 김재철 사장이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기자와 PD, 아나운서들에 대한 보복 인사를 통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의중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인사 전체를 무효화하는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7월18일 노조 성명)
하지만 노조가 즉각적인 대응 행동에 나서기엔 부담이 적지 않다. 장기 파업에 따른 조합원들의 피로감이 한계치에 이른데다, 파업을 풀어 조직 내부의 긴장도 역시 현저하게 이완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노조가 성명에서 인사 무효 투쟁의 돌입 시점을 “다음달 김재철 사장이 물러나고 후임 사장이 인선될 경우”라고 조건을 단 것도, 우선 조직 내부의 역량을 추스르며 명분을 축적하는 게 먼저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우선 법적 대응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인사가 단체협약과 실정법, 법원 판례를 위반한 만큼 법원에 ‘부당전보 취소’ 가처분 신청을 낸 뒤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MBC의 노사 단체협약(26조 5항)은 “직종 변경 등 주요 인사 이동시에는 적재적소와 기회균등, 욕구 충족의 원칙에 따라야 하고 조합원의 의견을 참작해 사전에 노조에 통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인사 발령에 조합원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은 것은 물론 사전에 그 어떤 협의나 통보도 없었다”며 “명백한 단협 위반이기 때문에 법적 대응을 하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실제 MBC 사 쪽은 지난해 이우환 PD를 용인 드라미아개발단으로, 한학수 PD를 경인지사로 발령냈다가 법원으로부터 1심에서 무효 판결을 받고 이들을 원래 부서로 복귀시킨 바 있다. 노조는 인사 발령 조합원 전원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에 필요한 당사자 동의를 얻은 뒤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낼 계획이다. 노조 관계자는 “심리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법원 판단은 8월 중순쯤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송계 일각에선 파업 기간에 사 쪽이 보여온 태도로 미뤄 노조 집행부가 이번 인사 보복 사태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 쪽으로부터 징계와 인사 문제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얻은 뒤 파업을 풀었어도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노조로선 이미 김재철 사장을 사퇴시키는 쪽으로 여야 정치권의 의견이 모아지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장외투쟁은 조합원의 피로도와 생계 불안만 가중할 뿐이라는 현실적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보복 인사가 이뤄지더라도 법적 다툼으로 충분히 무력화할 수 있다는 계산도 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키를 쥔 것은 여론의 향배

노조가 파업을 중단함에 따라 사태 해결의 키는 8월에 새로 구성될 MBC의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이 쥐게 됐다. 사장 교체에 대한 여야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는 하지만, 보수 성향 인사가 다수를 차지하게 될 이사진 구성을 고려할 때 결과를 100% 낙관할 수만은 없는 게 사실이다. 결국 관건은 여론의 향배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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