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장준하 의문사 진상규명을 두려워하는 보수언론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0-24일자 기사 '장준하 의문사 진상규명을 두려워하는 보수언론'을 퍼왔습니다.
[장행훈 칼럼] '박정희에 의한 타살' 동의하기 싫은가? 그건 오만이자 독단

지난 8월15일자 한겨레신문에서 37년 만에 처음으로 장준하 선생에 대한 검시가 이뤄졌고 그 결과 머리 뒤쪽에 인위적인 상처로 보이는 6cm 크기의 구멍과 머리뼈 금이 발견됐다는 기사를 읽고 마음이 착잡했다. 역시 장준하 선생은 추락사 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 유신정권에 의해 타살된 것이라고 믿었던 당시의 생각을 회상했다. 그러나 아직 의문사의 의혹이 깨끗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그것이 앞으로의 숙제다.

한겨레에 이어 경향신문이 장준하 의문사의 의혹을 상기시키고 그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제기했을 때 곧 모든 언론이 장준하 사망의 의혹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겠구나 하는 기대가 부풀었다.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민주투사이며 민족의 지도자인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원인을 규명하고 배후를 찾아내 고인의 신원(伸寃)을 풀어드리는 것이 살아남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라고 모두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산이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방송 모니터에 의하면 한겨레가 장준하 선생의 유골 검시 사실을 보도한 다음날 16일까지 “방송3사는 ‘장준하 의문사’와 관련한 사실을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민언련 모니터는 “이날 장준하기념사업회가 유해 사진, 검시 소견 등 구체적인 근거를 내놓은 데 이어, 야권에서도 진상조사위를 구성하겠다는 입장을 냈는데도 방송 3사가 보도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언론 본연의 임무를 망각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논평했다.

민언련의 지난 8월 17일자 신문 모니터에 의하면 "조선일보는 보도하는 시늉을 내는 데 그쳤다. 17일 12면 하단 오른쪽에 2단기사로 를 내놨다... 기념사업회 등이 제기한 타살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민주통합당의 ‘공세’로 몰았다. 

17일 는 “민주통합당은 장준하 선생의 타살의혹이 다시 불거진 것을 계기로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에 대한 공세를 펼쳤다”면서 “박정희 정권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박 의원은 즉각 석고대죄하고 의원직을 사퇴하라”는 등 민주통합당 대선 주자들의 발언을 나열했다.

간단히 말해서 조중동과 방송 3사는 “장준하 의문사”가 언론에 쟁점화되면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기에 묵살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장준하 의문사의 배후에 박정희가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국민의 인식이기 때문에 대선 정국에서 민감한 문제인 것만은 틀림없다.

언론으로서도 신중히 다뤄야 할 문제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대선에서 어느 한쪽에 불리할 수 있는 문제는 언론에 보도해서는 안 되는가? 새누리당은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노무현-김정일 비밀대화록을  들먹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우리의 NLL 관할권을 포기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고 있는데 조중동은 새누리당의 입장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인상이다. 

조중동이 문재인 후보는 공격하고 박근혜후보에게는 호의적이고 편파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특정 후보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대다수 국민이 존중하는 장준하선생의 의문사 규명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만약 보수언론과 방송이 장준하 의문사를 무시하는 동기가 장준하의 사인이 (박정희의)에 의한 타살이 라는 의혹에 동의할 수 없어 그런 것이라면 다수 국민이 박정희 정권의 타살로 보고 있는 사건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독단이며 오만이다. 아니면  이들 신문 방송이 박정희에 대해서 품고 있는 편파적인 지지 성향을 지면과 전파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언론은 보도 뿐 아니라 보도하지 않는 행동으로 그들의 호불호(好不好)를 나타낸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유신정권 치하에서 장준하 선생의 사인과 배후를 규명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유족들도 고인의 부검을 반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장준하 의문사의 진상 규명 정도는 가능한 사회가 됐다. 장준하는 일생을 조국의 광복과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애국자다. 그런 애국자가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본군 장교 출신,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살한 독재자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비극의 배후를 규명하지 않고 방관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 용인하지 않는다. 박정희가 장준하를 타살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박정희의 명예를 위해서도 의문사의 원인 규명은 필요하다. 장준하의 피살 여부를 둘러싼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진상규명이 불가결하다. 조중동이나 방송도 이 사실을 규명하자는데는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 hap36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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