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일 월요일

“연예인 할래?” 이런 말에 들뜨지 말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24일자 기사 '“연예인 할래?” 이런 말에 들뜨지 말라!'를 퍼왔습니다.

연예계 진출을 준비하는 학생들한테는 하루가 짧다. 학생들은 학교 공부를 하면서 자기 분야의 실기 연습을 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 사진은 한림연예예술고 1학년 김도희양이 노래 연습을 하는 모습니다.

아역은 엄마의 실시간 돌봄 필요
연습비 핑계 “돈 받아와” 요구도
공부·인성·재능 세 토끼 잡아야

“사실 지금 그만둘까 말까 고민중입니다. 아이도 아이지만 제가 힘이 드네요.”지난 9월13일. 한 남자 아역배우의 엄마 이아무개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은 올해로 배우 생활 4년 차. 7살 때 서울 압구정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에 다니다가 캐스팅 매니저를 통해 일을 시작했다. 경험 삼아 찍은 광고가 알려졌고, 누구나 제목만 들어도 알 만한 영화에 출연하면서 주요 아역배우로 성장하고 있다. 이씨는 “잘 몰랐는데 이 분야로 어떻게든 진출하려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우리 아이는 운이 좋았구나’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4년 동안 엄마는 매니저 구실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쳤다. 지방 촬영이 있으면 직접 운전을 해서 고속도로를 달려야 한다. 아이는 대기시간을 이용해 학교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수업을 듣는다. 다행히 성적은 잘 나왔지만 수업을 자주 빠지면서 교사의 면박이 이어졌다. 지금은 연예계 활동을 진로탐색의 일환으로 이해해주는 학교로 전학을 간 상태다.그동안 연예기획사 러브콜도 있었지만 거절했다. 아이들을 ‘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탐탁지 않았다. 매니저들이 모든 걸 지원해주는 환경에서 자칫 아이가 버릇없이 자랄까봐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다.“아이니까 남들 앞에서 ‘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고 표현을 못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어릴 때는 엄마가 붙어서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시간이 갈수록 힘드네요. 상대적으로 둘째를 많이 못 챙겼다는 미안함도 들구요.”명동, 강남 거리에는 아이들한테 명함을 건네는 자칭 ‘캐스팅 매니저’들이 많다. 한 중견 연기기획사 매니저 김아무개 팀장은 “그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까지 욕을 먹는다”고 했다.“진짜 매니저가 아니라 학원에 사람 데려오면 돈을 받아 챙기는 브로커입니다. 아이한테 ‘얼굴은 되는데 연기력이나 노래가 부족하니까 트레이닝을 받아야 할 거 같다. 우리가 얼마 댈 테니 나머지는 부모님한테 받아서 와라’고 말합니다.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 넘는 금액까지 부릅니다. 있는 집 애들이면 그래도 낫죠. 꼭 없는 집 애들이 걸립니다.”이렇게 학원 수업을 듣고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출연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출연은 대개 한 번으로 끝난다. 학원 쪽에서는 “네 실력이 모자라서 제안이 더 안 들어오는 것 같다”며 더 많은 수업료를 요구한다. 김 팀장은 “소속사가 있다고 해도 첫 출연 자체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했다.연예계 진출을 꿈꾸는 이들은 늘었지만 연예인이 되는 길이 쉬워진 건 아니다. 관계자들은 “요즘은 재능만이 아니라 공부와 인성이라는 토끼도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연예계 진출을 준비하는 학생들한테는 하루가 짧다. 학생들은 학교 공부를 하면서 자기 분야의 실기 연습을 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 사진은 한림연예예술고 2학년 박세진양이 연기 연습을 하는 모습이다.

지난 9월14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림연예예술고 실기실. 연예과 2학년 박세진양이 대본 연습을 한다. 박양은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공식적인 등교시간보다 한 시간 빠른 7시30분에 학교에 온다. 남들보다 한 시간씩 일찍 와서 스트레칭, 대본 연습을 한다. 중3 때부터 연예계 진출을 꿈꿨던 박양은 일반고로 진학했다가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 이 학교로 편입했다. 지금 목표는 연극영화과 진학이다. 따라서 내신성적도 꼼꼼히 챙긴다.실용음악과 1학년 김도희양도 데뷔를 앞두고 있다. 김양의 하루도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화려하지만은 않다. 4시30분에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한남동에 있는 소속사 ‘ㅌ엔터테인먼트’로 향한다. 보통 주 3, 4회는 보컬 트레이닝, 안무 레슨, 영어, 연기 수업 등으로 이뤄진 소속사 수업을 들어야 일정이 끝난다. 모든 일정이 끝나면 밤 11시. 한남동에서 집이 있는 동탄까지 가면 새벽 1시다. 김양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했다.학교 쪽은 공부의 기초가 닦여 있고, 인성교육도 잘 받은 대중예술인을 양성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런 취지 아래 학생들은 원칙적으로 4시30분까지 실시하는 정규 수업을 다 들어야 한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거나 지각을 3번 이상 했다면 학교 쪽에서 기획사와 연계해 실시하는 오디션에 1년 동안 참가할 수 없다. 김지연 전략기획실장은 “인성교육이 제대로 안 된 아이들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추천을 안 해준다”며 “늦게 데뷔를 하더라도 제대로 된 직업인으로 세상에 내보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규모가 있고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는 소속사에서는 연습생을 훈련시키는 데 오히려 돈을 지불한다.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들은 데뷔를 앞둔 경우 숙소생활을 시작한다. 이때 성별, 나이, 성향별로 숙소를 나눠 배정해서 꼼꼼하게 관리를 해준다. 연습생이 숙박비나 트레이닝비를 내는 일은 없다. 임찬 캐스팅 매니저 부장은 “우리가 어떤 아이의 가능성을 보고 좋아서 같이 해보자고 한 거니까 당연히 투자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는 “최근 들어 오디션 준비를 돕겠다고 생각 없이 대충 차린 학원에 갔다가 돈만 버리고, 노래며 춤이며 잘못된 습관만 배우고 오는 친구들이 문의를 해 오는 횟수가 느는데 매니저들끼리 정식 검증 시스템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고 했다.“교육기관이나 단체에서 상업적 의도보다는 정말 제대로 된 대중문화예술인을 양성한다는 데 방점을 찍고 부실 기획사나 학원을 정리하는 시도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부모님이나 아이들도 지금 당장 연예인이 돼야 한다는 급급한 마음은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연예인이 될 수 있는 과정을 제대로 알아보고, 안정된 회사에 차분하게 문을 두드렸으면 합니다. ”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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