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0-01일자 기사 '“샐러리맨 된 기자들, 글로 먹고 살려면 ‘양심’을 지켜라”'를 퍼왔습니다.
[동아투위 기획] ① 백발의 기자들, “박정희가 빼앗았던 편집권, 다시 되찾아야”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 지 올해로 38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금지했던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에도 기자로서의 양심 외에 다른 모든 것은 남김없이 버렸습니다. ‘영원한 기자’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구성원들을 통해 ‘언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다시 던지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몸은 비록 회사를 떠났어도 자유언론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
동아투위 기자들에게 그날의 일은 잊을 수 없는 젊은 날의 다짐이자 평생 가슴 속에서 지켜온 사명감이다. 그들에게 1970년대는 독재에 저항하는 모든 세력을 억눌렀던 폭력의 시대이자 언론인의 역할을 거세당했던 야만의 세월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KBS·MBC 방송장악과 재단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외치는 부산일보와 국민일보의 끝나지 않은 싸움, 그리고 조중동의 왜곡보도로 한국 언론은 여전히 위기에 봉착해 있다.
동아투위에서 활동했던 김태진 다섯수레 출판사 대표, 성유보 희망래일 이사장, 이명순 동아투위 위원장, 이부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24일 오후 전국언론노동조합 사무실에 모여 박정희 시대의 악랄했던 언론장악과 현재까지도 이어진 독재의 잔재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지에 대해 두 시간 동안 직설을 쏟아냈다. (이후 이들의 명칭은 모두 ‘기자’로 통일한다.)
그 시절 기사를 써봤자 빨간 줄이 죽죽 그어지고, 쓰레기통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성유보 전 기자는 “기자 개인의 울분이 아니었다.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해줘야 하는데 박정희 파시즘은 자신들이 선전하고 싶은 것 외에는 알리지 못하게 했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권력자의 눈이 아닌 국민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시도 자체는 모조리 차단당했단 말이다.
박정희 정권은 악착같이 언론장악에 나섰다. 사주, 경영진, 부장급 간부들에게만 회유의 손길이 닿은 것이 아니었다. 경찰서를 출입하는 일선 기자들까지 관리 대상이 됐다.

1975년 3월 17일 새벽 동아일보 사주측이 동원한 술 취한 폭도들에게 강제 축출되기 직전 편집국에서 마지막 ‘자유언론 만세’를 외치는 기자들과 사원들. 사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이부영 전 기자가 사회부 기자로 있을 당시의 일을 들려줬다. 한 번은 석탄업자들이 연탄 가격을 올리려고 일부러 품귀 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고발하는 기사를 썼다. 그는 “‘왜 민심을 선동하나, 북괴를 이롭게 하나’며 (정보기관에) 붙잡혀가 두들겨 맞았다”며 “언론에 대해 굉장히 속 보이는 짓을 한 건데 정치부나 경제부는 그렇게까지 않고 맨 밑바닥 민심을 전하는 경찰 출입 기자, 지방 주재 기자들을 두들겨 패면서 서서히 언론계 안에 테러 분위기를 만들어갔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장악 야욕은 유신이 선포되기 한참 전인 1964년 여실히 드러났다. 한일 회담 반대 시위로 여론이 악화되자 그해 2월 ‘언론윤리위원회법’을 통과시켰다.

김태진 전 동아일보 기자 (다섯수레출판사 대표)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태진 전 기자는 “윤리위원회에서 제재를 가했을 때 언론사가 응하지 않으면 해당 발행인을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법”이라며 “박정희가 편집인의 권한을 발행인으로 옮겨 놓은 것일 뿐만 아니라 권력이 편집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만든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한국일보 사주였던 장기영을 부총리로 임명하고 조선일보의 경우 코리아나 호텔 건축에 현금 차관을 제공하면서 장악하기 시작했다. 경향신문은 기아산업에 공매 처분하기도 했다. 김 전 기자는 “당시 기아 산업은 관리기업체였는데 자기 기업체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데 신문사를 운영할 수 있었겠나. 인수 자금이 중앙정보부(중정) 자금이란 이야기가 파다했다”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동아일보에 대한 탄압은 길고도 집요했다고 이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1968년 신동아 12월호에 실린 차관에 관한 기사를 문제 삼았다. 일본에서 제공받은 차관 중 10%를 정치자금으로 빼돌렸다는 내용이었다. 이부영 전 기자는 “한일협정이 제공한 박정희 파쇼 체제의 물적 기반을 동아일보가 마지막으로 건드린 것”이라며 “이 돈은 정권연장을 위한 삼선개헌의 추진자금이었으며 이 돈으로 지식인들을 매수하고 언론계에 돈을 뿌렸다”고 말했다. 그 결과 천관우 주필, 홍승면 주간, 손세일 부장이 해고됐다. 김상만 당시 사장은 “동아일보가 1920년 창간 할 때 주주를 모집해서 된 신문사인데 왜 지금은 당신 김씨 집안이 주식을 다 가지고 있느냐. 주식을 내 놓아라”는 중정의 협박에 신문사를 빼앗길까봐 협상에 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보도투쟁뿐만 아니라 민주화투쟁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해고된 천관우 주필이 71년 논설을 쓰지 않는 조건으로 이사로 복직된 뒤 이병진 변호사, 김재준 목사, 장준하 선생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민수협)를 결성하면서다. 이부영 전 기자는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기자로서 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민수협에서 하는 서명을 받아오기도 했다. 기자 노릇 못하게 막았기 때문에 ‘우리는 기자가 아닌 것이나 다름없다’는 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1971년 박권상 편집국장이 영국 특파원으로 쫓겨나가면서 편집권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개개인이 아무리 특종을 해도, 글을 잘 써도, 방송을 잘 해도 아무 소용없게 돼 버린 것이다. 결국 기자, PD, 아나운서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됐다. 그리고 1974년 10월 24일 역사적인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선포했다. 성유보 전 기자는 “술자리에서 ‘왜 내 기사를 뺐느냐’고 주정이나 할 수 있지, 간부들한테 할 수 없었으니 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며 “이는 기자 개인의 울분이 아니라 독재에 대한 거부와 시민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한 언론의 역할을 정립하기 위해 우리가 희생하더라도 맞서야 한다는 정신이었다”고 말했다.

성유보 전 동아일보 기자 (희망래일 이사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결과는 혹독했다. 이듬해 3월 17일 160여명의 기자들과 사원들이 쫓겨나자 이들은 다음날 바로 동아투위를 결성했다. 4월엔 동아투위 대변인이었던 이부영 전 기자가 불법연행됐다. 두 달 뒤엔 성유보 전 기자가 끌려갔다. 하지만 이 5개월은 눈치 보지 않고 기사 쓸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당시 서른 살, 동아투위의 막내였던 이명순 전 기자는 “그래도 나는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말했다.
신문과 방송에 게재됐던 광고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광고주들이 광고 동판을 다 회수해갔다. 그러자 시민들의 격려 광고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여 영원하라’, ‘동아야, 배신하면 이민 갈 거야’ 등의 문구가 담긴 광고가 빈 지면을 메어나갔다.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토론장이자 성찰의 장이 됐다. 이부영 전 기자는 “이 사건이 전 세계 언론에 던진 충격이 굉장했다. ‘박정희 독재가 이런 것이구나, 언론의 목을 졸라 죽이는 정권이구나’란 인식이 퍼져나갔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유신은 언론 자유의 측면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부끄러운 역사’이기도 했다. 성 전 기자는 “유신은 일제 파시즘의 잔재라고 생각한다. 파시즘은 동원과 배제의 원리로 작동하는데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은 파시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에서 광야로 쫓아냈다. 좌익이라고 하면 가족과 자식까지도 배제되는 사회였다”고 말했다. 김 전 기자도 “유신헌법은 왕권사회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법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명순 전 기자 역시 “유신은 군사정권으로부터 민주 회복을 바라는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고 자신들의 권력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시도였지 경제 개발을 위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역시 ‘일제의 잔재’라는 잣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부영 전 기자는 “박정희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만주 침략으로 만들려고 했던 신천지를 한국에서 재현하고자 했다”며 “박근혜는 그런 아버지의 60~70년대 사고방식을 복제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국민적 불행”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박정희 군사정권의 물적 토대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강제징병·징용자들, 원폭 피해자들이 보상받아야 할 돈을 중간에서 가로챈 돈”이었다고 지적했다.

동아투위 위원들이 30년이 지난 2005년 3월 1일 동아일보 옛 사옥(현 일민미술관) 정문 앞에 다시 모여 “동아일보는 사죄하라! 원상복귀시켜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이들은 박정희 시대의 ‘망령’이 여전히 우리 사회는 물론 언론도 지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편집권 독립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김태진 전 기자는 “최근 MBC가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벌이는데 이 사안은 근본적으로는 편집권 독립의 문제”라며 “편집권이 편집인에게 있음을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부영 전 기자도 “독립 언론을 위해 편집권과 인사권을 경영인으로부터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편집국장, 주필, 기자가 편집권을 행사했는데 ‘언론윤리위원회법’ 이후 발행인에게로 권한이 넘어갔다. 이 법은 민주화 이유 1988년에 폐기됐지만 경영인이 편집권을 좌지우지하는 일은 현재까지도 비일비재하다. 신동아 사건 이후 최석채 당시 편집인협회 회장이 했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최근 사장과 노조 간의 갈등을 내다보기라도 한 듯 이 법으로 인해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예측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전까지 한국 언론이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양상의 시련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 투쟁하는 경우 언제나 편집인과 경영주가 한 덩어리로 뭉쳐서 싸워 왔다.(…)신문사란 일종의 성(城)이다. 이 성안에는 경영주와 편집인 기자가 있어서 서로 공존하는 것이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이 성안에 불신이 싹트고 반란이 일어나 성주를 향해 주민들이 선전포고를 하는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부영 전 동아일보 기자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이치열 기자 truth710@
현재 언론들이 지나치게 영리를 추구하게 된 배경이 박정희 시대의 언론 회유 정책에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태진 전 기자는 “당시 신문 용지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면수가 제한돼 있었지만 박정희가 면수를 늘려주기 시작했다”며 “면수가 늘어나니 광고수입이 늘었고 이후 신문사가 영업 수익을 올리기 위한 사업장으로 탈바꿈됐다”고 했다. 이어 “동아일보도 그 이후에 사원만 해도 얼마나 늘었냐”며 “기자들도 점차 사주의 생각을 닮아가서 옳은 소리를 하는 기자들은 쫓겨나고 그 외에는 샐러리맨으로 타락한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유신 시대가 이러했기 때문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과거사 기자회견은 진정성 없는 말잔치에 불과했다. 김 전 기자는 “사과가 아닌 해명에 불과하다”며 “5·16군사쿠데타와 유신이 헌법 질서를 훼손했다고 하면서도 그 당시 보릿고개를 넘던 때였고 북한의 침략이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5·16군사쿠데타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으니 사과라는 의미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언론들이 ‘사과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30대 젊은 나이에 원치 않게 펜대를 놓아야 했던 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현장을 누비고 있다. 그래서 후배 기자들을 바라보는 눈도 날카로웠다. 이부영 전 기자는 “요즘 기사를 보면 주장과 팩트가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보수지에서 일하든 진보지에서 일하든 전해야 할 팩트는 전부 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명순 전 기자는 “요즘은 기자가 지사가 될 필요는 없지만 말과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양심이 있어야 한다”며 “말과 글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데 왜곡하거나 거짓말을 전하는 언론이라면 차라리 펜대를 놓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이명순 전 동아일보 기자 (동아투위 위원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태진 전 기자는 “일제 때의 3·1운동이 전국 방방곡곡 퍼져나갈 수 있었던 힘은 50여 개의 지하신문이었다”며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성유보 전 기자는 “6하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재벌의 입장에서 언론이 바라본다면 일반 시민들의 시각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언론인들의 시각에 많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분단 시대의 이분법적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남용하는 데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한국 언론들은 사물과 사람에 대해 보수·진보의 시각이 아니라 우익·좌익의 시각으로 보는데 이는 심각한 차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보수와 ‘고쳐야 한다’는 진보가 맞붙으면 이슈가 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빨갱이’라고 한다면 담론 형성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는 “한국 언론이 ‘똘레랑스’ 정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자유수호 투쟁을 이어갔던 이들의 현재 평균 나이는 70세 중반,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도 언론 개혁에 대한 마음만은 그대로다. 이부영 전 기자는 “박정희 시대 이래로 진행돼온 자본의 지나친 비대화가 언론 자유나 사상의 자유를 위축시켰다”며 “언론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확장하고 쟁취하는 데 아직 우리의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성유보 전 기자는 “내가 꿈꾸던 사회, 언론이 무엇이었으며 현재 어느 수준까지 왔는가에 대해 정리하고 싶다. 그래서 이후 언론인들에게 참고가 됐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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