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일 월요일

‘미쓰비시 불매 범국민선언 운동’을 시작하며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9-30일자 기사 '‘미쓰비시 불매 범국민선언 운동’을 시작하며'를 퍼왔습니다.

 
ⓒ민중의소리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25일 오전 광주시의회 기자실에서 전범기업 미쓰비시에 대한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있다. 이들은 해방 70여년이 되도록 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외면한 미쓰비시와 그 계열사의 니콘 카메라, 미쓰비시 자동차, 기린 맥주 등 제품 불매운동에 나서면서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를 아시나요?

일본군 위안부가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전범기업 후지코시, 미쓰비시 등에 강제 연행되어 군수공장에 배치돼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온갖 차별과 배고픔에 고통당하고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조선의 어린 여학생들을 말합니다. 해방 후 고국에 돌아와서는 일본군 위안부로 오인 받아 결혼에도 어려움을 당하고 했다하더라도 나중에 파혼의 아픔을 당한 가난한 여성들을 말합니다.

'일제와 전범기업의 강제 연행, 강제 노동, 임금체불에 피해당하고 희생당한 조선의 미성년 여성 아동'이 바로 조선여자근로정신대입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 패전으로 기울어진 상황에다가 인적, 물적 자원의 고갈로 전쟁 수행이 어려워진 일제와 전범기업들은 조선의 어린 여학생들(당시 12세 ~ 15세)에게 까지 “일본에 가면 돈도 벌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다”고 현혹하여 군수공장에 배치합니다.

하루 1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은 어린 여학생들에겐 감당키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온갖 차별과 배고픔은 견디기 어려운 설움이었습니다. 지진에 죽은 어린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일본이 패망하여 고국으로 돌아올 땐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고국에서의 삶은 더욱 기구한 나날들이었습니다. 어렵게 한 결혼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폭언과 폭행, “일본에서 몇 놈이나 상대했느냐?”며 군위안부로 오인하여 결국 파혼에 이르게 된 경우도 많습니다. 이웃들에게 알려 질까봐 몰래 살았던 아픔에 가난까지 겹쳐 한 많은 세월을 살아오신 분들… 이런 고통의 세월에 이미 많은 분들은 돌아가셨고 살아계신 분들도 팔순이 넘은 고령의 할머니들이 되어 있습니다.

일본 제1의 전범기업 미쓰비시를 아시나요?

미쓰비시는 조선인 10만 명을 강제 연행해 간 대표적인 전범기업입니다.탄광, 조선소, 군수공장 등에 배치하여 강제 노동을 시키고 임금 체불한 기업입니다. 

혹시 '군함도'를 아십니까?미쓰비시는 그 때만이 아니라 지금도 일본 최대 군수산업체입니다.전쟁 물자를 생산해 언제든지 평화를 깰 수 있는 침략을 뒷받침하고 있는 기업입니다.일본 정부와 마찬가지로 조선에 대한 침략과 수탈을 시인하지 않고 사죄하지도 않으며 배상도 하지 않는 반인륜 악덕 기업입니다.

미쓰비시와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일본의 양심 있는 시민들로 구성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나고야 지원회)입니다. 이 분들은 26년 전부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미쓰비시와 일본 정부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의 피해자들을 원고로 세워 10년 동안 재판투쟁을 해 왔고 그 뒷바라지를 감당해 왔습니다.

기각, 패소 후에도 끈질긴 투쟁을 계속했습니다. 3년 동안 '금요행동'을 실천해 왔습니다. 금요행동은 매주 금요일 나고야에서 도쿄(왕복 720Km)까지 올라와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여 왔습니다. 수차례 협박을 받는 위협 속에서도 꾸준히 투쟁해 오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광주에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시민모임)입니다. 너무나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광주시민들은 부끄러움과 친일매국원흉 청산이라는 역사적 사명으로 반미쓰비시 운동을 활발히 전개해 왔습니다.

2009년 3월 결성 후 곧바로 서명운동을 전개했고, 미쓰비시 자동차 광주판매장 앞에서의 208회 동안의 1인 시위도 감당했습니다. 이 투쟁은 결실을 보았습니다. 바로 미쓰비시자동차 광주판매장의 영업 포기와 철수입니다. 또한 10만 명 서명운동을 전개해 13만 5천 명에 이르게 되었고 이 서명용지는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에 전달했습니다. 이런 투쟁의 결과 미쓰비시를 협상장에 끌어내는 해방 후 최초의 일도 해 냈습니다.

나고야 지원회와 시민모임은 '근로정신대 할머니 협상단'을 꾸려 미쓰비시와 16차 본 협상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 협상을 지원하기 위해 '10만 희망릴레이'를 전개했습니다. 이 또한 목표를 초과 12만 2천 명이 넘는 참여를 이끌어 냈습니다. 

미쓰비시와의 협상은 의미 있는 성과를 냈지만 배상에 대한 미쓰비시의 반역사적이고 오만한 태도에 협상은 결국 결렬에 이르게 됩니다. 미쓰비시는 “피해 할머니들에게 금전적인 직접 보상은 할 수 없다. 일본에 공부하러 온 한국의 유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특별히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무관심과 비협조로 일관해 왔다는 것을 밝히는 바입니다.

다시 투쟁을 전개하며 동참을 호소 드립니다

3년 여 기간 동안 미쓰비시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금요행동을 잠정중단 했던 나고야 지원회는 또 다시 금요행동을 재개했습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시나가와 역엔 나고야 지원회원들의 여론전과 전단지 배포 등 실천이 있습니다.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의 항의 시위가 있습니다. 

광주의 시민모임은 '제1의 전범기업 미쓰비시 불매 범국민선언 운동'을 시작합니다.불매운동의 대상은 니콘(nikon) 카메라, 미쓰비시 자동차, 미쓰비시 예초기, 미쓰비시 엘리베이터, 기린맥주입니다.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참여, 실천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또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발주 사업 입창에 원천적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법 개정 운동, 전범기업과의 계약대금 즉시 유예 촉구, 입국 금지 조치 촉구 등도 전개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뼈 속까지 친일'인 자를 대통령으로 두고 있습니다. 또한 친일과 배신과 반인권 반민주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있는 상황입니다. 분단과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저들 1%를 몰아내지 않는 한 우리 조국의 미래는 여전히 암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조국, 동아시아는 물론 지구촌의 평화로운 공동체를 위해서도 전범기업은 물리쳐야 할 대상입니다. 이에 반미쓰비시 불매운동에 적극 동참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역사입니다.

김희용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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